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교육부에서는 2018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병기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시행될 경우 박정희가 1970년 ‘강제로’ 한글전용정책을 시행한 이래 45년 동안 유지되었던 틀이 깨지게 된다. 그러나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대번에 반대를 하고 나섰고, 한자(한문)교육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거나, 한자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나는 대학에서 ‘생활한자’와 ‘교양한문’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우선 나는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교육부의 발표에 ‘반대’한다. 교육부에서 초등학교 수준에 필요한 한자를 선별하겠다고 밝혔지만,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한 이상 일선 교사들이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아무리 기본적인 한자라고 해도 한자교육은 비전공자가 해선 안 된다.

위의 문제를 해결 한다손 치더라도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한다고 해서 초등학생들이 우리말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초등학교 교과서에 반드시 한자를 넣어야 이해할 수 있는 단어는 많지 않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무엇을 근거로 단어를 선별할 것인가. 정작 이해가 필요한 단어에는 한자병기를 하지 않고, 한자가 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단어에는 한자가 병기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다만 한자병기를 하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실은 학생들 가르치면서 약간의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초등학생은 물론, 중고생, 심지어 대학생들의 어휘력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단어의 뜻을 알려주면서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르지’ 할 때가 많다. 오죽하면 대학에 우리말 단어를 가르치는 ‘한자’과목이 개설될 지경이 되어 버렸을까. 이를 두고 한자(한문)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원인을 ‘한글전용 정책으로 인한 한자 경시풍조’에서 찾는 경우가 있다.

틀리지 않지만, 맞다 할 수도 없다. ‘한자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에는 ‘한문’과목이 개설되어 있다. 중학교에서는 필수과목으로 고등학교에서는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는데, 국어ㆍ영어ㆍ수학ㆍ사회ㆍ과학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교에서 한문과목은 늘 소외되어 왔으며, 시수가 적어서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할 기회 자체가 부족하다. 이런 가운데 중학교에서는 ‘집중이수제’를 핑계 삼아 1학년 때 전 학년 과정을 가르치고 끝내 버린다. 고등학교에서는 ‘선택과목’으로 분류되다 보니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다.

이 상태 그대로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한다. 알다시피 대학교재는 단어의 난이도가 높아진다. 교재 뿐 아니라 문ㆍ이과를 막론하고 한자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하는데 중고등학교 시절에 한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 학생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글쓰기 과목을 가르쳐보면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학생들한테 단어의 뜻을 물어보면 무슨 말인지 모르거나, 모호하게 대답을 흐리는 경우가 매우 많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라는 말은 매우 부풀려진 사실이지만, 한자를 알아야 뜻을 제대로 알고 구사할 수 있는 말이 많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싫든 좋든 우리나라는 대략 1300년 전에 중국에서 한자를 들여와 썼다. 현재 영어가 그러한 것처럼 한자 역시 우리말에 많은 영향을 줬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남아와 일본까지 한자의 영향권에 들어 있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우리말에 영향을 주고, 이제는 우리말의 일부가 되어 버린 한자어를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자는 중국의 것이지만, 한자어는 우리말이다. ‘한문’은 전공할 사람이 배우면 그만이지만, ‘한자’는 배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말인 ‘국어’를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깊이 생각할 수도 있게 된다.

그러니까 문제는 ‘한자병기’가 아니라 ‘한자교육’이 되어야 하겠다. 한자 병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한글전용론자들 말대로 한자를 병기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다. 대신 한자를 배워놓지 않으면 의사소통은 가능할지 모르나 어려운 책은 읽기 어렵고, 깊이 있는 글을 쓰기 쉽지 않다. 한글을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는 말이다.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사교육’ 문제도 이런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학교에서 제대로 한자를 가르치지 않으니 학부모들이 돈을 들여서 학습지를 사고, 따로 공부를 시켜서 한자급수시험도 치르게 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필수 1,800자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는데 왜 굳이 사교육을 시키겠느냐 말이다. 1,800자에서 700자만 더 알면 ‘한문고전’을 읽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1,800자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우리말을 읽고 쓰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는 말이다. 중고등학교에서 파행으로 운영되고 있는 한문수업을 정상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급선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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