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보이스피싱 범죄 사기 이모저모

   
 

취업준비생 등치는 ‘보이스피싱’ 신종사기수법 증가
대환대출 전화금융사기 피해자… “사람에 대한 불신 생겨”
피해 의심되면 즉시 경찰청이나 금융감독원에 신고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전화금융사기, 이른바 보이스피싱 사기로 울상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는 2013년 4765건에서 지난해 7635건으로 나타났다. 한해 사이에 범죄율이 60% 증가한 것이다. 피해액도 552억에서 974억원으로 늘어나 피해자의 눈물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갈수록 커지고 있는 금융사기 범죄의 악순환을 끊는 방법과 대책은 무엇일까.

<본지>는 피해 사례를 바탕으로 보이시피싱 범죄의 이면을 살펴보고 해결방안도 함께 분석했다. 전화 한 통이 ‘불행’이라는 이름의 부메랑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지금 시작한다.

#사례1 . 산산이 부서진 취준생의 꿈… “아버지도 속았다”

취업준비생 안모(30·여)씨는 보이스피싱으로 빛나야 할 청춘이 엉킨 실타래처럼 망가졌다. 안씨는 올해 6월 초, 재택 아르바이트를 구하고자 부업사이트에 구직공고를 올렸다. 얼마 뒤 A업체는 안씨에게 전화해 한 달에 110만원을 주겠다며 문서작업을 제안했다. 이에 안씨는 흔쾌히 응했고 근로계약서까지 작성했다. 그녀는 개인정보를 정리하는 작업을 했는데 단순 노동에 급여도 짭짤해 훗날 월급을 받으면 아버지에게도 추천할 심산이었다.

일은 시작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A업체는 안씨에게 전화해 급여를 받으려면 전산상 등록할 게 있다고 했다. 잠시 후 B은행 대표번호로 담당자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담당자는 안씨에게 고객관리 차원에서 OTP(일회용 패스워드·One Time Password)보안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며 통장 발급을 요구했다. 은행 대표번호로 온 전화였고 ‘급여를 받으려면 필요하다’는 얘기에 그녀는 별 의심 없이 통장을 만들어 넘겼다. 이어 안씨는 A업체 담당자에게 보안카드 일련번호, 체크카드 일련번호, 체크카드 비밀번호 등을 전화로 알려줬다. 심지어 신분증까지 복사해 넘기기도 했다.

얼마 뒤 보이스피싱 사기에 세간이 떠들썩하자 불안함을 느낀 안씨가 은행을 찾았다. 그녀는 이체금을 낮게 설정하면 만약 개인정보가 유출되더라도 누군가가 자신의 계좌에서 돈을 못 빼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은행원과 상담한 뒤 이체금을 ‘1원’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얼마 후 은행원이 안씨에게 전화해 B은행에 등록된 휴대전화 번호와 안씨의 번호가 다르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B은행에 당시 안씨의 전화번호가 아닌 대포폰 번호가 등록돼 있었다.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 일당이 편의점에서 유심(USIM)칩을 구매한 뒤 인터넷으로 신규가입해 안씨 명의로 대포폰을 개통했던 것이다. 이 일당은 안씨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공인인증서를 내려받아 손쉽게 대포폰을 만들었다. 안씨 명의의 대포폰으로 인터넷을 통해 대부업체 두 곳에서 300만원씩 총 600만원을 빌렸다. 이 대출금은 보이스피싱 일당이 만든 안씨의 대포통장으로 입금됐고 이들은 모바일 앱 카드를 내려받아 현금인출기로 빼갔다.

안씨는 은행으로 달려갔지만 돈은 이미 빠져나간 뒤였다. 그녀는 급히 지급정지를 신청했고 인터넷뱅킹 등을 취소했다. 경찰서를 찾아 진정서를 내고 대부업체에 사고 경위서도 제출했다.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졸지에 600만원을 날린 안씨는 망연자실했다. 딸이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하자 아버지 역시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건이 일어난 뒤 안씨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본 사람들이 만든 카페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업체로부터 비슷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피해 금액이 100만원에서 많게는 2천만원까지 있었다고 안씨는 말했다.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인원은 29명가량이 되지만 소송비용, 시간 등 넘어야 할 산은 많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던가. 지난달 3일, 안씨에게 보이스피싱 사기를 친 일당이 7명 중 6명이 보이스피싱 대출사기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3월 19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54명의 명의를 도용해 총 3억2450만원을 대출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피해자들은 주로 20~30대 여성이며 대부분 주부, 취업준비생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심정을 묻자 안씨는 “정말 살기 싫었다”는 표현을 썼다. 안씨는 투데이신문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겨우 110만원 벌어보겠다고 600만원 날렸는데 마음이 어땠겠나. 주변에서도 ‘왜 바보같이 당했냐’는 식으로 말하니까 자존감이 낮아졌다”고 토로했다. 안씨는 아버지와 의논을 하면서 여느 때보다 신중했지만 신종 사기수법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더불어 600만원에 대한 연체금과 35%에 달하는 이자가 계속 쌓이고 있다. 안씨에게는 대부업체와의 소송이 남아있는데 해당 소송을 통해 본인이 빌린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안씨는 “피해자가 되어 보니까 근절은 둘째 치고 (범인이 잡히고 난 뒤) 보상이라도 제대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보이스피싱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좀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어 그는 “모바일 앱 카드를 통해 그렇게 쉽게 600만원을 빼갈 줄 누가 알았겠나. 세상이 좋아질수록 위험도 커진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 경찰이 압수한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대포통장 ⓒ뉴시스

