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비너스키친·봉주르하와이 박세진 총괄 셰프

   
▲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일본서 하루 18시간 근무로 지구력 키워
100% 손님입장에서 메뉴개발 이뤄져야
2분기마다 가게 신메뉴 개발
맛+트렌드 접목한 요리 필요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이연복, 최현석, 레이먼킴 등 스타 셰프들이 방송을 통해 셰프로서 사명감을 한껏 보여주고 있는 만큼 지금은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다.

이에 따라 단순히 맛집에만 열광하던 이들이 요리 자체보다는 ‘어디에서’, ‘누가’ 만든 요리인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특히 젊음의 거리 홍대는 서울의 대표적인 약속 장소 중 하나인 만큼 ‘누가’ 만든 ‘어떤’ 요리인지에 관해 입소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꼽힌다.

빠르게 변화하는 홍대상권 속에서 7년째 트렌드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이가 있다. 그는 바로 젊음의 거리 홍대에 있는 <비너스키친>, <봉주르하와이> 두 가게의 총괄자 박세진(37) 셰프.

박세진 총괄 셰프는 ‘비너스키친’과 ‘봉주르하와이’에서 각각 6명, 7명의 셰프를 대표하는 책임자다. 그가 맡고 있는 두 가게 안은 손님들로 항상 가득하다. 골목마다 식당이 늘어서있고 트렌드에 따라 새로운 식당들이 날마다 들어서는 홍대에서 박세진 셰프 총괄의 두 가게가 꾸준하게 사랑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 7월 15일 <투데이신문>은 홍대에 위치한 <비너스키친>을 찾아 그가 총괄하는 두 가게의 인기 비결과 함께 총괄 셰프로 자리잡기까지 요리와 동고동락한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박세진 셰프를 만났다.

   
▲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긴장감’ 즐겨야 산다

박세진 셰프는 2009년 1월에 오픈한 ‘비너스키친’에서 2009년 10월부터 총괄 셰프를 맡아 일하게 됐다. 야구선수 출신의 당시 나이 31살로 젊고 배짱있는 총괄 셰프가 홍대에 입성한 것이다. 2001년 오픈한 ‘비너스키친’은 박세진 셰프가 총괄 셰프를 맡은 2009년부터 현재까지 밤낮 구분 없이 줄을 서 기다려야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맛집이다.

“가게를 총괄해야 하는 부담과 함께 가게 위치가 홍대라서 손님들의 연령층이 대부분 20대라는 부담감이 있어요. 트렌드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20대의 이목을 꾸준하게 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트렌드 공부가 필요해요. 이제는 구글링을 통해 외국 음식점 트렌드가 무엇인지 보거나 영화, 드라마, 책을 보며 메뉴개발 관련한 영감을 얻는 게 일상이 됐어요”

그는 홍대에서 일하는 동안 수많은 식당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봤다. 현재 스타셰프로 알려진 베테랑 요리사가 홍대에서 자리잡지 못하고 식당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요리는 단순하게 맛으로만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누가’ 먹느냐를 분석하는 게 기본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요리는 날로 그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줄 정도의 긴장되는 일이 됐다.

사실 그는 요리사 집안에서 태어나 생활 속에서 요리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며 자랐다. 그의 할아버지는 미군부대 요리사, 할머니는 궁중요리사다. 덕분에 그의 어머니는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한식집과 일식집을 운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야구를 한 그는 야구선수로 활동했던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요리사를 꿈꾼 적이 없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만큼 야구 실력이 오르지 않아 군대에 다녀온 후 야구를 그만두고 자연스레 요리사가 되고자 마음 먹었다.

그는 요리사가 되기 전부터 하나의 요리가 완성되는 과정이 절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죠. 지금은 손님들이 제가 만든 요리를 남김없이 먹고 갈 때 마음에 차오르는 만족감에 이미 중독돼 손님들에게 버림받는 요리를 내놓고 싶지 않은 긴장감을 즐길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됐어요”라고 고백했다.

