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정국은 격랑 속으로
박 대통령, 대놓고 유승민 원내대표 체제 부정

새정치민주연합, 남은 카드는 없지만 그래도 ‘투쟁’
새누리당, 당분간 박 대통령의 영향력 속으로 ‘풍덩’


신께 묻고 싶을 정도이다. 국정운영이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국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향해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하면서 출구가 없는 상황이 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크게 반발했고, 새누리당은 당황스러워했다. 그야말로 쿼바디스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이로 인해 서민은 더욱 고통의 혼란 속에 휘말리게 됐다.

【투데이신문 어기선 기자】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를 열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 요구안을 가결시켰다. 이로 인해 국회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작정한 듯 발언을 쏟아냈다. 어조는 분명했다. 말에 힘이 들어갔고, 국회를 향한 또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한 분노를 쏟아냈다. 발언들을 속속 살펴보면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의 발언을 쏟아냈다. 친박계에서도 놀라는 눈치였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렇듯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에 친박계 내부에서도 상당히 당황스런 분위기를 보였다.

이날 발언의 요약은 ‘입법부가 더 이상 행정부를 간섭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국회법 개정안이 법률로 확정되면 행정부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메시지였다. 그러면서 국회가 행정부의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국민을 위한 일에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그러하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일자리 법안들과 경제살리기 법안들이 여전히 국회에서 3년째 발이 묶여 있다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법안은 당리당략적으로 통과시키고 있다고 쓴 소리를 내뱉었다. 뿐만 아니라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여당 원내사령탑도 정부의 경제살리기 노력을 위해 국회에 어떤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간다면서 정치권의 존재 이유는 본인들의 정치생명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둬야 함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고 있다고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난했다.

박 대통령의 강경 발언

이날 국회와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한 박 대통령의 강경 발언은 사실상 행정부 수장이 입법부를 향한 선전포고인 셈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을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그동안 대통령이 집권여당을 이처럼 맹렬하게 비판한 사례는 거의 없는 듯하다. 이런 이유로 인해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발언이 다소 과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날 발언이 이처럼 강도 높게 나온 것이 단순히 야당과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난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가뭄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영남과 50대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긍정적인 평가에 비해 많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메르스 이슈에서 벗어나는 것이 위기를 돌파하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메르스 이슈를 벗어나기 위해 야당과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제 유승민 원내대표와는 더 이상 당청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사실상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정치적 사형선고를 한 셈이다. 그만큼 이번 발언은 상당히 강도가 높은 발언이었고,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었다. 그리고 그 정치적 후폭풍은 정치권을 강타했다.

당장 새정치민주연합은 발끈하고 나섰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삼권분립을 훼손하고 정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아울러 강력 규탄한다는 발언도 쏟아졌다. 최재성 사무총장의 임명 강행으로 인해 친노와 비노 간 갈등이 상당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이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그 전날인 24일 최고위원회의에 불참을 할 정도로 당내 갈등이 분출됐었다. 그런데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이슈가 터지면서 당내 갈등도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였다. 25일 열린 비상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종걸 원내대표가 참석을 했다. 전날 보여준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일단 재의가 성사될 때까지 국회 의사일정을 중단하기로 했다. 물론 전제조건은 있다. 메르스와 가뭄과 관련된 법안 처리는 협조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초 메르스와 가뭄에 관련된 법안 처리조차 협조를 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었지만 민심의 역풍을 우려해서 협조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어찌됐던 현재 국회 의사일정은 ‘올 스톱’된 상태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새누리당이 재의에 나서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될 때 만약 거부권 행사되면 재의를 하겠다는 합의를 했다면서 “합의사항을 지켜라”고 압박을 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고민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 구사할 수 있는 카드가 극히 적다. 재의를 할 때까지 의사일정을 모두 중단하겠다는 카드 이외에는 없다. 하지만 재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새누리당이 불참을 하게 되면 자동부결된다. 문제는 언제까지 국회 일정을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메르스와 가뭄 사태로 인해 민심이 차가워진 마당에 국회 의사일정마저 보이콧한다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고민이 크다. 국회 의사일정을 무작정 거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합의를 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그 출구전략 중 하나가 바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법 개정안을 만든 이유도 당초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이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합의하면서 도출해냈던 것이 국회법 개정안인데 원래 국회법 개정안이 목표가 아니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이 목표였다. 때문에 이 목표만 실현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국회법 개정안이 부결이 되든 자동폐기가 되든 상관없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을 출구전략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을 과연 정부와 여당이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세월호 특별법 수정을 절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만큼 정부의 입장은 강경하다. 정부와 새정치민주연합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새누리당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당분간 새정치민주연합은 강경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강경노선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당내 문제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최재성 사무총장의 임명을 놓고 친노와 비노 간 갈등을 보였다. 특히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서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런데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인해 그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외부의 적이 내부의 갈등을 봉합시켜준 꼴이 됐다. 당 지도부로서는 일단 갈등을 표출시키지 않는 것으로 큰 성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사이 혁신위원회가 혁신 활동을 하면서 당내 갈등을 봉합시킬 혁신안을 마련한다면 당 지도부 특히 문재인 대표로서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이번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야당에게 마냥 불리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초반에는 상당한 고민에 빠졌다. 국회법 개정안의 운명과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한때는 자동폐기와 재의를 놓고 갈등을 보였다. 친박계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담아서 자동폐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비박계는 정정당당하게 재의를 해서 부결시키자고 주장했다. 그러다보니 당내 혼란이 가중됐다. 하지만 당론은 자동폐기 쪽으로 기울어졌다.

