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담한 표정의 한일월드 피해자 ⓒ투데이신문

한일월드 무료 체험 가입 고객만 1만여 명
4년간 천만원짜리 운동기기, 이용만 해도 공짜?

이영재 회장, 사기 혐의로 구속
직원 임금도 수개월째 체불

고객 계약서 담보로 BNK캐피탈에 자금 융통 받아
무료 계약, 알고 보니 ‘금융리스 렌털’이었다

【투데이신문 임이랑 기자】국내 최초로 정수기 렌털 사업을 시작한 이후 지난해에만 약 7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탄탄대로를 걷던 한일월드.

하지만 한일월드의 성공신화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한일월드는 대당 1000만 원에 육박하는 운동기기인 음파진동기의 렌털료를 대납해주겠다며 고객들을 모집한 뒤 렌털료를 내지 않아 이영재 회장은 결국 사기혐의로 구속됐다.

한일월드 직원들도 6개월 전부터 임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한일월드의 내부에서 큰 위기가 닥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고 있다.

게다가 이 회장은 고객에게 무료체험이라 설명하며 ‘VIP체험 프로그램’ 계약서로 1만여 명의 고객을 모집했고 이로 인해 1000억 원 정도의 계약 수익을 얻었다. 이 계약서를 담보로 BNK캐피탈로 부터 이에 상응하는 자금을 융통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체 한일월드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투데이신문>이 그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았다.

   
▲ 지난 2007년 하이서울브랜드 최고 성장상을 수상한 한일월드 이영재 회장 ⓒ뉴시스

1000만 원짜리 운동기기 음파진동기가 무료가 된 이유

‘필레오(FEILEO)’정수기로 유명한 한일월드는 1992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설립해 지난 10여 년 간 6배가 넘는 매출 성장을 이뤄냈다. 한일월드는 설립한 지 15년이 되던 지난 2007년 204억원의 매출과 1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고 2013년에는 연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특히 이영재 회장은 1989년 가정용 헬스기구 세일즈맨을 시작으로 국내 정수기 렌털 사업의 원조로 꼽히는 사람이었다.

이 회장이 정수기 사업을 시작할 당시 국내 정수기 시장은 대기업의 독식으로 중소업체가 생존하기 힘든 여건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대기업과 다른 영업방식을 추구하고 매월 비용을 나눠 납부하는 할부방식의 정수기 렌털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했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에 이 회장은 관련업계에서 ‘숨은 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수기 사업의 성공으로 한일월드는 공기청정기, 비데 등 가전제품과 스킨클렌저 및 헬스케어분야인 음파진동기까지 사업을 확장해 나가며 환경가전 기업으로 도약했다.

지난 2009년에는 중국 철강성 여요시에 ‘한일세계(닝보)정수과기유한공사’를 설립해 해외진출에도 성공했다. 지난해 이 회장은 ‘모범중소기업인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렌털을 이용한 영업 방식으로 큰 성공을 이룬 이 회장은 지난해 5월 다시 한 번 파격적인 렌털 영업을 시도한다. 바로 한일월드의 ‘VIP체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약 1000만 원 상당의 운동기기인 ‘음파진동기’를 렌털해 사용하면서 운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거나 설문조사 등에 응하면 한일월드에서 월19만8천원의 음파진동기 렌털료를 대납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4년 간의 계약이 종료되면 고객은 음파진동기의 소유권까지 넘겨받을 수 있다. 또한 3개월간 한일월드가 렌털료를 납부하지 않아 체납이 되면 계약은 자동 철회된다고 한일월드 측은 홍보했다. 고객들 입장에서는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고가의 운동기기를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한일월드는 영업사원들을 내세워 음파진동기 무료체험인 ‘VIP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대대적인 고객 모시기에 나섰고 그 결과는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VIP체험 프로그램’은 렌털료 납입이 중단되던 지난 7월까지 약 1만여 명의 고객을 모집했다.

   
▲ 지난달 27일 집회 당시 ‘VIP체험 프로그램’으로 피해를 본 피해자들이 가져온 음파진동기 ⓒ투데이신문

알고보니 ‘금융리스 렌털’ 

한일월드는 고객들의 계약서를 담보로 BNK캐피탈로부터 1000억 원 상당의 자금을 융통받았다. 그리고 한일월드의 입금 금액을 BNK캐피탈이 출금해가는 ‘금융리스 렌털’ 방식으로 계약했다.

겉보기에는 고객들에게 무료로 음파진동기 이용이 가능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BNK캐피탈과 한일월드, 그리고 고객이 얽히고 설킨 계약이 돼버린 셈이다. 1000만 원 상당의 운동기기가 무료가 된 이유에는 이렇게 복잡한 거래방식이 숨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금융리스 렌털’ 방식이 숨어있다는 것을 가입 고객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지난 7월, 매월 19일 한일월드로부터 지급돼야 할 렌털료가 지급되지 않자 BNK캐피탈은 다음날 고객들의 통장에서 렌털료를 출금해갔다.

당시 잔고가 있던 고객들의 통장에서는 돈이 BNK캐피탈로 출금됐고, 잔고가 없던 고객들의 통장에서는 돈이 출금 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몇몇 고객들은 한일월드에 계약 해지를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BNK캐피탈은 렌털료 회수가 제대로 되지 않자 지난 7월 24일부터 한일월드로부터 넘겨받은 ‘VIP체험 프로그램’ 계약서에 대한 채권공증에 들어갔다.

