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재벌의 사익편취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주제로 토론회 열려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국가미래연구원과 경제개혁연구소, 경제개혁연대가 지난 21일 오후 1시 30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재벌의 사익편취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별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 한국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지난 6월부터 한 달에 한 차례씩 진행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다>의 첫 번째 시리즈인 <한국의 재벌기업,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중 3번째 세부 토론회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김건식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가 진행에 나섰으며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채이배 회계사가 발제자로 참여했다. 또한 박동영 법무법인 두우 대표변호사, 신광식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김주영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변호사, 홍명수 명지대 법과대학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은 진보 혹은 보수를 불문하고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가 한국경제의 효율성 및 공정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점에 함께 뜻을 모았다.

또한 이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독기구·사법기구의 엄격하고 바른 법집행이 전제된 법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도 한목소리를 냈다. 상법·공정거래법·세법 등의 여러 규율장치들이 체계적이고도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데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경영권 승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비롯해 구체적인 사익편취 대안에 대해서는 토론자들의 입장 차이가 있어 격렬한 토론이 진행됐다.

보수 이상승 교수 ‘경영권 승계’ 가능해야 돼

보수 측 이상승 교수는 발제를 통해 사익편취 문제 중에서도 ‘일감 몰아주기’에 초점을 맞춰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례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이상승 교수는 사익편취 대안을 제기하기에 앞서 기업 상속 의지는 장기 가치 경영의 원동력이 될 수 있으므로 기업의 사기를 꺾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상승 교수는 “일감 몰아주기 사례로 현대자동차그룹 총수일가가 현대글로비스 설립시점인 2001년부터 2013년까지 현대글로비스로부터 얻은 이익이 약 4.6조원이다”며 “이는 같은 기간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제철 등 4개의 회사 주주들이 총수일가에게 성과보수 또는 스톡옵션으로 이들 4개 회사의 시가총액 증가분 중 약 7,9%를 지급한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성과보수 수준의 적정성 여부와는 별개로 주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글로비스를 총수 일가의 개인 회사로 설립해 일감을 몰아준 것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며 “이 같은 문제는 기업들이 상속세를 내고 나면 2, 3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어려워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세 강화, 공정거래법을 동원한 제재뿐만 아니라 지분 비율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이상승 교수는 재벌들이 경제적 권리에 대한 고율의 세금을 납부하는 대신 차등의결권을 도입해 경영권의 승계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진보 채이배 회계사 ‘현행 강화’로 재벌 규제 회피 막기

반면 진보 측 채이배 회계사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보다 현행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채이배 회계사는 사익편취의 문제점과 재벌의 규제회피 사례를 점검하며 이에 따른 규제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채 회계사에 따르면 사익편취의 문제점에는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 재벌 상장회사의 기업가치 훼손 및 주주손실, 불공정한 경쟁으로 인한 중소기업 배제, 자본주의의 건전한 발전 저해 등이 있다.

채 회계사는 “사익편취를 막기 위해 상속증여세법의 일감 몰아주기 과세, 공정거래법의 총수일가 부당이익제공 금지 규제 등이 도입됐으나 규제의 실효성은 없고 오히려 총수일가의 지분 일부 매각, 합병 등을 통해 규제요건을 편법적으로 피해가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예로 채 회계사는 삼성에버랜드의 경우를 들었다. 삼성에버랜드는 패션 사업부문 인수, 단체급식 사업부문 물적분할, 건물관리 사업부문 매각, 삼성물산과의 합병 등으로 지배주주 지분율을 43%에서 23%로 낮추고 내부거래 비중도 40%대에서 10%대로 낮췄다. 삼성에버랜드는 일감 몰아주기로 판단되는 상장회사 30% 지분요건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적인 이익을 동일하게 향유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지분을 낮춰 규제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는 “세법에 따라 내부거래 비중 요건뿐만 아니라 내부거래 금액 요건을 동시에 적용해 과세를 회피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며 “공정거래법에 따른 규제 대상 지분 요건 역시 상장회사, 비상장회사 모두 동일하게 20%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근본적으로 감독기구·사법기구의 엄정한 법집행과 재벌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수 박동영 변호사 여러 규정 내용 ‘통일적 정리’ 필요

보수 측 박동영 변호사는 채 회계사의 발제 내용에 대해 특별한 이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부당 내부거래를 막기 위한 공정거래법과 상법에 산재한 여러 규정들의 내용을 가급적 통일해 정리하고 형평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점을 제기했다.

박 변호사는 규제의 대상이 되는 기업진단의 요건, 거래의 유형 내지 규모, 수혜자인 특수관계인 내지 관련 기업의 범위 등이 통일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동영 변호사는 불공정거래행위 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의 금지에 관한 법조항인 공정거래법 제23조나 제23조의2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며 사익편취 규제를 위해 형사적 제재 활성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제23조와 제23조의2에서 규정하는 부당지원행위란 ‘부당하게 특수관계인(동일인, 계열회사 등) 또는 다른 회사에 대해 가지급금, 대여금, 인력, 부동산, 유가증권, 상품, 용역, 무체재산권 등을 제공하거나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다.

