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헬조선의 청년 세대
[칼럼] 헬조선의 청년 세대
  • 이원석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2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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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석 칼럼니스트
·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

【투데이신문 이원석 칼럼니스트】요즘 청년들은 한국을 헬조선 지옥불반도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을 수식하는 어휘로 지옥이 채택되었다. 청년 세대에게 있어서 한국의 상황이 지옥 같다는 뜻이다. 얼마나 현실이 엄혹하면 조국을 가리켜 이렇게 부르겠는가. 심지어 혹자는 헬조선은 동어반복이라고도 주장한다. 헬(지옥, hell)과 조선(한국)이 같은 뜻이기 때문이란다. 청년 세대들에게 있어서 한국이 어떠한 사회로 인식되고 있는 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전천국 무전지옥

실은 없는 이들에게만, 지옥일 것이다. 유전천국 무전지옥(有錢天國 無錢地獄)이랄까. 한국은 이제 명백한 계급사회이며, 이러한 계급 질서는 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황금수저,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쇠수저, 흙수저, 똥수저로 갈려있는 위계 속에서 나고 자란다는 것이다. 학벌과 스펙, 그리고 직업 등이 애초에 태어날 때 입에 물고 나온 수저가 무어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청담동 엘리스>의 명대사처럼 부모 잘 만나는 것도 능력인 시대이다.

금수저가 아니라 똥수저를 물고 태어난 청춘은 그저 (죽도록 노력해도 찢어지게 가난한 처지를 벗어날 수 없는) 똥수저 인생을 살다 가게 된다. 결국 계층 상승의 문이 거의 닫혀버렸기에 자기 노력으로는 뭘 해도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요새는 개천에서 용난다고 하지 않고, 개천에서 용쓴다고 하지 않던가. 근래에 개봉한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인공 수남이 보여주듯이 게으르지 않고 성실할수록 외려 더 비참해지는 기인한 상황인 것이다.

한국의 이런 왜곡된 현실은 청년 세대에게 더하다. 이들에게 생존은 지난한 과업이 되었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경쟁해야할 처지가 된 것이다. 청년 세대 대부분은 영혼을 팔아도 대기업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없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의 정규직 쟁취를 위한 고투와 그 좌절에서 잘 드러나지 않던가. 원작이나 드라마에서 장그래는 결국 중소기업에 입사하는 것으로 스토리가 종결된다.

헬조선과 탈조선

장그래와 우리가 처한 현실이 이러한 작명 감각의 발휘로 해결될 수 있을까? 헬조선이라는 기발한 명칭을 창안하고, 이를 널리 사용하는 것이 과연 사회의 변혁으로 연장될 것인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헬조선을 부르짖는 이런 언어유희 가운데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심화시키고 사회변혁의 기치를 내건다면 그건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유희는 찰나의 불만 해소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위계 시스템이 우리의 감성구조를 강력하게 불잡고 있기 때문이다. 헬조선 사이트에 가보면, 대문에 걸려있는 오늘의 한마디가 눈에 확 들어온다. “죽창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그러나 정작 이곳의 청년들이 추구하는 것은 해외이민이다. 한국을 어서 빨리 떠나고 싶다는 바램을 탈조선이라는 어휘로 보여준다. 그렇게 보면, 죽창은 그저 레토릭에 불과하다. 그저 불만을 강하게 표하기 위한 것일 따름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 개혁으로 국민 모두가 행복하게 바꾸기보다 그저 해외 이민으로 내 한 몸만 빼내는 것이 오늘날 청년들이 꿈꾸는 지향점이다. 이 사회와 싸우는 버거운 짐을 지기보다 이 사회를 벗어나는 간단한 해법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해법의 규모를 개인 단위로 줄이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자신이 감당할 만 한 사이즈이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만 돕는다고 하는 자기계발(self-help)의 정신이다.

토익책 대신 짱돌을

한데 정작 탈조선을 노려볼 정도라면 한국사회에서도 제법 상위 레벨에 놓여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라면, 사회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적절한 해법일 것이다. 하나 대부분의 청년이 취하는 해법은 지옥과도 같은 우리 사회에 대한 비난과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자신들에 대한 자학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그 자체로는 의미있는 행동이지만, 만일 거기에 머무른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석훈과 박권일의 공저, <88만원 세대>은 이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 문제작의 결론은 상당히 과격하다. 토익책을 덮고 짱돌을 들라는 것이다. 물론 짱돌은 헬조선의 죽창처럼 수사적인 표현이다. 요는 사회적으로 액션을 취하라는 뜻이다. 사회 모순이 세대 갈등으로 재현되는 현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청년들의 착취로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현실에서 청년 세대의 집단적 움직임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의 메시지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실은 이 책이 출간된 2007년 당시보다 더욱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왜곡된 차별 구조가 훨씬 더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금수저와 똥수저를 동일한 운동장에 모아놓고 경쟁시키는 시대이다. 모두 일렬로 줄 세우고 경쟁을 강요하는 이런 현실을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된다. 청년들이 일어서야 한다.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미래는 청년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