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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 당시 ‘지상 1층엔 식당 못 들어온다’ 약속했지만…
현대건설, 지하 1층 상인 동의없이 배기관 사용 논란
김씨, 소송서 이겼지만 경매중지신청 놓쳐… 분양금 일부만 받아
“현대건설과의 투쟁 기록, 책으로 낼 것”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우리나라 유명 건설사 중 하나인 현대건설. 하지만 명성에 걸맞지 않게 서민을 우롱한 사기분양 사건으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지난 2002년경 현대건설이 시공과 시행, 분양을 담당한 건물 현대41타워의 지하 1층을 분양받았던 김기수(55)씨. 그는 현대건설의 사기 분양 때문에 가게가 망하고 가정이 풍비박산 났다고 주장했다.

현대건설은 현대41타워 분양 당시 김씨에게 ‘지하 1층은 전문식당가’로 지정했으며 지상 1층에는 식당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해당 건물의 분양광고에도 이 내용을 명시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시간이 지나자 이를 무시하고 지상 1층에 식당 분양을 내주며 약속을 어겼다. 이뿐만 아니라 시공 계획과 달리 지하 1층에 마련된 도시가스와 배기시설을 지상과 공동으로 사용하게 해 지하 1층 식당 영업에 손해를 끼쳤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결국 김씨는 대법원까지 간 기나긴 법정 다툼 끝에 ‘승소’라는 열매를 맛보았다. 하지만 그 사이 김씨는 식당과 삶의 터전을 잃는 등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현재 그는 인터넷 등에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올리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지난 25일, 한 카페에서 사기 분양을 당한 지 13여 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김기수(55)씨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김기수 씨 ⓒ투데이신문

김씨 “현대건설 사기분양으로 가정 풍비박산”

때는 바야흐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현대건설은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자리한 40층짜리 건물인 ‘현대41타워’의 시행과 시공, 분양을 담당했다.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건설을 신뢰한 김씨는 오랜 요식업 경력이 있던 처형과 논의한 뒤 현대41타워 지상 1층의 일부 점포를 분양받을 계획이었다. 식당을 경영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지하보다는 지상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김씨는 2002년 7월경 현대건설 주택영업본부 분양팀 분양소장과 상담을 진행했다. 그런데 분양소장은 김씨에게 현대건설에서 지상 1층에는 식당이 아닌 은행, 증권사, 병원 등만 들어올 수 있도록 용도 설정을 해놨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하 1층을 전문식당가로 활성화할 것이므로 지하 1층을 분양받으라고 권했다. 현대건설이 제작한 홍보 전단을 보면 분양소장이 말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더불어 식당을 운영하려면 도시가스 시설과 배기시설이 마련돼야 하는데 지상 1층에는 해당 시설이 없다며 그를 설득했다.

이 말을 들은 김씨는 며칠 동안 건물을 살펴봤다. 분양소장의 말대로 지상 1층에는 배기시설과 도시가스 설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는 ‘정말 1층에는 식당이 들어오지 않겠구나’하며 안심했다. 또한 현대건설 관계자가 준 지하 1층 입점 예정표를 보니 모두 전문식당가였고 지상 1층 입점 예정표에도 대부분 생활편의시설 상가로 쓰여 있었다. 이를 보고 그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무엇보다 대기업인 현대건설이 제공한 자료를 신뢰했고 분양소장의 하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김씨는 현대건설에서 준 자료를 일주일 동안 살펴본 뒤 지하 1층에 있는 점포 두 군데를 분양받았다.

2002년 8월, 김씨는 지하 1층 40평짜리 점포 14호와 15호를 분양받아 갈빗집을 차렸다. 당시 지하 1층 14호 점포는 2억6천1백여만 원, 15호 점포는 2억4천4백여만 원이었다. 김씨는 평소 소신대로 정직하게 식당을 경영했다. 1등급짜리 질 좋은 고기를 사용했다. 이 때문인지 갈수록 손님이 늘었다. 손님이 많아지니 좀 더 큰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해당 건물 지상 1층에 약국을 임대주려던 것을 팔고 지하 1층, 바로 옆 점포를 하나 더 분양받아 식당을 운영했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듬해 6월경, 지상 1층에 식당 입점을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애초에 분양상담을 할 때 담당 분양소장이 지상 1층에는 식당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는데 말이다. 지하 1층에서 영업을 하던 식당 주인들은 모두 놀랐다. 이들도 김씨처럼 알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고 현대건설에 수차례 내용증명을 보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묵묵부답이었다.

