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칼럼니스트
·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

【투데이신문 이원석 칼럼니스트】구걸러의 앵벌이와 구제러가 주는 미션

근래에 구걸러-구제러 문화가 유행하고 있다. 구걸러(구걸+-er)란 어느 인터넷 게시판(정확하게는 디시인사이드 대출갤러리) 상에서 소액의 돈을 구걸하고, 구제러가 지시하는 미션을 수행하는 이들이다. 구제러(구제+-er)는 구걸러에게 미션을 주고, 그게 달성되었을 시에 돈을 준다.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앵벌이 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구걸러에게 주어지는 미션이라고 하는 것들은 퀴즈론Loan(가령 책 제목의 자음을 나열하고, 그 책 제목을 먼저 댓글로 달기), 국밥론(가장 먼저 댓글 단 사람이 국밥집에 가서 식사하고 인증하기 등) 등 대체로 소박한 것들이다. 항간에 소개된 것처럼 과격한 미션(가령 머리에 팬티를 뒤집어쓰거나 변기에 머리를 담그고 사진으로 인증하기)은 많지 않다.

이러한 문화를 우려하는 시선들이 적지 않지만, 이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거라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 일단 현재 이 갤러리가 돌아가는 상황을 살펴보면, 구걸과 구제가 어우러지는 과정이 일종의 놀이로 이해되고 있는 듯하다. 장난과 사기도 분명히 있지만, 동시에 그 자체 안에서 어느 정도 자정 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니트족의 인터넷 앵벌이

(지혜의 왕 솔로몬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구약의 <전도서>에 따르면, 해 아래 새것은 없다. 실은 구걸러의 등장도 그러하다. 이러한 인터넷 앵벌이 문화는 일본에서 이미 활성화된 것이다. 아라카와 도모노리(荒川智則)의 책, <빈둥빈둥 당당하게 니트족으로 사는 법>(동아시아)에 보면, “인터넷으로 돈 받은 이야기”라는 항목이 나온다.

“인터넷을 통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한테서 종종 돈을 받는다. 그렇게 말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지금 “지금 돈이 없어서 이런 어려움에 처해 있다.”라거나 “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돈이 부족하니 누가 좀 도와주세요.”라는 내용을 정중하게 설명하면 정말 받을 수 있다. 한 명당 주는 금액은 많지 않아서 기껏 300엔에서 1,000엔 정도가 많지만 그래도 주는 사람이 많으면 그럭저럭 돈이 된다. 이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인터넷상에서 기부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68쪽)

파(pha)로 불리고 있는 도모노리는 니트족(族) 철학자, 즉 대변자로 인정받는다.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은 학업이나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며, 또한 그렇다고 직업훈련이나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이를 가리킨다. 파 또한 교토대학 출신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의 삶을 버리고, 니트족의 삶을 택했다.

따라서 파가 지금 인터넷으로 앵벌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것은 필경 일본 니트족의 입장을 반영한 것일 게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벗의 곤경 앞에서 자신의 주머니(계좌)를 털어서 작게나마 도와주는 모습에서 드러나는 것은 냉정한 익명성이 선행되는 이익집단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정서적 연대가 돋보이는 친교 공동체의 모습이다.

인터넷과 친교 공동체

필자가 보기에 블로그나 SNS 등을 통해 형성되는 공동체는 일종의 마을 공동체이다. 월터 옹이나 마샬 맥루한 등과 같은 토론토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시대의 뉴미디어인 전자 매체는 세상을 마을 공동체로 경험하게 한다. 전자 매체의 중개를 통해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친교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니트족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엄혹한 무한경쟁으로부터 떨어져서 자신만의 삶을 살려고 하는 청년들의 새로운 문화이다. 굳이 말하자면, 니트족은 인터넷 시대의 룸펜(Lumpen)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유사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인터넷 덕분에 따로 또 같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나는 구걸러-구제러 문화에 대해 이러한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현상이라서 이를 기존의 틀에 놓고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다소 섣부른 시각이지 않나 생각한다. 언론에는 자극적인 사례만 유포되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보다 소박하고 훈훈한 편이다.

필자는 구걸러-구제러 현상을 통해서 인터넷이 새로운 지구촌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한 부분을 보고 있다. 인터넷의 나눔 문화를 필자는 일종의 사이버 두레 공동체 혹은 인터넷 품앗이 문화로 보고 싶다. 지금은 다소 놀이 문화에 가깝지만, 이것이 앞으로는 본격적인 상호 부조 문화로 진화하게 되지 않을까? 필자는 파의 아래와 같은 생각에 동의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하는 중에, 병에 걸렸다는 사람을 보고 몇 백 명 정도가 그 사람에게 1,000엔씩을 기부했다고 치자. 그럼 병에 걸렸다가 기부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는 자신이 기부자가 된다. 그런 순환 구조가 정착하게 된다면 보험제도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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