이 조항에는 ‘상당한 규모로 거래(일감몰아주기)’하는 행위가 부당지원에 해당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박동영 변호사는 “대규모 기업집단과 특수관계자 사이의 거래관계 등을 경제력 집중 규제의 차원에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현재의 공정거래법 체제 하에서 부당성이라는 요건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으나 법조항이 상당한 정도의 부당성으로 표현된 점 등을 감안해 부당성의 인정기준을 낮출 필요가 있으며 입증의 정도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사나 감사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추궁할 필요가 있다”며 “검찰이나 법원 등의 전반적인 인식의 전환, 공정거래위원회 조직의 충실화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 현행 사익편취 규제 제도는 부적절한 처방

보수 측 신광식 교수는 일감 몰아주기 관련 현행 공정거래법 조항이 수정돼야 한다는 박동영 변호사의 주장에 힘을 더했다.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높은 내부거래 비중은 사익편취와 무관한 정당한 사업상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신 교수는 주장했다. 또한 사익편취에 따른 내부거래일지라도 내부거래 비중이 30% 미만일 경우 과세를 하지 않는다. 즉 현행은 사익편취를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면서 효율적 내부거래를 억압할 수 있다는 것.

신 교수는 “일감몰아주기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은 잘못이다”며 “일감몰아주기 증여세를 폐지하는 대신 공정거래법 제3장에 사익편취 규제조항을 설치해 사익편취 목적의 계열사 신설을 방지하는 등 일감몰아주기 수혜회사의 사익편취 목적의 지분구조를 조정하는 것이 사익편취를 막는 동시에 경제적 효율성을 증대할 수 있는 방안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제도적 보완 과제와 관련해 이해관계자들에 의한 사적 소송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주주대표소송 지분 요건 완화, 이중대표소송 도입 등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보 사익편취 이유 ‘경영권 승계 때문’ 아냐

진보 측 김주영 변호사는 보수 측 이상승 교수와 다르게 경영권 승계에 대해 경계적인 태도를 보였다.

김주영 변호사는 “사익편취의 주된 동기를 ‘경영권 유지 및 승계’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우호적인 평가다”며 “사익편취의 주된 동기는 ‘돈’으로 경영권 유지 및 승계에 전혀 문제가 없는 재벌도 얼마든지 사익편취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자신이 피땀 흘려 만든 회사를 자신의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강력히 희망한다’라는 기업문화가 있다면 이는 생색, 자랑, 가족우상주의, 두려움, 탐욕에서 비롯된 고쳐야 할 문화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재벌 2, 3세들은 자신의 개성에 맞는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거나 축척된 부를 이용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원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들은 그룹의 권력과 너무 큰 돈을 안심하고 위탁할만한 시스템이 없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소유구조의 단순화와 사익추구를 막는 시스템 고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사익편취의 주된 동기는 돈이므로 경영권 유지 및 승계에 전혀 문제가 없는 재벌의 경우에도 사익편취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며 “차등의결권 도입 등을 통해 지배권 상속 문제를 해결하면 사익추구행위가 줄어들 것이라는 진단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사익편취 문제가 재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주영 변호사는 “재벌에 독특한 규율보다는 보편타당한 규율로 사익편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같은 맥락에서 재벌의 사익편취 문제를 줄인다는 명분하에 재벌에 초점을 맞춘 특별한 혜택을 부여하는 것도 보편성과 형평성 등에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김 변호사는 박 변호사의 부당 내부거래 규제법 내용을 통일하자는 주장에 맞섰다. 김 변호사는 “현재 세법, 상법, 공정거래법이 각각 다르게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를 하고 있는데 규제 목적이 다 다르다”며 “각 법의 내용을 통일하는 것은 적절한 대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진보 홍명수 교수 ‘차등의결권’으로 사익편취 자제 어려워

진보 측 홍명수 교수는 이상승 교수의 차등의결권 도입 주장에 맞서며 차등의결권 도입만으로는 사익편취를 막기 어렵다는 김주영 변호사와 뜻을 같이 했다.

홍명수 교수는 “차등의결권의 도입만으로 기업들이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사익편취적 행위를 자제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차등의결권 도입이 기업집단의 지배구조와 집단적 운영방식과 관련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점에서 고려한다면 차등의결권과 지배구조나 행태의 개선을 연계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홍명수 교수는 박동영 변호사가 주장한 공정거래법 제23조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동의하기도 했다.

홍명수 교수는 “법 제23조 제1항 제7호에 의한 부당지원행위 규제에서 지원행위 해당성이나 위법성 판단에 있어서 명확치 않은 점이 있다”며 “정상적 거래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도 23조 제1항에 따르면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총수 및 그 친족과 이들이 지배하는 계열회사를 이익 귀속 주체로 상정한 것은 타당하지만 지배 계열회사를 지분 비율에 따라 형식적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논의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