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위직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 인사 청탁
[칼럼] 고위직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 인사 청탁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8.2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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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근대 이전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자녀가 실력에 상관 없이 관직에 오르는 것은 매우 익숙한 일이었다. 실력에 따라서 관직에 등용된다(천민이 아닌 사람은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양반의 자제에게만 개방된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과거가 시행되었던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귀족의 자제나 고위 관리의 자식들을 특별 채용하는 음서(蔭敍) 제도가 상당기간 존재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식의 관직을 청탁하는 것은 일벌백계 되었다. 『세종실록』의 1447(세종 29)년 4월 21일의 기록에는 우부승지 김유양이 아들의 관직을 청탁한 것으로 인해 이순지 등의 직첩을 빼앗은 기록이 남아있다.

그 내용을 보면 우부승지(右副承旨.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 차관급)로 있던 김유양(金有讓)이 그의 아들 김사창(金嗣昌)의 관직을 청탁한 것으로 보인다. 김사창은 공신의 후손으로 사헌감찰(司憲監察)이라는 직위를 겸하고 있었으며, 무관으로 옮겨서 충의위(忠義衛. 중앙군 중 하나)에서 벼슬했다가 오래지 않아서 5품인 부사직까지 승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유양이 유양(有讓)이 좌부승지(左副承旨) 이순지(李純之)와 이조참판(吏曹參判. 이조는 지금으로 말하면 안전행정부와 공직인사처의 업무를 하는 곳으로, 참판은 차관급에 속한다) 유의손(柳義孫)과 참의(參議) 이변(李邊)에게 청탁한 사실이 발각되었다.

사헌부(司憲府, 지금의 감사원)에서 사실을 알고 들고 일어나 국문하기를 청하였고, 세종은 이 청을 따랐다. 국문 과정에서 이순지는 김사창을 무관으로 이직시킨 것만 알고 그 이후는 모른다고 했고, 사헌부에서 계속 심문하였으나, 이순지는 김유양이 ‘내 자식이 용렬한데 오래 사헌부(司憲府)에 외람되게 있으면 소임을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우니 속히 벼슬을 갈아 무관으로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고만 밝혔다.

사헌부(司憲府)에서는 이 사실을 세종에게 보고하였고 세종은 이순지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다고 판단해 관련자 네 명, 즉 이순지, 김유양, 유의손, 이변 등을 의금부(義禁府. 왕의 직속 수사 기관. 지금으로 말하면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등을 의미한다)로 보내고, 수사담당자들을 불러서 그 앞뒤가 맞지 않음을 이렇게 밝혔다.

“이순지 처음에 전형에 참여했을 때에는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가 남의 말을 듣고서는 곧 일을 행하였고, 이조(吏曹)는 전형 선택을 맡았으면서 승지(承旨)가 일을 꾸미는 것을 보고도 왈가왈부하지 못하고 끌려다녔으니, 어찌 이조(吏曹)라고 이를 수 있는가? 내가 국왕으로 있으면서 병으로 정사를 다스리지 못하여 세자로 하여금 재결하게 됨이 이것이 한 변칙이라 마땅히 (신하들이)잘 살펴서 일을 할 때이거늘, 도리어 세자가 세상일을 잘 모르기 때문으로 그저 무관으로 보낸다고 청탁하여 모호하게 보고하였다. 이 같은 기망(欺罔)한 사실을 마땅히 반드시 알아내어 사람에게 속임을 당해서는 안 될 것이니, 모조리 문초하도록 하라.”

그리고 이순지는 처음에는 사실을 부인하다가, 한 차례 고문(拷問)을 받고는 바로 자백하고, 이유양, 유의손, 이변도 역시 모두 죄를 자백하였다.

이후 이들에 대한 처벌은 그야말로 살벌하다. 의금부에서는 이들 모두를 참형에 처할 것으로 논죄하여 세종에게 아뢰었다. 당시 법으로 인사권을 휘둘러서 왕을 농락하고, 인사를 청탁한 것이 어떤 처벌을 받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세종은 모두 직위만 박탈하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언급되지 않은 관련된 관리들도 모두 연좌(連坐)하여 파면했다고 전해진다.

한 국회의원의 딸이 로스쿨 졸업 후 유명 대기업 경력직 특별 채용에 합격한 것을 놓고 채용 특혜라는 설이 돌고 있다. 그 외에도 어느 당의 대표는 자신의 자식이 교수직에 임용된 것을 놓고 외압설이 나돌았다. 신분 차별이 엄격했던 시대에도 고위직의 인사 관련 사건은 사형이 언급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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