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1부>

   
▲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도망가기 바쁜 대한민국
바로 잡지 못한 역사는 결국 반복돼

통진당 해산, 민주주의 목 조른 사건
전시작전권 환수, 부끄러운 일

상식적인 주장이 빨갱이로 몰려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있어야 진보가 발전

【투데이신문 임이랑 기자】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Thucydides)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주장했다. 역사는 한 나라의 변천과 흥망을 기록해 놓았기 때문에 영광과 아픔이 공존해 있다. 그렇기에 영광스러운 역사와 아픔의 역사는 반복된다. 마찬가지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도 영광스러운 역사와 아픔의 역사가 공존했고 또 반복됐다.

과거 삼국시대 때 고구려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중국의 천하관을 따르지 않고 하늘을 다스리는 천제(天帝)와 천하를 다스리는 천손(天孫)을 만들고 천손이 다스리는 천하는 고구려가 중심이 돼야한다는 ‘고구려 천하관’을 내세웠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해 한민족은 만주에서 그 위세를 떨쳤다. 만주벌판에서 한민족의 영광스러운 역사는 이렇게 반복됐다.

이러한 한민족의 영광스러운 역사 속에 아픔의 역사도 있다. 조선시대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이때 조선의 임금인 선조는 피난을 가기 위해 사대문을 잠갔다. 결국 백성들은 사대문이 굳게 닫혀 피난을 갈 수 없었다. 경북궁, 창덕궁과 같은 궁궐은 왜놈의 군대가 아닌 분노한 백성들이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을 버리고 나홀로 피난을 갔다. 선조와 비슷하게 한강대교를 폭파해 국민들의 피난을 막았다. 여기에 서울이 수복된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피난 가지 못한 국민을 인민군에게 부역했다는 누명을 뒤집어 씌어 처벌했다.

그리고 지난해 수학여행을 떠났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은 목적지인 제주도에 가기 위해 세월호라는 배에 올랐다. 진도해상에서 세월호는 침몰했고 끝까지 배를 지켜야하는 선장은 제일 먼저 탈출했다. 잘못된 아픔의 역사가 반복된 것이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바로 잡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며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대한민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책임을 지는 사람은 사회지도층이 아닌 백성과 일반 국민들이었다”며 “이들이 있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침몰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게 됐다”고 말한다.

<투데이신문>은 ‘걸어 다니는 현대사’라고 불리는 한홍구 교수와를 찾아가 지난 1년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여기에 인터뷰를 1부와 2부로 나눴다. 1부에서는 최근 한홍구 교수가 쓴 <역사와 책임>이라는 책 소개와 함께 대한민국 과거의 간첩조작사건과 국정원 정치개입 그리고 역사학자가 바라본 대한민국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2부에서는 역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 최근에 막은 내렸지만 손배가압류를 주제로 한 연극 <노란봉투> 제작자로 활동했던 한홍구 교수에게 <노란봉투>를 제작한 배경과 노동문제 그리고 세월호 참사 등과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볼 예정이다.

Q. 지난 1년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등 많은 일이 있었다.

: 그렇다. 지난 1년간 정말 크고 중요한 사건들이 많았다. 세계에서 배를 가장 잘 만든다는 나라에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300여 명이 그대로 물에 잠기는 상황을 국민들은 지켜만 봐야 했다. 여기에 1958년 진보당 해산처럼 통합진보당이 해산 당했다. 전시작전권 회수는 사실상 포기했다. 그리고 군부독재 시절에 있었던 간첩 조작 사건이 최근에 다시 발생했다. 역사학이라는 게 분명 과거를 다루는 학문이지만 역사학자인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지금 이 순간, 여기다. 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를 만큼 지난해는 힘든 한 해였다.

Q. 그 사이 <역사와 책임>이라는 책을 집필하셨다.

: 세월호 참사는 나로 하여금 <역사와 책임>이라는 책을 쓰게 했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준엄한 질문을 던졌다. 세월호 선장이었던 이준석 선장은 제일 먼저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은 희생정신을 발휘해 침몰하는 배 안에서 구명조끼가 모자라니 자신이 입고 있던 것을 벗어 친구에게 주고 어린아이부터 나가라고 먼저 내보내기도 했다. 문만 열면 탈출할 수 있던 5층 갑판의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찾으려고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상하게 우리나라는 책임을 지는 사람들과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 뒤바뀌어 있다. 그러니 군대도 안 간 사람들이 매일 안보 타령을 하고 거기에 조금만 비판을 가하면 ‘종북’ 딱지를 붙인다. 한국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있고 많은 권한을 가지는 사람들은 책임을 안지고 모두 도망가기 바쁘다. 이준석 선장처럼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 사회지배층으로 가서는 안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나마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항상 무거운 책임을 졌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침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고 본다.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이 맡아야한다.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방향키를 잡고 선장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무거운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로 책의 제목을 <역사와 책임>이라고 정했다.