   
▲ 현대41타워 분양 당시 홍보전단 ⓒ투데이신문

지하 1층에서 참치 집을 운영하던 안모 씨의 자필 진술서를 살펴보면 ‘현대41타워는 지하 1층을 전문식당가로, 지상 1층은 생활편의시설 상가(편의점, 문구, 커피, PC방, 병원 등)로 분양 계획 및 광고를 했다. (중략) 하지만 현대건설은 지하 1층을 기만하고 지상 1층에 전문식당 분양 및 임대까지 하고 있다. 계약서 제7조 1항(상가의 용도)에 정확히 명시하고도 이를 묵인하며 부당한 분양 및 임대거래로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같은 층에서 식당을 경영하던 신모 씨의 자필 진술서를 봐도 ‘진술인(본인)이 이곳에 처음 올 때는 현대건설과 분양사무실로부터 지상 1층에 식당을 분양하지 않고 냄새나는 영업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중략) 또 현대건설은 건물을 부수고 가스 배관 및 상하수도를 (공사하는 등) 불법 행동을 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본지>가 김씨로부터 입수한 당시 현대41타워 상가 공급 계약상에 나와 있는 제7조 1항(상가의 용도)을 보면 ‘‘갑(현대건설)’은 사업계획 승인 또는 건축허가 내용의 범위 내에서 작성한 분양계획(또는 분양 광고)의 내용에 따라 위 표시 상가를 위에 지정, 표시한 용도로 분양하고 이에 따라 개점 영업이 되도록 한다. 단, 분양계획(또는 분양광고)에 상가 용도를 지정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고 나와 있다. 더욱이 ‘현대41타워 지상 1층 면적표 및 가격표’를 보면 권장업종에 은행, 문구점, 약국, 편의점, 미용실 등이 표기돼 있다.

2003년, 김씨에게 잔인한 여름은 오고야 말았다. 그해 6월경 지상 1층에 식당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 현대41타워 분양 당시 홍보전단 ⓒ투데이신문

현대건설, 도시가스 빼돌리고 배기시설 무단 사용?

김씨를 비롯한 지하 1층 식당 업주들의 시름이 깊어지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현대건설이 지상 1층에는 도시가스와 배기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김씨 가게의 천장에 구멍을 뚫어 도시가스를 빼간 것이다. 이 일은 모두가 퇴근한 뒤인 저녁 늦게 진행됐다. 낮에 도시가스를 빼가면 자신이 반발할 것 같아 현대건설이 저녁에 몰래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김씨는 말했다. 이는 엄연한 불법행위라며 울분을 토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당시 지상 1층에는 51개 점포가 있었다. 현대건설은 지하 1층에 있는 도시가스를 빼가고 배기시설을 함께 사용했으며 이후 지상 1층에 중화요리점, 초밥집 등 절반(23개 점포)가량의 식당이 생겼다. 은행이나 병원에 임대를 주려고 분양받았던 사람들도 식당으로 임대를 주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지하 1층 식당 업주들은 발만 동동 구르며 그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현대건설은 분양계획서 용도대로 입점을 시켜야 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예를 들면 용도가 ‘병원’으로 돼 있는 점포에 ‘식당’을 분양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어 김씨는 현대건설이 분양계획서대로 최초 입점을 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었지만 지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상 1층에 식당이 생기면서 지하 1층에 손님의 발길이 뜸해지는 건 당연했다. 김씨의 가게 역시 손님이 뚝뚝 끊겼다. 손님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배기시설의 문제’였다.

