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희 기자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만약 누군가 당신의 하루를 체험하겠다고 돈을 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게다가 당신의 집 구석구석을 구경까지 한다면.

사생활 존중이 요구되는 요즘,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일을 반가워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최근 인천 동구청이 ‘괭이부리 마을’ 한가운데에 옛 생활 체험관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인천 동구 만석동에 자리한 괭이부리 마을은 김중미 작가의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지역이다. 이곳은 6.25 전쟁 직후부터 피란민들이 판잣집을 지어 모여 살던 쪽방촌이다.

얼마 전 동구청은 지역주민들의 사랑방인 2층 주택을 리모델링해 일일 빈민 체험관으로 활용하겠다고 공표했다. 1만 원만 내면 빈민의 하룻밤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게 주요 골자다. 이곳에는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흑백TV, 요강 등도 마련될 예정이었다. 아마 ‘쪽방촌’을 ‘가난’의 대표격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동구청은 빈민 체험관을 두고 “이 지역의 역사를 보존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괭이부리 마을 주민들은 “우리를 구경거리로 만드는 정책”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그리고 지난 8일, 주민 160여 명은 빈민 체험관 건립을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동구청과 동구의회에 냈다.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동구청은 ‘옛 생활 체험관 설치 및 운영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조례안이 오는 17일 국회 본회의 심의만 통과하면 이 정책은 다음 달부터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비난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일까. 동구청은 빈민 체험관 정책을 돌연 취소했다.

그래도 동구청의 태도에 대한 비판은 좀 해야겠다. 이 논란에서 중요한 것은 ‘인권’이다. 인권을 떼놓고 봐선 안 되는 문제라고 본다. 당초 동구청은 “옛날 어려웠던 시절의 생활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체험시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인권이 결여된 제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네 삶의 터전은 사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일전에 필자가 영등포 쪽방촌에 취재하러 갔을 때가 떠오른다. 쪽방은 알다시피 좁은 데다가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또한 냉방 시설이 잘돼 있지 않아 열악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무더운 여름이 되면 문을 열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니 쪽방촌 주민들은 카메라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자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행여 자신의 모습이 찍힐까 봐, 죄인이 된 듯 눈치를 보던 그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만약 괭이부리 마을 가운데에 체험관이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삶의 터전이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이 바글거린다면 어찌 되겠나. 자신의 거주지가 ‘박물관’이 되고 ‘체험관’이 되는 것을 달가워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필자 머릿속에 물음표가 마구 솟구친다. 

동구청이 빈민 체험관 건립에 대해 주민과 협의를 거쳤는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 <괭이부리말 아이들> 저자 김중미 작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앞서 동구청은 ‘주민 협의체에서 논의했다’고 했지만 주민 협의체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이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고 밝혔다. 소통을 중시하는 민주사회에서 토론과 사전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은 제도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은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신을 방어하려는 심리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두고 ‘호저의 딜레마’라고 칭한다. 호저는 고슴도치처럼 몸이 가시로 덮인 동물이다. 호저의 딜레마는 추운 겨울, 서로 가까이 붙으면 가시에 찔리고 서로 멀리 있으면 추위에 떨게 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너무 가까워서도 지나치게 멀어서도 안 되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지키면서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는 게 이른바 ‘호저 사이의 딜레마’ 이론이다.

거리와 관련한 심리학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하겠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에 따라 심리적 거리가 발생한다고 했다. 홀에 따르면 친밀함의 거리는 0~50cm로 가족이나 연인처럼 친밀한 유대관계가 전제돼야 한다. 친밀함의 거리는 자기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사적 공간인 셈이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영역을 침해하면 본능적으로 긴장감이나 공포감을 느낀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를 볼 때 사람은 지나친 사생활 침범을 원치 않는다. 심리적인 거리를 잘못 정하면 자신과 상대에게 상처가 된다. 이런 점에서 동구청은ㅡ심리적이든 물리적이든ㅡ그 거리를 잘못 정했다. 그들은 주민이 자신의 거주지가 ‘관광지화’될 때 겪어야 할 고충을 배려해야 했다. 삶의 터전이 침해됐을 때 거주자들이 느낄 긴장감과 공포, 불쾌감을 고려해야만 했다. 

13일 동구청은 기존 빈민 체험관을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한때 시끄러웠던 괭이부리 마을은 다시 잠잠해졌다. 하지만 구청의 신중치 못한 정책으로 애꿎은 쪽방 주민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서러움만 부추기는 꼴이 됐다. 사람은 누구나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것이 가난한 삶이든 부유한 삶이든 매한가지다. 

   
▲ 영등포 쪽방촌 풍경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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