   
▲ 서울시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 ⓒ뉴시스

▲국정원 간첩 조작, 계속될 것

Q. 지난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사건을 말하자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다.

: 해당 사건을 살펴보자면, 2013년 국가정보원은 서울시청에 근무하고 있던 탈북자 출신 공무원 유우성 씨가 간첩활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유우성씨가 간첩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바로 유우성 씨의 중국‧북한 간 출입기록이었는데 중국 대사관에서 출입기록이 위조라고 회신을 보내면서 간첩조작은 실패로 끝났다. 군부독재 시절에나 가능했던 간첩조작 사건이 다시 발생한 것이다. 간첩을 만들다가 걸렸을 때 불이익은 별로 없지만 만들기만 하면 출셋길이 열린다.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 선양에서 유우성씨의 출입기록을 위조해 준 영사관이 과거 국정원 과거사위의 조사관이라는 것이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간첩 조작 사건을 반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이러한 조직에서 일했던 사람이 간첩 조작에 참여했다면 이미 말 다한 것이다. 결국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국정원 과거사위는 인적 청산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과거 청산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을 사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 정치를 하게 되면 국정원을 동원하고 싶은 유혹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을 이용하지 않은 것보다는 철저하게 개혁을 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 관료들을 너무 믿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국정원 관료 중에는 군부독재 시절 간첩조작을 한 것에 대해 반성하는 사람도 있고 후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국정원의 체질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Q. 그렇다면 간첩은 정말 존재할까.

: 북한 간첩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사람 몸속에는 기생충과 세균이 득실득실하다. 하지만 그게 내 몸을 위협하느냐 안 하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즉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북한 간첩도 문제지만 미국 간첩과 중국·일본 간첩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는 것 같지 않다. 오로지 북한 간첩만을 쫓는 그 편향성. 대한민국 공안 검사들은 북한 간첩을 잡는 것과 실제로 없는 북한 간첩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안보를 위협하고 경제적 이익을 위협하는 중국 간첩도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미국 간첩을 말하면 ‘미국 간첩이 왜 있어?’라고 생각하겠지만 ‘로버트 김’ 사건을 좀 생각해봐야 한다. 1996년에 미 해군 정보국 소속으로 근무하던 로버트 김이 미국 정부가 가지고 있던 북한군 기밀 사항을 한국 정부에 넘겨줬다는 혐의로 연방법원에서 간첩 음모죄로 9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최고의 우방국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이 대한민국의 주적인 북한군 정보를 넘겼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오로지 국가보안법만을 통해 북한 간첩만을 쫓는다. 이러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간첩을 양성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가 이익을 침범하는 여러 나라 간첩들과 산업스파이들도 신경 써야 한다. 안보를 주장하면서 출세하는 사람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지 의심스럽다.

Q. 국정원이 대통령선거 당시 댓글로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 국정원은 항상 사회 전반에 개입해 왔다. 과거 3.15부정 선거에 의해 4.19혁명이 터졌다. 이때에는 김주열이라는 부정선거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었기에 혁명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부정선거나 비리 같은 것이 말도 못하게 교활해졌다. 그리고 언론이 이러한 비리나 부정선거를 다 덮어주고 있다. 채동욱 사태만 봐도 그렇다. 국민들은 왜 채동욱이 쫓겨나고 사직을 해야 하는지에 관심은 없고 보수언론이 만들어내는 프레임에 갇혀 혼외 자식한테만 관심을 가졌다. 교묘해진 방법과 덮어주는 언론, 여기에 무능한 야당, 이 3가지가 앞으로 더욱더 사회 전반에 국정원이 개입할 여지를 줄 수 있다고 본다.

   
▲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 제헌헌법, 당시 민중들 꿈과 요구가 담겨

Q. 국정원에 의해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국회의원이 내란 혐의(무혐의 처리를 받음)로 구속됐다. 군부독재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내란 사건이 다시 생겼는데.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나라는 총 11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 중 10명 정도는 내란과 연관이 있다. 우선 이승만 대통령은 4·19혁명 이후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로 인해 시민과 학생들에 의해 내란죄로 고발당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은 다들 알다시피 내란의 수괴였다. 여기에 김대중 대통령도 전두환 정권 시절 내란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최규하 대통령은 실제 법정에는 서지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내란을 방조한 혐의가 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이명박 대통령도 박정희 정권 당시 굴욕적인 한·일 협정에 반대해 고려대학교에서 결성된 ‘구국투쟁 위원회’의 집행부였고 이때 ‘배고파 못 살겠다 악덕 재벌 잡아먹자’ 같은 선동적인 구호를 외치며 검찰에 구속됐는데 당시 내란죄로 징역형을 살았다. 노무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국민행동본부 같은 수구단체에 의해 내란·외환죄로 고발당했지만 갑작스러운 서거로 조사는 받지 않았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을 하려면 이력서에 내란죄는 한 줄 정도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여기에 이석기 통합진보당 전 국회의원의 내란 혐의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