생각하는 일을 진취적으로 해 나가는 그에게는 별명이 하나 있다. 바로 ‘탱크’.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그의 진취력은 요리사가 되기 전 프로야구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로 밤낮없이 운동하며 생긴 근성으로부터 시작됐다. 특히나 긴 후보생활을 하며 받은 서러움이 그를 현재 홍대 맛집을 주름잡는 대표 총괄 셰프로 만들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위기의 순간들

그는 일식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2001년 무턱대고 일본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오사카 츠지(Tsuji) 조리과를 재학하면서부터 생활비도 벌 겸 일식을 배울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일본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수십번의 면접을 봤지만 매번 떨어졌다. 더군다나 일본요리를 한국인이 한다고 하니 기피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면접을 봤고 어렵게 오사카 고급요리점 ‘TOKA’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정통 일식 요리점에서 그의 막내 생활이 시작됐다.

“너무 힘들었어요. 하루에 18시간을 일해야 했고 연말이 되면 너무 바빠 하루에 겨우 2~3시간만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일이 고됐거든요. 하지만 하나의 예술작품과 같은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주방에서는 요리사들이 각자의 포지션을 맡는데 비록 막내일지라도 저에게도 확실한 역할이 있다는 게 감동이었어요. 야구선수 시절에는 후보생활을 길게 해 경기 중 제가 하는 역할이 없는 것 같아 서러웠는데 요리할 때 만큼은 제 역할이 확실히 있다는 뿌듯함이 들었죠. 그래서 요리 완성의 마지막을 담당하는 포지션인 ‘총괄 셰프’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어요”

하지만 그가 항상 긍정적으로 막내 생활을 보낸 건 아니다. 엄격한 주방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워 일터에서 뛰쳐나온 적도 있었다.

“일터에서 뛰쳐나와 잠깐동안 걷는 그 사이에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상태로 한국 돌아가면 안 되는데’ 등 온갖 생각을 했어요. 결국 일터에서 뛰쳐나온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갔는데 그때 만약 일을 그만뒀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찔해요”

결국 그는 한 곳에서 일하는 동안 대학교를 졸업하고 경력 3년의 어엿한 요리사가 될 수 있었다. 그가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맡은 포지션은 ‘이다’였다. 이 포지션은 한국에서 ‘앞다이’라고 불리며 주방 맨 앞에서 생선을 다듬는 일을 한다.

“3년 만에 포지션 ‘이다’를 맡는 건 정말 일을 열심히 한 결과였어요. 당시 저는 그냥 외국인 노동자였으니 현지에서 차별을 받는 일이 많았는데 이를 당연히 생각하고 정말 일에만 몰두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환율이 너무 떨어져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에 ‘이다’는 일본에서의 제 마지막 포지션이 됐어요. 결국 계획만 했던 한국행을 조금 빠르게 택하게 됐죠”

2006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청담동과 명동 롯데 백화점 에비뉴엘에 위치한 레스토랑 ‘타니(TANI)’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당시 한국에서 요리사로서의 출발은 어땠는지 물어봤다.

“당시 ‘타니’의 총괄 셰프였던 일본인 프렌치요리사 ‘고바야시’를 만나 요리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굉장히 즐거웠어요. ‘고바야시’는 100% 손님 입장에서 메뉴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 사람이에요. 그로부터 요리사가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을 메뉴개발에 개입한다면 이는 결국 음식을 먹어야하는 손님을 위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어요”

박세진 셰프는 고바야시를 만나 메뉴개발에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었다. 일본인 셰프가 만드는 프랑스 요리와 한국인 셰프가 만드는 일식이 융합돼 새로운 메뉴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타니’에서 부셰프 자리까지 오르며 본격적으로 총괄 셰프가 되기 위한 도약을 했다.

   
▲ ‘비너스키친’의 메뉴인 오키나와 가정식(좌), 청량고추 페스토 미소포트 로스트(우)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혼자만의 싸움, 메뉴개발

그는 현재까지 일식을 기본으로 한 한국인 입맛 사로잡기에 전념하고 있다. 그만큼 메뉴개발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 그는 ‘비너스 키친’에서 일본 가정식 메뉴를, ‘봉주르 하와이’에서는 일식을 기본으로 하되 이름에 걸맞게 하와이 느낌을 살린 메뉴를 끊임없이 연구해 2분기마다 새로운 메뉴로 손님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개발한 메뉴 중 ‘비너스키친’에서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2가지예요. 첫 번째는 ‘오키나와 가정식’, 두 번째는 ‘청량고추 페스토 미소포트 로스트’ 입니다”

