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카노사의 굴욕, 그 이후?
[칼럼] 카노사의 굴욕, 그 이후?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7.09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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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카노사의 굴욕은 중세 유럽에서 교황의 권위가 황제의 권위보다 높음을 확인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카노사의 굴욕은 1077년, 독일 왕(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게 굴복해서 사면을 구한 사건이다. ‘신성(神聖)로마제국’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신성로마제국은 처음에는 특정한 국가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동로마제국에 대항하는 의미로 프랑크 왕국에 교황이 붙여준 명칭이다. 이후 프랑크 왕국을 일컫던 신성로마제국은 독일에게 붙여진 명칭이 되었고, 이후 독일 황제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결국 신성로마제국은 건국 자체가 당시 기독교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국가였다. 즉 세속적인 국가가 아닌 매우 종교적인 국가였다는 의미이다.

카노사의 굴욕은 신성로마제국 내의 성직자 임명권을 놓고 하인리히 4세와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7세 사이의 대립에서 시작되었다. 당초 로마 교황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하인리히 4세는 자신의 힘이 강대해지자, 자신의 궁정 신부를 신성로마제국 대주교에 임명하였다. 이에 그레고리오 7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교 임명권이 침해받았다고 판단했고, 이와 관련한 협상을 하인리히 4세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주교들의 지원을 믿고 있던 하인리히 4세는 이 협상 요구를 거절하였다. 이에 그레고리오 7세는 하인리히 4세를 파문(波紋, 특히 천주교에서 신자로서의 자격을 빼앗고 그 종교에서 내쫓는 일.)시키고, 2개월 안에 파문이 풀리지 않을 경우 황제의 자리도 박탈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중세 유럽에서 파문을 당한다는 것은 신변까지 위태로울 수 있는 일이었다. 가톨릭이 국교로 공인되어 있고, 당시 가톨릭 이외의 종교나 가톨릭이 이단으로 규정한 종파는 엄청난 탄압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즉 하인리히 4세가 파문을 당할 경우 황제의 신분은 물론이고, 이교도로 낙인찍혀서 목숨마저도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의미이다. 결국 하인리히 4세는 이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1077년 1월 말, 북이탈리아의 아페닌 산중의 카노사(Canossa) 성에 머물던 교황을 방문했다. 그리고 눈 속에서 3일간 맨발로 성문 앞에 꿇어앉아서 교황에게 용서를 빌고, 파문을 풀어줄 것을 애원해서, 겨우 파문을 풀 수 있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로 인해 보통 카노사의 굴욕은 당시 황제의 권위보다 로마 교황의 권위가 더 높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이후의 이야기를 보면, 교황의 권위가 높았던 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인리히 4세는 교황에게 사면권을 얻음으로서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세력들을 모두 무력화 시킬 수 있었고, 반면 그레고리오 7세는 황제의 권위가 약해진 틈을 타서 독일의 귀족과 연대하고, 황제까지 굴복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이후 하인리히 4세는 1080년 다시 그레고리오 7세에게 저항하였고, 이에 그레고리오 7세는 다시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하고 황제 자리에서도 쫓아냈다. 그런데 1080년의 하인리히 4세는 독일 주교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고, 귀족들 역시 교황이 자신들의 권위를 침해하는 것에 반발하고 있었다. 이러한 세력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하인리히 4세는 역으로 그레고리오 7세를 교황 자리에서 쫓아내고, 그 자리에 클레몽스 3세를 앉혔으니, 이것이 바로 대립 교황이었다. 그리고 하인리히 4세는 군대를 이끌고 로마 교황청으로 쳐들어갔다. 이에 그레고리오 7세는 기스카르(Robert Guiscard) 공작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이 기회를 이용해서 기스카르 공작은 교황을 구원하는 동시에 로마시 소유의 모든 재산까지 독식하였다. 그리고 여기에 반발한 로마 시민들에게 쫓겨서 그레고리오 7세는 이탈리아 남부까지 피신했다가,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카노사의 굴욕의 전후를 모두 고려했을 때 로마 교황의 권위는 높아졌을까? 카노사의 굴욕 당시까지는 분명히 로마 교황의 권위가 황제의 권위를 넘어서 절정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교황의 권위는 이후 오히려 황제의 권위에 굴복했고, 그레고리오 7세는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이후 영원할 것 같던 로마 교황의 권위는 과학 기술의 발전과 종교의 권위의 하락으로 인해 더 이상 카노사의 굴욕 때와 같은 권력을 누릴 수 없을 정도로 추락했다. 오히려 이후 가톨릭은 자신들의 권위를 세상에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 다른 종교와의 대화, 십자군 전쟁이나 마녀사냥, 여러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 등으로 통해서 인기 있는 종교가 되었다.

2015년 대한민국에서 여당의 원내대표가 사퇴를 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원내대표는 헌법에서 밝힌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직분을 다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대통령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몇 차례에 걸쳐서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였고, 결국 원내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기에 이르렀다.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그리고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과연 대통령과 여당의 전 원내대표 가운데 누가 지지를 받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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