Q. 통합진보당이 해산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 통합진보당의 해산은 이미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대통령 후보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일본군 장교 ‘다카키 마사오’라고 부르고 ‘친일과 독재의 후예인 박근혜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할 때부터 해산이 확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심판을 청구한 이유는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이다. 이석기와 그 추종자들끼리 대화한 것은 사실 국민들이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시골동네에서 이름 없이 대중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국정원 직원이 감시하면서 전쟁나면 ‘저 놈부터 없애야해’라는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공포감을 느끼겠는가. 그래서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헛소리를 좀 한 것이다. 물론 그 헛소리가 국민들이 듣기엔 참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우리 역사 속을 좀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이 느낄 공포와 함께 충분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석기와 그 추종자들이 한 대화가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불러왔다. 민주사회에서 국민이 동의할 수 없는 말을 이석기가 했지만 이러한 것은 토론을 통해 충분히 정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Q. 통합진보당이 해산 당할 당시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통합진보당의 최종 목적으로 사용됐다하여 큰 쟁점이 됐다. 하지만 백범 김구 선생님, 여운형, 김규식 선생님께서도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해 주장하지 않았나.

: 제헌헌법을 만든 유진오 박사가 제헌헌법의 해설서인 <헌법해의>라는 책을 썼다. <헌법해의>에서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민주주의를 제헌헌법의 기본 정신이라고 했다.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것은 좁은 의미로 사회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이게 바로 진보적 민주주의 헌법이다. 임시정부 또한 진보적 민주주의에 입각해 국회와 정부를 구성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해방이 되면 지구상에서 가장 진보적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하지만 수구 진영은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려고 한다. 통합진보당이 해산 됐을 때 <조선일보>의 헤드라인은 ‘헌법이 대한민국을 구했다’고 썼다. 하지만 우리의 헌정사적인 기초가 되는 것은 임시정부이고 이 임시정부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제는 헌법을 저 공안세력으로부터 구해내야 한다. 제헌헌법의 기본 정신과 대한민국을 세울 때 우리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

Q. 이처럼 한때 제3당이었던 통합진보당이 힘없이 해산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국민들의 학습된 패배주의가 작동을 한 부분도 있고 원내 제3당이 해산을 당하는데 길바닥에 시민들이 천명도 안 모였다. 정말 맥없이 해산을 당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아마 똑같은 이유로 다른 정당이 이처럼 해산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당시 우리는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몸을 내던져 싸워야했다. 그리고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선물인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통해 성숙한 민주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를 뒤로 물러서게 하고 민주주의를 목 졸랐다.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정의당 모두 통합진보당이 힘들 때 똥물이 튈까봐 도망가고 피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이 지금 남아있는 정당과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봐야 한다.

Q. 우리나라는 사회·정치적 영역의 문제를 자기 조절 기능에 맡기지 못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로 가져간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문제다. 이렇게 된 중요한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민주 정부가 재창출 된 것에 있다. 수구세력 입장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은 IMF도 있고 DJP(김종필·김대중)연합도 있었고 이인제 씨가 출마해 당시 유력한 이회창 후보의 표를 빼앗아 간 것도 있었다. 여기에 당시 ‘32년 군사독재를 바꾸자’라는 시대적 주문과 함께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도 있었다. 그러니 선거에 패해도 수구세력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한테 질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그리고 2014년 17대 총선을 통해 처음으로 여당이 단독 과반수가 됐다. 그러자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가 모두 민주세력에 넘어가게 됐다. 수구세력은 이러한 상황에 상당히 불안해했다. 이때 선출하지 않는 사법 권력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우리가 중심이다’를 외쳤다. 여기에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국면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치고나가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스스로가 수구세력과 집권세력의 발밑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전교조 판결도 마찬가지다. 보수 수구세력의 아성으로 선출하지 않는 권력이 사법부를 통해 십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Q. 이처럼 견제 받지 않는 사법부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대법원 직선제나 사법권에 대한 자격조건을 강화해 좀 더 시민들의 뜻이 반영되고 대통령과 집권당에 좌지우지 하지 않게 개혁해야 한다. 대법원장이라는 자리도 법관들의 선거로 선출하는 나라가 많다.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법원은 서울대 법대 나온 50대 아저씨들이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을 좀 다변화 시켜야한다고 본다.


