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지난번 칼럼에 이어 이번에는 사도세자가 앓았다고 전해지는 질병에 대해 알아보자. 사도세자의 질병은 기본적으로 정신질환이었다. 그 원인은 대리청정(국왕을 대신해서 국정을 운영하는 것)과 양위(讓位: 임금의 자리를 물려줌) 파동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김범 연구사의 글에 따르면, 사도세자는 영조 25년 2월부터 대리청정을 시작하였는데, 아버지 영조는 아들의 정무적 능력과 수신(修身)에 더욱 불만을 갖게 되었다. 그런 불만은 양위 파동을 계기로 집약되어 폭발했다.

영조 집권기에는 총 5회의 양위 파동이 있었다.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서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선포하는 것이 무려 다섯 차례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양위는 실제로는 왕의 본뜻이 아닌 경우가 조선왕조 내내 발견된다. 즉 왕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나 왕 노릇 안하겠다!’라고 소위 ‘땡깡’을 부리는 것이기도 하다. 혹은 특정 정치 세력의 힘을 꺾거나 신하들이 왕자들 가운데 누구에게 마음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양위를 선포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본의 아닌 양위 선포에 대하여 세자는 온 몸으로 그것을 말릴 필요가 있었다. 효(孝)는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 중 하나였고, 그것을 가장 먼저 실천해야 되는 사람이 바로 세자를 비롯한 왕실 종친들이었기 때문이다. 사도세자 역시 영조가 잊을 만하면 양위를 언급하니, 그 때마다 큰 일이라도 난 척 하면서 석고대죄 하고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자학했다. 김범 연구사의 연구에 따르면, ‘사도세자가 관(冠)을 벗고 뜰에 내려가 석고대죄(席藁待罪)한 것이 두 번이었고, 머리를 조아리며 땅에 짓찧은 것이 한 번이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영조 33(1757)년에 세자가 반성의 의미로 승정원에 내린 글을 보면 ‘두렵고 송구스러워 끝없이 후회할 뿐이다. 두렵고 송구스러워 끝없이 후회할 뿐이다. -(중략)- 이것이 나의 바람이다. 이것이 나의 바람이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반복된 표현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도 엿보이지만, 굉장히 불안한 심정도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결국 사도세자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사도세자는 영조를 보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다. 영조의 들어오라는 말만 들어도 무서워서 벌벌 떨었고, 알고 있는 것도 영조 앞에서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증상은 사도세자가 왕을 만나기 꺼려하는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옷을 입기 싫어하는 의대증(衣帶症)이었다. 또한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긴장하고 가슴이 뛰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 질환은 훗날 궁궐에 있는 노비와 내시를 죽이는 현상으로까지 치닫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도세자의 비행에 대하여 영조는 더욱 강한 질책을 하니, 그 증상은 더 심해졌다.

이후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멀어졌다. 조선시대에 왕실이 효(孝)의 모범을 보이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부모에게 문안을 드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도세자는 병환을 핑계로 문안 인사를 미루었고, 문안인사를 올 경우에도 영조가 ‘병이나 치료해라.’라고 문안을 받지 않았다. 그 결과 해를 넘겨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대면이 이루어졌다.

그 후의 일은 유명하다. 사도세자가 관서(關西)지역을 유람한 적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민가에 출입하고 기생과 유흥을 즐겼다는 고발이 들어왔다. 또한 이후 나경언이라는 사람이 세자가 반역을 꾀한다고 고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막상 조사 과정에서 나경언은 세자의 반역 계획이 아닌 세자의 비행 열 가지를 고발했다. 그리고 조사 결과 나경언이 세자를 모함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생모인 영빈 이씨의 건의로 영조가 세자에게 자결을 명령했고, 그 결과 뒤주(기록에는 그냥 ‘깊은 곳’이라고 나온다.)에 8일 동안 갇혀서 죽게 된다.

사도세자가 죽게 된 원인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실제로 사도세자의 비행이 심했거나, 아니면 사도세자가 역모를 도모했다는 것이 원인으로 언급되기도 하지만,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이 유력한 정설이다. 필자는 박시백 선생의 의견에 공감하며 ‘부자관계’에 집중하고자 한다. 아버지인 영조는 ‘훈육’, ‘왕위 수업’과 같은 이유로 사도세자가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닮은 왕으로 키우려고 했다. 또한 성인이 된 세자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심지어 세자가 마음에 안들고 세손(훗날 정조)이 더 마음에 들자 세손에게 왕위를 넘겨주기 위한 프로젝트의 결과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죽으라고 하는’ 비극을 낳았다는 주장도 있다.

곧 있으면 민족의 대명절 추석이다. 취업준비생, 수험생, 노총각이나 노처녀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고, 심지어 추석이 되면 며느리와 사위 시댁과 처가에 가지 않기 위해 꾀병을 부린다고 한다. 사도세자가 병을 핑계로 영조에게 문안을 드리지 않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자식들은 현재의 상황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나이값 하는’ 돌파력이 필요하고, 어른들은 자식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는 ‘나이값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명절을 맞아 그야말로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소통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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