김씨에 따르면 애초 지상 1층에 식당을 임대하지 않을 계획이었던 현대건설은 지상 1층에 제대로 된 도시가스와 배기시설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지하 1층 상인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지하 배기시설에 구멍을 뚫어 지상 1층과 공동으로 사용하게 했다. 한정된 배기구에 많은 연기가 들어가니 피해는 지하 1층 상가에 고스란히 돌아갔다. 예를 들면 옆 식당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참치 가게에 들어갔다. 또한 김씨의 가게는 고깃집이었는데 옆 가게의 청국장 냄새가 들어오기도 했다. 좁은 배기구를 지상 1층과 지하 1층에서 동시에 사용하니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이 때문에 지하는 공기도 좋지 않고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소문이 퍼져 김씨 가게는 매출이 갈수록 곤두박질쳤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 상황을 이야기하던 그가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자신의 식당에 아내를 포함해 직원 9명을 두고 있었다. 직원들 월급 주랴, 관리비 내랴 돈이 필요했지만 장사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 자녀 두 명도 대학에 다니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지하상가 사람들은 내용 증명만 보낼 뿐 상대가 ‘대기업’이기 때문에 소송할 엄두를 못 냈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라며 다들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지하상가 식당 업주들은 서서히 식당을 접어야 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김씨는 가게를 담보로 대출을 받으며 식당을 운영했다. 대출한 돈으로 직원들 월급도 주고 생활비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도가 차서 가족이 살던 46평짜리 아파트를 내놓아야 했다. 운영하던 식당을 팔기 위해 수소문해봤지만 선뜻 사겠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지상 1층에 식당이 있는데 지하에 와서 누가 밥을 먹겠냐’라며 둘러보기만 했다. 김씨는 가게가 팔릴 때까지 빚더미 속에서 3년간 영업을 이어갔다.

2005년 10월, 김씨는 눈물을 머금고 식당 문을 닫았다. 김씨는 “다른 사람들은 다 쪽박 차고 나갔는데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더라. 내 경제적인 상황이 엉망진창이 됐지만 현대건설의 사기분양을 그냥 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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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담당 변호사와 현대건설의 뒷거래 의혹 제기 

식당을 접은 김씨는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보호원, 인권위원회 등을 찾아가 문제 해결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일이 잘 해결되지 않자 결국 그는 2006년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분양대금반환 청구소송을 했다. 당시 김씨가 분양받은 지하상가 세 군데의 총분양가는 7억3천3백만 원가량이었다. 여기에 인테리어 비용 8천여만 원을 더하면 대략 8억이 넘었다. 그렇게 1심에서 현대건설을 상대로 8억1천3백여만 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한 것이다.

김씨는 고등법원에서 판사로 있었던 윤모 변호사를 선임했다. 김씨는 윤 변호사가 이 사건을 승소 가능성에 대해 자신 있어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해서, 그는 윤 변호사에게 착수금도 2배로 줬고 승소 시 비용도 8억1천3백여만 원에서 10%를 주기로 약속했다. 김씨 역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입증자료가 명확히 존재했으며 현대건설이 엄연히 계약을 위반한 사항에 대한 증명이 가능했기에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이 소송에서 이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소송을 준비하면서 늘어나는 빚에 아내와 자녀들은 지하 단칸방에서 살았고 김씨는 건축일을 다녔다. 이 대목을 얘기할 때 그의 충혈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김씨는 현대건설과 1년 6개월간의 기나긴 소송 싸움을 이어갔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현대건설의 손을 들어줬다. 패소의 이유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왔다. 당시 재판을 하면서 김씨 상가에 대한 경매도 진행되고 있었다. 법률상으로 소송 중에 경매가 진행될 경우 이를 중지할 수 있다. 김씨가 선임한 변호사가 ‘경매중지 신청’을 하면 법원은 받아준다. 그런데 윤 변호사가 경매중지 신청을 하지 않았고 결국 경매에 넘어간 김씨의 가게는 5억 원가량에 낙찰됐다. 김씨는 이런 사실을 1심 재판 판결문이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민법 제553조(훼손 등으로 인한 해제권의 소멸)에는 ‘해제권자의 고의나 과실로 인해 계약의 목적물이 현저히 훼손되거나 이를 반환할 수 없게 된 때 또는 가공이나 개조로 인해 다른 물건으로 변경된 때에는 해제권은 소멸한다’고 나와 있다. 1심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김씨의 목적물이 경매에 넘어갔으므로 ‘해제권의 소멸’을 이야기하며 분양대금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08년 5월, 1심 재판부는 ‘목조물(점포)이 없어졌기 때문에 이를 기각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률적인 부분에 무지했던 김씨는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그는 “결국 현대건설이 계획적으로 시간을 끌어 상가(해제 목적물)를 다른 사람 소유권으로 넘어가게 했다”면서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내 소송대리인인 윤 변호사는 재판 중에 경매중지 신청도 하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현대건설의 사기분양을 입증할 자료도 충분했고 증인도 있었는데, 패소하니 그는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변호사에 대한 불신이 컸다. 김씨가 변호사와 사무장을 찾아가 따지니 사무장은 김씨가 경매중지 신청을 하지 말라고 해서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현대건설 vs 김씨… 대법원, 김씨 승소 판결 내려