Q.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이 제헌헌법이다.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는데 제헌헌법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제헌헌법은 당시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제헌헌법 같은 경우에는 우파들이 만들었지만 당시 시대의 요구를 거스르지 않았다. 일제에 해방됐을 때 ‘우리가 살아야 할 나라는 이런 나라다’는 민중들의 꿈과 요구가 담겨있는 게 제헌헌법이다. 비록 우파들이 만들었지만 그 꿈이 지금의 진보 정당의 강령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다. 대한민국 사회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진보세력이 다 죽고 그 꿈을 꿨던 사람들과 기억하는 사람들도 모두 죽었다. 하지만 지금 소수가 남아 이러한 꿈을 다시 꾸고 기억해내고 있다. 이들은 흔히 보수진영에서 말하는 ‘종북좌파’들이다. 제헌헌법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빨갱이’, ‘종북좌파’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파가 만든 제헌헌법이지만 죄다 빨갱이 소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재 대한민국은 노동3권이 전혀 지켜지고 있지 않지만 제헌헌법 18조에는 노동 4권을 보장했다. ‘이익분배 균점권’이라는 말이 있는데 기업에 이익이 발생하면 노동자들이 그 이익을 나눠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통상 기업의 이익은 자본가 것이고 이익을 많이 거두면 거둘수록 자본가들이 기분 좋게 노동자들에게 보너스를 주면 모를까 노동자들이 기업의 이익을 넘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헌헌법에는 기업의 이익을 노동자와 함께 나눠 먹을 권리도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 제헌헌법 전문을 보면 1919년 대한민국이 ‘건국’ 됐고 1948년 해방된 후 대한민국은 ‘재건’ 됐다고 명시해 놨다. 하지만 1948년을 ‘건국’으로 주장하는 뉴라이트와 같은 수구들이 자신들의 주장에 반하는 제헌헌법을 학교에서 가르치겠는가.

   
▲ 통합진보당 해산을 반대하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 ⓒ뉴시스

▲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멸종…‘빨갱이’ 타령 일색

Q. 지난 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문제 해결에 대해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싸움이 계속됐다. 흔히 대한민국 사회에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없다고 하는데 왜 보수주의자가 필요한가.

: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존재해야 한국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며 진보주의자들도 발전한다. 하지만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보수들은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빨갱이’ 타령만 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 나타나 국민을 설득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우리 사회가 굉장히 피곤해져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국민 300명이 배 안에서 사망했다. 모두가 슬퍼하다가 반년쯤 지나니 유가족들을 돈 밝히는 사람들이라며 여론공작을 펼치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고 보는가. 국가 최고정보기관은 어떤가. 전 세계가 정신없이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개별국가가 중요한 정치공동체로서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 최고정보기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은 앉아서 궁리하는 게 ‘댓글을 어떻게 달까’, ‘문재인은 빨갱이’, ‘전교조를 어떻게 없애볼까’ 등 이런 것만 연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이라면 남북관계를 어떻게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급변사태에 대비할 것인지에 대해 혹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 더듬이를 가지고 정세가 악화 됐을 때 국민들에게 대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 줘야하는데 이런 부분에서는 빌빌대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칭 보수라고 주장하는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자 혹은 정치인들이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Q. 그렇다면 교수님의 이념은 진보주의자인지 보수주의자인지 알고 싶다.

: 나는 요새 보수를 사칭하고 다닌다.(웃음) 솔직히 우리 집안이 엄청나게 보수적이었다.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랐지만 내 주변 친구들은 진보주의자들이 많다. 하지만 내가 주장하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나는 진보가 아니다. 예를 들어 노동문제에 대해 나는 인도적인 관점과 상식적인 관점에서만 주장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을 이념적으로 쫙 세운 다음 거기서 편을 가른다면 내가 왼쪽에 치우쳐져 있을 수 있겠지만 사회적 이슈를 하나하나 놓고 봤을 때 내 발언이 좌파적인 혹은 진보적인 주장을 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상식을 주장했다고 생각한다. 내 주영역이 과거사다. 그렇기에 ‘멀쩡한 사람 잡아다 두들겨 패서 간첩 만드는 행위들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진보적 아젠다(Agenda)인가. 아니면 보수적 아젠다인가.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 진보와 보수가 어디 있나. 나는 이런 역사적 사건에 침묵하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시민권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쌓아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인가. 물론 침묵 한다고 시민권을 안 주는 것이 우습지만 시민들이 잘못된 과거와 역사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중대한 위협을 당하는 사건과 사고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발언하는 내가 진보인가, 보수인가. 나는 보수주의자다.

