▲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버스를 타면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강동경희대병원’ 으로 15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곳에 산다. 그 뿐인가, 우리 아파트엔 35번 환자가 갔다는 개포동 주공아파트 재개발 총회에 다녀온 사람들도 꽤 많은 줄로 알고 있다. 다행히 감염자가 나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자가 격리’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걸 하면서 공포에 떨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자가 방역’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자가 방역이라고 해 봤자 별 게 없다. 손을 잘 씻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되도록 가지 않는 게 방역의 전부다.

이러고 있는 사이 사천 명이 넘는 사람이 자가 격리를 하고 있고,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도 백 삼십여 명에 이르고 있으며, 그 중 열 네 명이 사망했다. 신속한 초기 대응이 이루어졌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게 자명한데도, 방역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는 초기 대응은커녕 삼성서울병원의 이름조차 밝히지 못하게 했고,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등의 신속한 대응을 도리어 비난하며, 사람이 죽어 나가는 마당인데 ‘경제활동 위축’을 염려하면서 ‘과도한 공포심을 갖지 말라’며 무사 안일한 태도로 일관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한 마디는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끼게 했다.

“힘든 병마도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가 있다면 극복할 수 있는 것.”

정부와 국민이 단결해야 한다는 의도를 담았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전염병’을 ‘의지’로 극복하자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천 여명의 자가 격리자와 백 삼십 여명의 확진자, 열 네 명의 사망자는 의지가 박약해서 메르스에 감염되었다는 말인가. 또한 우리 국민은 어떤 의지를 가져야 하는가. 실제 상황을 이처럼 추상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니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가는 사람이 나오는 것이다. 진정으로 메르스를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청와대에 설치한 열감지기부터 제거하기를 바란다. 당장이라도 확진자가 경유했던 병원을 폐쇄조치 하는 게 그나마 추가 피해를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본다. (삼성서울병원은 사태가 확산되자 부랴부랴 부분폐쇄를 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말한다.

“과도한 공포심을 갖지 말라.”

위중한 상태로 알려진 35번 환자의 말을 상기해 보라.

“내가 감염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방역의 모든 책임은 국가에 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잘못을 백배사죄하고, 사태의 해결을 위해 합심을 해도 모자랄 판국인데, 그 책임을 모두 죄 없는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런 혼란을 틈타 ‘메르스 병원 정보를 공개했으니 감청도 허용해야 한다’는 망발을 일삼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경각심을 제고해야 함에도 감염자가 있었던 곳을 맨 몸으로 돌아다니면서 허세를 부리는 정치인도 있다. 이것도 한숨이 나올 지경인데 이런 모습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한 숨을 쉰다.

1790년, 평안도에 전염병이 발생했다. 이 때 정조는 다음과 같이 하교했다.

“(전염병이) 이미 크게 일어났다고 했으니, 한 고을에서 현재 앓고 있는 자와 앓다가 죽은 자의 수효가 결코 여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고을 수령이 하나하나 다 보고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이장(里掌)이 숨기고 관청에 고하지 않은 것이니, 관찰사로 하여금 각별히 경계하게 하라. 죽은 자를 돌보고 불쌍히 여기는 것보다는 굶주리다가 전염병이 들고 전염병을 앓다 죽는 상황에 이르기 전에 적절하게 구휼하여 병이 번져 만연하게 되지 않게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일성록>

지금 우리나라는 18세기 조선만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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