#사례2. 기승부리는 대환대출 보이스피싱 사기… “아찔했던 기억”

지모(29·남)씨도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해 돈을 날릴 뻔했던 경험을 떠올리면 정신이 아찔하다.

올해 3월경, 지씨는 불어나는 카드빚과 이자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이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건 ‘대환대출’이었다. 여기서 대환대출이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서 전에 있던 카드 대출금 등을 갚는 일을 뜻한다. 이는 신용불량자 혹은 신용카드 대금 연체자가 연체금을 장기대출로 바꾼 뒤 나눠서 납부하는 것이다.

지씨에 따르면 ‘NH농협대출’을 사칭하던 B업체는 지씨에게 저금리 대출을 해주겠다는 문자를 2~3년 정도 보냈다. 오랫동안 문자가 와서 왠지 모를 믿음이 생겼던 지씨는 B업체에 전화를 걸어 대출상담을 했다. 해당 업체는 대환대출 이자를 3%대로 낮게 해주겠다고 현혹했는데 당시 다른 곳에서는 이자가 27%였으므로 지씨에게 이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B업체는 신용등급이 5~6급이었던 지씨에게 4등급으로 올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1천만원을 먼저 입금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신용등급을 높이면 신용도가 올라가는데, 그럼 낮은 이자율로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대출금은 나중에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며 선입금을 위해 돈을 빌릴 만한 대부업체 2~3 곳을 추천하기도 했다. 지씨는 추천받은 한 대부업체에 700만원을 빌리려고 했지만 “여유 있게 빌리는 게 좋다”는 B업체의 말에 1천만원을 대출했다. 그는 “당시 이 업체가 말을 정말 잘했던 걸로 기억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지씨는 대출받은 돈을 H은행에 넣었고 B업체가 현금 인출을 위해 그의 아이핀 아이디와 비밀번호, 공인인증서를 요구하자 별 의심 없이 정보를 넘겼다.

하지만 지씨가 대출한 천만원을 넣어둔 H은행의 통장 거래가 중지됐다. 해당 은행이 지씨의 통장에서 500만원이라는 거액이 빠져나가자 이상 징후를 포착해 인출을 정지시켰기 때문이다. 앞서 지씨가 이체 한도를 설정해놓아 돈을 찾는 데 실패한 이유도 있었다. H은행은 지씨에게 돈을 보내라는 사람의 이름, 연락처, 주소 등을 알아보라고 제안했다. 다음날, 지씨는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연락한 뒤 자신이 보낼 담당자의 인적사항을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지씨가 전화해서 알아본 결과, 자신의 돈이 들어갈 곳은 B업체의 담당자가 아닌 60대로 추정되는 일반인 장모씨의 ‘대포통장’으로 드러났다. 쉽게 말해 A업체에서 장씨의 명의를 도용, 대포통장을 만들었고 이에 돈이 들어오면 잠적할 속셈이었다. 장씨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 개인정보를 도용당하고 대포통장이 만들어져 피해를 입은 셈이었다. 결국 지씨는 돈을 돌려받았지만 이마저도 받기까지 한 달 정도가 걸렸다. 범인도 잡히지 않았다.

지씨는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머리가 많이 빠졌다. 악몽을 겪은 지씨는 사건 이후 전화번호를 바꿨고 은행업무는 무조건 유선상이 아닌 직접 은행을 찾아가서 본다. 그는 “이 일을 겪고 나니 ‘정말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은행권이나 카드사에서 전화가 오면 믿지 않는다”며 “직접 은행에 가서 하지 않은 이상 믿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 ⓒ뉴시스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 갈수록 증가 추세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의 규모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는 2013년 4765건에서 지난해 7635건으로 60%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액 역시 2013년 552억에서 지난해 974억원으로 전년보다 76% 늘었다. 또한 하루 평균 피해자는 20명, 피해 금액도 1275만원으로 증가했다.

최근 보이스피싱 조직이 범죄단체로 첫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302명에게 13억이 넘는 보이스피싱 사기를 친 조직을 ‘조직폭력배’와 같이 범죄단체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대구지방법원은 이들 관리책임자, 상담원 등 35명에 대해 실형을 선고했다.