Q. 새정치민주연합 계파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문제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시로 당이 움직였을 때와 지금을 비교한다면 당내 구조가 상당히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쉽게 이야기하면 남대문 시장의 사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시장의 발전을 위해서 여기다가 과감하게 상점 몇 개 드러내고 어린이집을 만들어놔야 젊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왔을 때 쇼핑을 하고 그러면 시장이 활성화 되겠다’라고 생각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너희들 여기서 상점 빼’하면서 사장이니 재계약도 안 해주고 어린이집을 만들 사람이다. 이러면 시장자체가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은 당대표가 상인연합회 회장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시장 발전을 위해 어린이집을 만듭시다’고 하면 상인들 모두 ‘옳소’라고 하며 합의는 하지만 나중에 ‘그럼 어느 가게를 뺄 거야?’ 하면서 우왕좌왕한다. 결국 아무도 가게를 빼지 않는다. 여기에 상인연합회 회장인 당대표는 가게를 뺄 힘도 없다. 이건 당내 민주화가 된 것이 아니다. 여태껏 새정치민주연합은 스타 정치인에 의존해 왔다. 그렇기에 지금처럼 스타 정치인이 없으니 빌빌 거리는 것이다. 그래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개개인을 보면 60~70년대 국회의원보다는 낫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같은 사람이 없고 새누리당에서는 김영삼 대통령 같은 사람이 없으니 서로 빌빌대고 있다.

Q.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 새정치민주연합은 과거 실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IMF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너무 빨리 여당이 되면서 130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지만 야당성을 잃어버렸다. 너무 이른 집권으로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은 투쟁의 근육을 잃어버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국적으로는 야당일지 모르나 호남에서 만큼은 계속 여당 노릇을 해왔다. 선거에서 패하기만 하면 중도니, 우클릭이니 하는 말을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역사를 따져보면 야당이 언제 가장 표를 많이 얻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야당을 우클릭하게 만든 유진산, 이철승, 이택희, 이택돈과 같은 사람들에게 역사는 어떻게 평가했는가. 바로 여당의 2중대라는 소리를 들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야당성을 회복하기 위해 민주주의 계승의 역사성, 노동자들의 꿈을 담아내는 진보성 강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열심히 싸우는 실천성이 필요하다. 여기에 DJ의 정신을 복원해야 한다.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에 DJ 정신, 광주 정신을 계승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 여기에 민주진보 진영이 단결해야 한다. 과거 동작을에서 노회찬 후보가 패배했다고 단일화가 소용없다는 말이 나왔지만 과거 조봉암이 왜 독자적인 진보 정당을 만들기 전 민주당 입당을 시도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0년 집권 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싸움의 의지를 다지고 근육을 회복해야 한다. 야당성을 잃은 야당에 시민들은 굳이 표를 줘야 할 이유가 없다.

Q. 앞으로도 한국정치에서 지역감정이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까.

: 앞으로도 지역감정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역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전라도 노동자와 경상도 노동자가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 같은 노동자로서 이익에 따라 판단하고 움직이면 지역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이게 바로 계급정치다. 노동자로서 계급적 자각이 계급의식을 싹트게 한다. 그러면 이때부터는 계급의식에 의해 행동하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여기에 맑은 물이 담긴 양동이가 있다. 똥물 때문에 양동이가 더러워졌다면 다시 이 물을 맑게 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맑은 물이 필요하겠는가. 아마 저수지에 있는 물을 다 퍼부어야 할 것이다. 모두에게 ‘여기 물탱크에 있는 물은 우리가 마셔야 하니까 똥물 부으면 안 돼’라고 말하면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이 물탱크를 누가 지켜줘야 하나. 바로 국가가 지켜줘야 한다. 일반 국민이 물탱크 앞에서 불침번 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똥물이 맑은 물에 한번 풀리면 회복하기 힘든데 자꾸 주기적으로 똥물을 붓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려면 이렇게 똥물을 푸는 사람들에게 엄정한 잣대를 통해 처벌하고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패가망신을 시키고 앞으로 햇빛 못 보게 감옥에 평생 넣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법 집행을 하지 않는다. 하는 시늉만 한다. 자신들의 서식지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을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제대로 처벌하고 쫓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역감정은 한국 정치와 사회에 계속 영향을 미칠 것이다.

<<2부에서 계속…>>

   
▲ 정수장학회 관련 특강에서 발언하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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