BNK캐피탈의 채권공증에 따라 고객들은 앞으로 잔여기간 동안 수 백 만원에 달하는 음파진동기 잔액을 울며 겨자 먹기로 납부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만약 음파진동기의 잔여 렌털료를 납부하지 않으면 ‘VIP체험 프로그램’을 계약한 고객들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에 일부 고객들이 BNK캐피탈에 연락 해 계약서를 돌려받았지만 계약서에는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서명이 돼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무료로 음파진동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회사의 말을 믿고 친구와 주변 친지들에게 ‘VIP체험 프로그램’을 권유한 한일월드 직원들까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BNK캐피탈은 9월 3일 한일월드 피해자들에게 개인별로 ‘렌털 계약해지 변경안’에 관한 문자를 보냈다.

변경안은 렌털계약 해지 변경 기계를 소유하는 대신 해지하면 잔액의 45%를 납부하거나 기계도 반납하고 계약도 해지하면 잔액의 25% 납부해야 하며 계속 렌털을 유지하려면 84개월 분납을 택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한 고객은 “우리는 무료라고 해서 계약한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누가 계약을 했겠나”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결국 한일월드와 계약 당시에는 무료로 음파진동기를 이용했지만 이제는 고객들이 비용을 부담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무료 체험이 유료 체험으로 뒤바뀐 것이다.

   
▲ 지난달 27일 오후 3시 한일월드 앞에서 ‘한일월드 음파운동기 피해자 모임’이 한일월드와 이영재 회장 규탄집회를 가졌다. ⓒ투데이신문

“한강에 투신하는 사람들 마음 이해돼”

일순간에 1000만 원 빚을 지게 된 고객과 급여조차 받지 못한 한일월드 직원들은 ‘한일월드 음파운동기 피해자 모임’(가칭)을 결성했다.

그리고 이들은 지난달 27일 오후 3시 서울 구로구 구로3동 한일월드 앞에서 집회를 열고 “한일월드 이영재 회장은 각성하라”며 한일월드의 이영재 회장을 규탄했다.

이날 집회에서 김종복 대변인은 단상으로 올라가 “한일월드는 가져간 우리 돈을 돌려주고 BNK캐피탈에 팔아먹은 계약서를 돌려달라”며 “월세방 하나를 계약해도 고지를 하는데 한일월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김 대변인은 “한일월드와 ‘VIP체험 프로그램’에 계약을 할 당시 우리가 계약을 해지하면 끝이었다”며 “그렇기에 BNK캐피탈은 우리에게 렌털료를 청구할 권리도 없고 추심할 권리도 없다”고 덧붙였다.

김 대변인 발언 이후 필레오의 남자 직원 한 명이 올라와 목이 터져라 “우리 돈을 돌려달라”, “배고파서 못 살겠다. 다 죽이고 너만 사냐”를 외쳤다. 이를 바라보며 한쪽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던 또 다른 필레오 직원은 “지금 저렇게 외치고 있는 저 사람이나 나나 계약직이기 때문에 밀린 임금도 못 받을 것이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익명을 요구한 필레오 직원은 “이번 일 때문에 주변의 지인들과 가족, 친구들 죽을 때까지 연을 끊을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숨을 쉬며 “한강에 투신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이해할 정도다.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며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 한일월드 홈페이지에 게재된 반환접수 절차 안내

한일월드가 내놓은 해결책은 ‘글쎄’

고객들의 불만과 항의가 이어지자 한일월드는 지난 3일 홈페이지를 통해 ‘한일월드 VIP체험단 반환 접수절차 및 위치 안내’라는 제목의 공지를 통해 “고객님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VIP체험 고객님들의 렌털 물건 반환 접수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한일월드는 “반환 의사를 밝히신 고객은 더 이상 렌털료 지불 의무가 없음을 알려드리며 채권의 양도와는 관계없이 계약 당사자의 해지 의사를 밝힘으로써 추가적인 렌털료 지불의무가 없음을 알려드린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일월드가 내놓은 해결책은 사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일월드 피해자들의 법적 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코러스의 김승휘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한일월드 사태는 ‘VIP체험 프로그램’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 BNK캐피탈은 BNK캐피탈대로, 한일월드는 한일월드대로 서로가 각자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은 누구의 해결책을 선택해야할지 모르는 불분명한 지위에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한일월드는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음파진동기를 반환 받겠다고 했지만 사실 지난달 24일에도 해지 접수 및 물건 반환과 관련 공지를 했다”며 “실제로 계약 해지가 되진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도 피해자들은 BNK캐피탈로부터 추심을 받고 있으며 통장에 돈이 있는 피해자들은 렌털료가 계속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로서는 BNK캐피탈의 추심을 막을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피해자 대부분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정말 두 회사가 이번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VIP체험 프로그램’ 계약에 대한 당사자가 누구인지 명확히 밝히고 향후 이 계약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소비자들은 렌털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며 “렌털 기간 동안 렌털료의 자동이체가 어디로 되는지 확인하고 렌털 기간 종료 후에는 렌털기기의 소유권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BNK캐피탈 “현재 고객 통장서 출금 없어”

BNK캐피탈의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한일월드가 영업해 온 계약서를 저희가 양도받은 것 뿐”이라며 “고객들에게 추심은 한 적이 없다. 렌털료가 출금되지 않았다는 것을 안내했던 것 뿐”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고객들의 통장으로부터 렌털료를 출금하고 있지 않다”며 “이미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고객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채무조정안 3개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며 사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해 <본지>는 한일월드에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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