이들의 범죄 수법은 치밀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일당은 지난 2013년 1월부터 9월까지 무려 302번에 걸쳐서 피해자들에게 비밀번호가 적혀있는 체크카드 302개를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단말기를 넘기면 돈을 주겠다고 속였다. 또 금융권이나 카드 직원으로 속인 뒤 돈이 필요한 피해자들에게 대출해줄 것처럼 하고 채권설정비 등 수수료를 편취했다. 아울러 차명으로 ‘1544, 1599’와 같은 대표번호를 국내에서 개통, 이를 중국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며 ‘행복기금을 빌려주겠다’는 말로 신분증, 사업자등록증 등을 인터넷 팩스로 받은 뒤 돈을 챙겼다.

검찰은 이 일당에 대해 사기, 범죄단체가입, 범죄단체활동,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부는 35명 모두에게 징역 3년에서 6년의 실형을 내렸다. 재판부는 “콜센터의 목적과 체계 등을 인식하고서 상담원 등으로 근무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형법 제114조 소정의 범죄단체가입 및 범죄단체활동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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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가기관이나 주요 정책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범죄 조직은 검찰이나 금융감독원 등 국가기관을 사칭하거나 메르스지원금, 안심전환대출 같은 국가 정책을 언급하며 사람들을 속인다. 이에 피해자들의 혼란은 가중되고 더욱 쉬이 속게 될 우려가 있다.

얼마 전에는 금감원 직원 실명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피해도 발생했다. 지난달 24일,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금융감독원의 예금 안전조치가 필요하다면서 직접 피해자 집을 찾아가 예금 4천만원을 가로챈 사건이 있었다. 이 사기범들은 피해자 신분증이 도용돼 금감원의 예금 안전조치가 필요하다고 속이고 예금 전액인 4천만원을 인출, 자택 냉장고에 보관하게 했다. 이 일당은 피해자가 신분증을 재발급하기 위해 잠시 자택을 비운 사이 냉장고에 있는 돈뭉치를 들고 잠적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감독원 직원은 어떤 경우에도 국민을 대상으로 개인, 금융정보의 유출에 따른 조치로 예금을 찾아 맡기게 하거나 물품보관함 등에 넣도록 요청하지 않는다”며 주의를 당부한 바 있다.

특히 기획대출 상품, 저금리 대출, 재택아르바이트 등을 미끼로 개인정보를 빼내거나 대포통장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범죄사건에 연루됐다는 식의 거짓말로 심리적으로 압박하며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 경찰이 공개한 보이스피싱 범죄 증거물 ⓒ뉴시스

인출 전 사전문자제도로 범죄 예방

보이스피싱 범죄는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2년 11월 보이스피싱 피해예방과 구제를 위한 ‘보이스피싱 지킴이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이곳에서는 실제 보이스피싱 범죄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등의 피해 예방에 대한 코너가 있다.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보이스피싱 예방 요령을 살펴보면 ▲금융거래정보 요구는 응대하지 말 것 ▲현금지급기로 유인하면 따르지 말 것 ▲유출된 금융거래정보는 즉시 폐기할 것 ▲자녀 납치 보이스피싱에 대비하려면 평소 자녀의 친구, 선생님 등 연락처 확보할 것 등이 있다. 무엇보다 텔레뱅킹 사전지정번호제(사전에 등록된 전화번호로만 텔레뱅킹할 수 있는 제도)에 가입됐다고 하더라도 인터넷 교환기를 통해 발신번호 조작이 가능하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한편, 금융감독원과 금융권에서는 지난 2일부터 통장에 100만원 이상 현금이 입금되면 이를 30분 뒤에 인출할 수 있는 지연인출제도를 마련했다. 기존 30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낮춘 것이다.

갈수록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심각성을 느낀 검찰도 지난 6월 18일부터 보이스피싱 사범에 대해 구형기준을 강화했다. 그동안 보이스피싱 조직이 많은 대포통장을 사용 중이라 적발되더라도 실제 처벌받는 피해 금액은 일부에 불과했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이스피싱 사범을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보이스피싱 근절 방안에 대해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 이기동 대표는 “보이스피싱 범죄의 인출도구로 사용되는 대포통장이나 대포폰이 사라져야 한다”며 “정부는 자신이 무심코 만든 통장이 범죄자들에게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내가 모르고 만든 통장을 남에게 양도해선 안 된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대표는 입출금 거래 시 ‘사전 문자서비스’ 도입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통장에서 돈이 빠지고 나면 문자가 오는 종전의 방식과 달리 돈이 빠지기 전에 문자를 받게 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돈이 출금되기 전에 미리 문자를 띄워 ‘승인 여부’를 확인한 뒤에 돈이 나가도록 해야 한다”며 “사전 문자서비스와 같은 시스템이 도입되면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한 피해를 어느 정도 예방될 수 있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의심이 들면 즉시 경찰청(☎112) 또는 금융감독원(☎1332)으로 연락해 피해 구제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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