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역질(疫疾)과 가뭄
[칼럼] 역질(疫疾)과 가뭄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6.1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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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과학이 발달한 현재도 그렇지만, 근대 이전, 지금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각종 재해는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는 요소들이었다.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하지도 않았고, 기상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도 적었고, 물을 통제할 수 있는 토목 기술도 상대적으로 덜 발달한 시대였기 때문에, 근대 이전에는 요즈음보다 재해를 미리 예방할 수도 없었고, 같은 정도의 재해에도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또한 한 가지 재해만 오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재해로 인해 다른 재해도 함께 오는, 이를테면 홍수와 전염병이 동시에 돌거나 가뭄과 전염병이 동시에 도는 일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재해는 사람들에게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하늘이 집권층에게 내리는 엄한 경고라고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근대 이후,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일정 부분 공감을 받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시행했다고 전해는 육사(六事)가 계속해서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육사(六事)는 은(殷)나라 탕(湯)임금이 즉위하여 7년 동안 가뭄이 계속되었으므로, 스스로 목욕재계하고 희생 제물이 되어서, 상림(桑林)에서 여섯 가지 일을 가지고 스스로 꾸짖었다는 것이다. 탕 임금은, “제가 정치에 절제(節制)가 없어 문란해졌기 때문입니까? 백성이 직업을 잃고 곤궁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까? 여알(女謁)이 성하여 정치가 공정하지 못한 때문입니까? 뇌물이 성하여 정도(正道)를 해치고 있기 때문입니까? 참소하는 말로 인하여 어진 사람이 배척당하기 때입니까?”라는 여섯 가지를 하늘에 묻고 스스로 반성했다고 전해진다. 그러자 천리에 구름이 모여들어 수천 리의 땅을 적시었다고 전해진다. 은나라의 탕왕은 치수를 잘 한 임금이자, 성군(聖君)의 모범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점에서 가뭄을 비롯한 재해가 임금의 부덕함을 하늘이 꾸짖는 것이라는 인식이 역사 속에서 중요한 주제로 이어지고 있고, 재해가 일어났을 때 임금과 집권층이 스스로 낮은 자세로 임해야 된다는 것을 후세에 가르쳐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 선조들이 재해가 닥치면 속수무책으로 희생만 당하진 않았다. 오히려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해서 재해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는 전염병이 일어났을 때 의원이나 약재를 보내고 그 지역을 태우는 작업을 하는 것 등만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세금 감면이나 식량 지원 등 백성들에 대한 구호를 비롯하여, 비가 오지 않을 때 기우제(祈雨祭. 비를 비는 제사)를 지내거나, 죄인들을 풀어주는 등 (어떻게 보면) 주술적인 측면까지 총 동원했다. 특히 집권층은 역질이나 가뭄을 자신들의 부덕함을 하늘이 벌하는 것으로 알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각성의 계기로 삼았다.

이러한 사례는 조선 역사 속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효종실록』 4권, 효종 1(1650)년 6월 25일(정미) 4번째 기사를 살펴보자. 함경감사 정세규(鄭世規)가 장계를 올려서 “역질이 지나간 뒤에 가뭄과 황충(-메뚜기)이 너무 심한데, 도내에 정배된 죄인 중 석방되지 않은 자가 아직도 많습니다. 마땅히 너그럽게 용서하시어 화기(和氣-조화로운 기운)를 부르고 재앙을 사라지게 하는 도리를 다하소서.”라고 건의하였다. 이에 대하여 효종 역시 동의하면서 특별히 마련해 둔 은전(銀錢)을 베풀고, 따로 기록한 죄인을 모두 석방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효종은 “요즈음 가뭄과 황충의 재해는 그 죄가 나 한 사람에게 있지 아랫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더구나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에 내린 벌은 치우치게 혹독하기 때문에 생민들을 생각할 적마다 내 몸이 아픈 듯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것은 곧 잇따른 재해의 원인인 왕인 자신에게 있고, 재해는 하늘이 내린 형벌인데, 그 형벌이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에 더 심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역사를 배우는 것이 실용적이려면 역사 속에서 사례를 발견하고 교훈을 얻어서, 오늘날을 사는 우리가 그 사례와 교훈을 바탕으로 더 좋은 역사를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과학이 지금보다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우리 선조들은 당시에 가지고 있던 과학적인 기술과 종교적인 주술, 그리고 윤리적인 책임 의식 등 모든 것을 동원해서 재해를 막아내려고 하였다. 현대판 역질인 메르스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 또한 가뭄이 심해지면서 제한급수, 녹조, 흉년 같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재해를 막으려고 했던 것, 그리고 집권층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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