   
 

새누리당은 어디로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재의는 정치적 데미지가 너무 크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새누리당에게 절대 득이 될 것이 없다. 재의를 하게 되면 재석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2/3 이상 찬성하면 법률로 확정된다. 만약 법률로 확정이 될 경우 새누리당은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왜냐하면 청와대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동반자 관계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까지 내다볼 수 있다. 물론 이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 이유는 새누리당 자체적으로는 재의를 하더라도 부결을 하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해서는 새누리당이 살아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만약 당청갈등이 극심해져서 박근혜 대통령이 탈당을 하게 될 경우 새누리당은 내년 총선에서 의석수 얻는 것을 거의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탈당하게 되면 보수 유권자는 둘로 쪼개진다. 즉, 박근혜 대통령 지지층과 새누리당 지지층으로 쪼개진다. 영남이야 원래 새누리당 텃밭이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승리가 예고되겠지만 영남 이외의 지역에서는 한 석도 못 건질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이 탈당을 하게 되면 친박도 탈당을 한다. 이는 새누리당이 분당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을 법률로 확정시키는 그런 미친 짓(?)은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타격이 크다.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의 정치적 타격이 크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유승민 원내대표도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리 그래도 유승민 원내대표는 현재 대구·경북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진 인물이다. 만약 유승민 원내대표가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되면 내년 총선에서 대구·경북에 파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구·경북에서 파란이 일어난다는 것은 새누리당으로서는 큰 충격이 되는 셈이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경북의 민심을 다독일만한 인물은 유승민 원내대표 이외에는 없다. 따라서 유승민 원내대표가 정치적 타격을 입는다는 것은 새누리당에게 큰 타격이 되는 셈이다. 때문에 새누리당으로서는 유승민 원내대표도 보호를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국회법 개정안 자동폐기 수순을 밟는 것이 결국 당론으로 결정됐다. 자동폐기로 당론을 모은 것은 곧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따르는 것과 동시에 유승민 원내대표를 살리는 길이다. 문제는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이 가만히 있겠냐는 것이다. 사실상 야당의 협조를 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사실 한 건의 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없게 된다. 즉, 사실상 국정은 올스톱되는 것이다. 이는 박근혜정부에게도 큰 타격이 되고 있다. 현재 박근혜정부는 국회에서 경제활성화 법안 등이 계류되면서 시행령 등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법안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은 마비 상태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새누리당으로서는 박근혜정부와 야당 사이에서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이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인해 당분간 새누리당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 됐다. 그동안 김무성 대표 체제와 유승민 원내대표 체제가 구축됐다. 이로 인해 한때 당청갈등이 보였는데 거부권 행사로 인해 당분간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됐다. 다만 그것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김무성 대표로서는 박근혜 대통령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몸부림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면 결국 친박과 비박 간의 갈등이 불가피해져 새누리당은 계파갈등의 늪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새누리당의 고민은 거기에 있다. 과연 어느 계파가 살아남느냐가 가장 중요한 상황이 됐고, 그 키(열쇠)를 박근혜 대통령이 쥐게 됐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하락할 경우 아마도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이 둘로 쪼개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