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찬 칼럼니스트
▸한국의정발전연구소 대표
▸서울IBC홀딩스㈜ 대표이사

【투데이신문 김유찬 칼럼니스트】요즘 한창 그리스 국가부도사태로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홍콩 항셍지수 등 각 나라 증시지표가 곤두박질을 치고 깡통 계좌가 속출하는가 하면 당사국인 그리스는 연일 민중들의 생존을 위한 데모가 온 CNN TV화면을 뒤덮는다.

1997년 11월 17년 전 우리 대한민국의 긴박했던 상황이 바로 유럽 그리스에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가 하나의 지구촌 경제체제로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구 어느 한 곳의 사건과 사고가 결코 그곳에만 머무르질 않고 이처럼 세계 곳곳에 충격파를 던진다.

물론 최근 그리스 외환위기사태의 원인은 우리의 그것과 원인이 다르다.

그리스의 외환위기는 좌파경제정책에서 기인했다.

1997년 IMF구제금융을 신청했을 당시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확장과 차입경영, 당국의 외환관리 실패 등이 그 원인이 있었다.

IMF(International Monitory Fund) 말 그대로 국제통화기금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 이 IMF는 단순한 국제통화기금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적인 부도의 공포를 의미했을 뿐만이 아니라 가정의 붕괴를 의미하기도 했다.

서민들의 평상적인 삶을 완전히 망가뜨리게 하고, 자살자가 속출했는가 하면, 길거리에는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쫒기어난 실직자들이 넘쳐났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전세금을 마련하질 못해 목숨을 끊는 가장들도 1997년 IMF외환위기 당시 줄을 이었다.

멀쩡하던 기업이 무너지고 거기가 삶의 터전이었던 많은 국민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공포는 더더욱 큰 공포를 낳았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난생처음 경험하는 국가부도에 대한 공포. 그렇게 대한민국 김영삼 정권 시절은 많은 한국인들에게는 정말 죽음보다 더한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대한민국의 IMF 외환위기 사태는 국가최고지도자의 국가운영에 대한 무식함과 교만이 불러온 국가적인 재앙이었다.

IMF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한국의 은행들의 무분별한 단기외채차입을 해 와선 동남아지역 은행들에게로 장기적으로 돈을 빌려주는 크게 잘못된 외자운영방식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해외에서는 단기저리융자조건으로 돈을 빌려다가 동남아지역 은행들에게 장기고리로 돈을 대여하는 외자운영방식이 1997년 당시 IMF 국가부도사태를 맞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해외에서 돈은 단기로 빌려다가 장기로 돈을 다시 재 대여해주고 이에 따른 마진을 보려다가 경을 치게 된 것.

만일 당시 외환당국이 이러한 그릇된 외자운영방식에 대해 사전 적절한 통제와 관리를 했더라면 한국의 IMF외환위기 사태는 결코 오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태국 바트화의 폭락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링깃화가 직격탄을 맞았고 동남아 각국이 국가부도위기로 몰렸다. 당시 국내 상황은 이러한 해외금융시장붕괴에 적절히 대응할 능력도 시간도 경험도 없었다.

동남아 금융시장붕괴는 도미노현상처럼 한국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고 멀쩡하던 기업들이 줄도산이 이어졌다. 당시 줄부도가 났던 기업들의 상황을 보면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IMF라는 외환국란은 국민들이 초래한 것이 아닌 외환정책관리에 실패한 김영삼정권과 방만경영을 일삼던 대기업들이 근본적인 원인제공을 한 것이다.

IMF외환위기 당시 국내 시중 금리는 34% 초고리를 넘나들었다. 국채금리나 한국은행 콜금리도 전혀 무용지물인 상황이었다. 은행 중 은행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은행의 일반은행에 대한 대부기능이 완전정지됐고 한국의 모든 은행시스템이 마비되거나 통제 불능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최근 그리스의 국가부도 상황에서 그들 그리스국민들이 겪는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한국민들은 감내해야만 했다.

하루만 자고 나면 치솟는 금리에 제조업은 국제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수출은 격감했다. 모든 경제구조가 수출에 의존하고 있던 한국경제는 IMF위기당시 철저히 붕괴됐다.

그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은 돈 있는 기득권이 아닌 바로 하루를 근근이 버티어 사는 일반 국민들이었다. IMF 외환위기는 기득권층에게는 오히려 떼돈을 버는 기회가 됐다.

IMF외환위기를 당시 일반 민초들이 어떻게 견디어 냈는지 정말 장하다는 찬사밖에 할 말이 없다.

IMF외혼위기 극복과정을 보면 결국 국민들의 범국민적인 참여가 IMF극복의 원동력이 됐다. 바로 범국민적인 금모으기 운동이다.

원래 이 금모으기운동은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의 아이디어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대우인터내셔널이 국제금거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고 국내에서 금을 모아주기만 한다면 이를 해외에 내다팔아 외화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다수의 시민단체, KBS 공영방송이 총동원이 되다시피 해 전 국민적인 금모으기 운동에 나섰다. 장롱 깊숙이 감추어두었던 돌반지며 각종 금장신구 등 소중한 개인의 추억들이 외환위기로 국가가 부도지경에 몰렸던 당시 상황을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됐다.

총 227톤이라는 엄청난 양의 금이 모아졌고, 이를 해외에 내다 팔아 약 22억달러 라는 큰금액의 외화가 한국은행 외환보유고로 잡히게 됐다. 이 돈으로 정부는 IMF로부터 빌린 외채를 갚아나갈 수 있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대기업과 국가위기관리능력이 없던 김영삼 정권이 초래케 하고 그 수습은 국민들이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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