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개나무

최근 몇 번의 비로 가물었던 대지가 어느 정도 해갈된 듯싶지만 30도를 웃도는 기온에 여전히 초목은 목말라한다. 지난해 이맘때 세찬 물줄기로 위용을 떨치던 계곡물도 지쳐 보인다. 한여름 더위를 피하기 위해 산을 찾은 이들도 덜 흥겹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동생과 함께 시원한 그늘과 바람을 찾아 산책 같은 산행에 나섰다.

간단한 간식거리와 돗자리, 휴대용 베개, 의자 등을 챙겼다. 이번엔 산야초를 캐기 위해 호미도 준비했다. 산야초는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풀’을 통칭해 부르는 말로 식용과 비식용이 있다. 요즘은 건강을 위하여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동행하는 동생은 대학교 시절부터 클라이밍을 했던 친구로, 약초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고 있다. 동생이 약초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통풍’이라는 질환 때문이다. 통풍은 몸 안에 요산이라고 하는 물질이 몸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고 과도하게 축적되어 발생된다고 한다. 통풍이란 명칭의 배경은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서 일으킨 바람에 의해서도 많이 아프고 온몸에서 열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동생은 주말이면 클라이밍을 하거나 간혹 약초를 캐러 다니면서 건강관리를 한다고 한다.

동생이 산행 중에 당귀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곳을 봐두었다고 하여 서울 인근의 한 야산으로 향했다. 당귀에 대해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당귀는 깊은 산속에서 자생하나 주로 재배되며, 줄기는 높이가 1~2m 정도이고 뿌리를 약물로 사용하는데 뿌리는 비후하며 유즙을 함유하고 향기가 강하다. 뿌리는 길이가 20~25㎝ 정도이고, 지름이 1~5㎝ 정도가 된다. 주성분은 정유, 자궁흥분성 성분, 자당, 비타민 E 등이다. 그 성질은 온하며 독이 없고, 신맛과 단맛이 나는데 약간 쓴맛이 돈다. 주로 심장·간·비장의 3경에 들어가 작용하는 성질이 강하다’

사전적 내용을 차치하고, 내가 아는 당귀의 뿌리는 오리, 닭 등을 이용한 백숙요리에 필수로 들어가는 재료이고, 연한 잎사귀는 그 맛이 싸하고 먹고 난 후에도 입에 향이 은은하게 남아있어 쌈 재료로 훌륭하다. 동생이 안내한 골짜기는 그늘이 지고 습했다. 그곳엔 제법 많은 당귀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몇 뿌리만 캐도 잎사귀가 무성하여 가져간 비닐봉지가 꽉 찬다. 당귀 몇 뿌리를 채취하고는 골짜기를 벗어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몇 그루의 엄나무가 보인다.

   
▲ 엄나무

엄나무 역시 백숙 등에 많이 쓰이는 재료다. 봄에 올라오는 연한 엄나무 순은 달콤하면서 부드럽게 씹히는 맛 때문에 계절의 별미로 식탁에 오른다. 두릅보다 쌉쌀하고 감칠맛이 좋아 식도락가들에게 인기가 좋다. 엄나무라는 명칭은 옥편과 국어사전에는 엄나무라고 표기하지만 국가식물표준목록에는 음나무로 등록되어 있다. 엄나무로 부르는 것은 가시가 엄(嚴)하게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음나무보다는 엄나무가 모양새의 특징을 더 잘 나타내는 것 같다. 엄나무는 잎사귀와 줄기가 연하기 때문에 끝부분을 중점적으로 채취했다.

   
▲ 야생마 잎과 줄기

당귀와 엄나무의 채취를 끝내고 골짜기 밑으로 다시 내려와 그늘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난 후 낮잠을 청하였다. 시원한 바람과 숲속의 흙과 풀냄새로 잠이 절로 온다. 신선놀이가 따로 없다. 오수(午睡)를 즐긴 후 산을 내려오는 도중 동생이 야생에서 자라는 마를 가르쳐 준다며 캐보자고 한다. 먼저 마 줄기를 찾아 뿌리 위까지 더듬어 보고 줄기가 굵은 것으로 고른다. 그리고 뿌리 주변으로 반지름 30cm를 파고 들어간다. 줄기 부위를 직접 캐지 않는 이유는 마의 뿌리가 잘 부러지기에 먼저 주변을 파고 들어가야 뿌리가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캐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힘들게 땀 흘리며 캐낸 마의 뿌리는 실망스럽게도 잘고 실하지가 않았다. 노동의 양보다 대가가 너무 약하다. 그래서 우리는 ‘마는 캐는 것보다 사먹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 야생마 캐는 중

마를 캐다보니 근처에 더덕 덩굴이 보인다. 내친김에 더덕 2뿌리를 캐고 잎사귀도 챙겨 넣었다. 잎사귀까지 챙긴 이유는 말려서 차로 쓰면 향과 맛이 일품이라고 동행한 동생이 귀띔해서이다. 차를 즐겨먹는 필자에게 뜻하지 않은 보너스가 생긴 셈이다.

   
▲ 야생 마뿌리

집으로 돌아와 채취해온 것을 용도별로 정리했다. 먼저 당귀는 잎사귀가 질기기에 진액을 내기로 하였다. 먼저 뿌리를 칫솔로 구석구석 깨끗이 씻어낸 후, 뿌리와 잎사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채에 놓고 물기를 제거한다. 그리고 엄나무 잎 중 질긴 부분도 따로 분류하여 진액을 내기로 하여, 씻어서 채에 받친 후 물기를 제거한다. 물기를 제거한 당귀와 엄나무는 무게를 잰 후, 용기에 담고 같은 무게의 설탕을 넣어 밀봉한다. 남은 연한 엄나무순은 간장에 담아 장아찌로 담았다. 더덕 잎사귀와 줄기를 물에 씻어 적당한 크기로 잘라 햇볕에 말리니 오늘의 일과는 끝이다.

   
▲ 엄나무 순
   
▲ 더덕 잎줄기 말리기
   
▲ 엄나무 잎 진액(좌), 당귀 진액(우) 만들기
   
▲ 숙성된 엄나무 잎 진액(좌), 당귀 진액(우)

당귀, 엄나무, 마, 더덕 채취로 즐거운 산행을 했지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은 나 말고도 다른 사람에게도 돌아가야 하고, 또 다음 세대에도 그 종자가 이어져야 하므로 무분별한 채취는 삼가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 역시 이 점을 지키면서 산행을 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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