‘오키나와 가정식’은 일식을 바탕으로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끔 변화시켜 내놓은 메뉴다. 박세진 셰프는 오이와 수육을 사용해 너무 담백한 맛이 나는 현지 오키나와 가정식을 한국인이 사랑하는 마늘과 간장을 넣는 등 레시피를 변화시키고 재료를 추가해 ‘비너스키친’에 내놓았다. 이로 인해 ‘비너스키친’의 ‘오키나와 가정식’은 손님들에게 분기별로 선보이는 새로운 메뉴와 별개로 꾸준하게 사랑받고 있는 메뉴로 자리잡고 있다. 박세진 셰프가 개발한 메뉴중 두 번째로 인기있는 메뉴인 ‘청량고추 페스토 미소포트 로스트’ 역시 박 셰프가 일본 가정에서 먹는 스테이크에 된장을 넣어 한국식으로 재해석한 메뉴다. 청량고추 깻잎페스토를 된장에 재운 돼지목등심에 발라 구운 이 요리는 박 셰프가 오랜 시간에 걸쳐 개발한 메뉴이기도 하다.

“메뉴개발이 절대 쉽지 않아요. 어마어마한 일식 종류에 대해 공부하고 이를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추도록 바꿔야 하기 때문이죠.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일식요리로 라면, 돈까스, 우동, 스시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일식 종류의 수는 수만개에 달해요. 그렇기 때문에 가게에서 새롭게 선보인 메뉴가 손님들에게 인기가 없을 때도 있어요. 메뉴개발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니 당연히 실패가 있기 마련이죠. 특히나 오픈한 지 오래되지 않은 ‘봉주르하와이’에서는 현재까지도 메뉴개발과 사투를 벌이고 있어요”

그가 말하기를 메뉴개발을 하는 시간은 몇 달, 몇 년이 걸린단다. 메뉴개발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그를 보니 그렇다면 왜 굳이 메뉴개발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만약 전통의 맛을 자랑하는 돈까스 가게, 짜장면 가게 등의 셰프였다면 메뉴개발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현재는 더 폭넓은 요리를 하고자 공부하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는 가게에서 메뉴개발을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운명인 거죠”

메뉴개발이 이뤄지는 과정을 들어보니 가게를 총괄하는 셰프들이 짊어진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

그에게는 어린시절 야구선수로서 생활한 경험이 요리사의 꿈을 더 크게 품을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 됐다. 그는 야구를 할 때도 요리사로 사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주말에 쉴 수 없었고 치열한 경쟁과 인내 속에서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남보다 빠르게 잘하려고만 애썼던 야구선수 시절과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야구를 할 때는 무조건 빨리 잘하려고만 하다보니 미래에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정말 제가 좋아하는 일을 만나니 빨리 성공을 하는 것보다 오랫동안 요리를 할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하게 됐어요”

박세진 셰프는 홍대에 입성하기 전 모 회사로부터 직장인처럼 앉아서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한 매장관리 셰프 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그 일은 주방에서 직접 일하는 것보다 급여도 높았다. 높은 급여에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일이니 주변에서는 하기를 권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직접적으로 요리하는 시간이 없으니 거절할 수 밖에 없었어요. 눈앞에 이익을 계산하기 보다는 더 멀리 나아가는 방향을 선택해야 오랫동안 요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에 제의 받았던 편한 일을 선택했더라면 지금과 같이 직접 요리를 하거나 메뉴개발을 하는 총괄 셰프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박세진 셰프는 이제 요리를 시작한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요리사들은 ‘열정페이’를 받을 때가 많아요. 저 역시 ‘열정페이’를 받으며 일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는 ‘나에 대한 자존심은 버리고 내가 만든 요리에 자존심을 걸자’라는 주문을 외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더 좋은 요리를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훨씬 멋진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였어요. 요리에 자존심을 걸면 ‘열정페이’에서도 당연히 벗어날 수 있고요”

트렌드를 담아 꾸준하게 메뉴개발에 전념하고 있는 박세진 셰프.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가야할 길이 멀어요. 지금 맡고 있는 두 가게를 통해 꾸준하게 손님들에게 사랑받고 싶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내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영광을 안고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 가게 '비너스 키친'의 내부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