결국, 김씨는 변호사를 고소하는 등 또 다른 싸움을 시작했다. 동시에 2심 재판도 준비해야 했다. 김씨는 변호사법 제24조(품위유지의무 등) ‘변호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에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해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을 근거로 서울변호사협회와 대한변호사협회에 진정서를 냈다. 하지만 해당 변호사는 ‘혐의 없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고 김씨는 착수금을 비롯한 인지대 등의 비용을 돌려받을 뿐이었다.

김씨는 분을 품고 현대건설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당시 인근 주민들이 밥이나 음식 등을 갖다 주며 힘을 내라고 했다. 주변인들은 ‘너만 골병드니까 그만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가겠다’는 마음으로 1인 시위와 소송을 이어갔다. 그는 약 1년 6개월간 텐트 안에서 지내며 현대건설 본사 앞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변호사에 대한 불신이 깊었던 김씨는 혼자서 2심을 준비했다. 경매로 자신의 점포가 넘어가 현대건설 측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돈은 5억7백여만 원이 빠진 3억1천3백만여 원이 됐다. 게다가 이 액수에는 인테리어 비용 8천여만 원이 포함돼 있었는데 당시 돈을 아끼고자 인테리어 업체를 통하지 않았기에 세금계산서를 끊기가 어려워 인테리어 비용이 빠진 2억2천5백여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김씨는 2심에서 현대건설이 2003년 1월경부터 지상 1층 51개 점포 중에서 23개 점포를 음식점으로 분양해 분양 계약상의 채무를 불이행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현대건설은 분양계획 또는 분양광고에 지하 1층은 식당으로만, 지상 1층은 ‘식당 제외한 편의시설용도’로만 용도 지정해 분양할 것을 약정한 적이 없다고 맞섰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분양 당시 현대건설은 지하 1층과 지상 1층 별로 업종을 중복되지 않게 지정했고 김씨(수분양자)는 지정된 층별 업종 범위 내에서 분양계약서에 지정 품목을 기재해 분양을 받았는바, 사정이 이와 같다면 현대건설(분양자)이 김씨에게 특정영업을 정해 분양한 이유는 해당 업종을 독점적으로 보장하고 이를 통해 분양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결국 김씨는 지정업종이 보장된다는 전제 아래 현대건설과 계약을 체결했으므로 지정업종에 대한 경쟁영업금지의무(경업금지의무)는 분양자인 현대건설에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여기서 경업금지의무란 특정상인의 영업을 보호하기 위해 그 상인과 일정한 관계가 있는 자(상업사용인·영업양도인)에게 그의 영업과 경쟁적 성질을 띠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재판부는 현대건설이 분양자로서 층별 간 지정업종과 품목 제한을 유지해 기존 영업자들의 영업권을 실질적으로 보호해야 할 경업금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더욱이 현대건설의 채무불이행은 분양계약의 주된 채무의 불이행에 속한다며 김씨는 이를 이유로 분양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 현대건설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기각하며 김씨의 승소를 인정했다. 이로써 2009년 11월 대법원의 최종 판결로 사건은 종결됐다.

한편, 현대건설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이미 소송을 통해 보상이 끝난 사건”이라며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다.

   
▲ 김기수 씨 ⓒ투데이신문

“정의를 바로 세워주세요”

김씨는 재판에서 승소해 현대건설로부터 2억2천5백여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껏 싸워온 시간, 풍비박산된 가정, 막대한 손실에 비하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다. 김씨는 이 돈으로 빚을 갚고 전셋집 하나를 마련했다. 이후 그는 공사장 막일, 버스 운전 등을 하면서 삶을 꾸려나갔다. 현재 그는 보험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그에게는 슬하에 두 딸이 있다. 큰딸은 좋은 신랑을 만나 결혼해 두 살배기 아들이 있다. 손자의 사진을 보여주는 그의 눈이 반달로 변하는 것을 기자는 보았다.

김씨는 현대건설과의 투쟁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책을 내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과 같은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대기업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양산된 것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것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해당 사건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까닭이다.

그는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기자님, 이 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워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진정으로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주체는 누구일까. 김씨와 같은 피해와 아픔이 반복되는 ‘돌림노래’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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