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경찬 문화칼럼니스트】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한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간의 권리를 우리는 인권(人權)이라 부른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권이 철저하게 배제(排除)되고 유린(蹂躪)당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공익이라는 명목 아래 가장 사적인 것까지 감시당한다면.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뮤지컬이 있다. 유쾌함 뒤에 씁쓸함이 웃음 뒤에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드는 작품. 뮤지컬 ‘유린타운’이다.

1995년 봄, ‘유린타운’의 원작자인 그레그 커티스(Greg Kotis)는 유럽여행을 하게 된다. 여행 경비를 모두 써버린 그는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참지 못할 정도로 소변이 마렵게 된다. 그는 두 가지 기로에 놓이게 된다. 공원 내에 있는 유료 화장실을 사용할 것이냐 아니면 저녁식사와 용변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도록, 식당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몇 시간을 참아야 할 것이냐. 우습지만 굉장히 심각한 이 고민은 도시 내의 모든 화장실들이 독점적이며 심술궂은 조합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됐다. 이 사소하면서도 일상적인 발상이 유린타운의 시작이 됐다.

‘유린타운(Urine Town)’을 우리말 번역하면 오줌마을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오줌은 물론 사람이 배설하는 그 ‘오줌’이기도 하지만 ‘인권’을 상징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이러하다. 20년째 이어진 가뭄으로 전 세계는 대혼란에 빠지고 물 부족사태를 이겨 내고자 집안에서는 화장실도 쓰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은 마을의 공중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돈을 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결국 사태가 이러하다 보니 돈이 없으면 “먹지도 말라”가 아니라 “싸지도 말라”는 말이 붙을 정도이다. 몰래 아무데서나 볼일을 보면 마을에서 추방당하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유린타운으로 끌려간다. 이것이 뮤지컬 ‘유린타운’의 법이다. 사람들은 공익이라는 이름하에 순종한다. 법에 대항하는 올 맨 스트롱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저 마을에서 추방돼 소리 소문 없이 유린타운으로 끌려 갈 뿐이다.

물 부족 사태가 모든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가 준 것은 아니다. 특정 몇몇 이들에게는 오히려 지금의 불행이 부와 권력을 지속하는데 더욱 큰 힘이 되기도 한다. 경제력을 바탕으로 물을 장악하고 공중 화장실을 유료로 만들어 서서히 요금을 올린다. 물을 독점하기 위해 정치인과 결탁하고 이로써 이익이 생긴 것을 나눠 갖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가난한 자들은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뮤지컬 ‘유린타운’은 서사극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관객이 극 안에 몰입해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극에 한 발자국 물러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부조리와 상징 그리고 패러디를 지켜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돕는 인물이 있다. 바로 록스탁과 리틀셀리다. 이 둘은 작품의 해설자를 겸하고 있다. 이 둘은 극 안과 밖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면서 관객들에게 드라마가 말하고 자는 의미와 상징성을 이야기 해준다.

뮤지컬 ‘유린타운’에 최대 적, 배설주식회사 대표 크롬웰은 대중들에게 “악취가 진동하는 마을을 향기롭게 하고 미래 세대에 맑은 물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유료 공중 화장실의 정당화를 주장한다.

크롬웰에 대항하는 이가 있으니 바비 스트롱이다. 그는 유료화장실을 무료로 사용하게 할 것을 주장하는 인물이다. 크롬웰과 사상이 반대되는 인물이다. 그런 바비 스트롱의 연인이 크롬웰의 딸 호프이다. 운명 같은 장난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패러디 장면을 만들어 내고 1막의 마지막 사람들의 봉기(蜂起)는 레미제라블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다. 이처럼 끝없는 유머코드를 지탱하며, 비판의식을 풍자로 풀어내고 있다.

결국 항쟁에 실패한 바비 스트롱은 목숨을 잃는다. 여기서 리틀 셀리는 “작품이 왜 이러냐”고 묻고 록스탁은 “사는 것이 다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리틀 셀리는 “음악은 신나잖아요”라고 이야기한다. 죽음마저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이 작품은 만만치 않는 내공으로 관객들에게 시종 일관 묻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만 유린타운의 단조로운 무대 운영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대극장 뮤지컬들은 다채로운 무대테크니컬을 발전시켜 왔다. 2002년 초연 당시와 큰 변화가 없는 무대는 실험적이면서도 아이디어가 넘치는 오프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반하는 듯 안일하게 보여 아쉬움을 자아냈다.

10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유린타운>은 오는 8월 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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