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며칠 전 친한 지인이, 중부고고학회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학술회의 공고를 보여줬다. 오는 10월 5일 1시부터 프레스센터에서 고대 동아시아의 왕성과 풍납토성이라는 제목으로, 풍납토성의 성격 규명을 위한 학술 세미나를 연다고 돼 있었다. 직업상 늘 상 보는 것이 학술회의 공고이니, 이런 공고가 뜨고 확인하는 것 자체야 새삼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고는 상황이 달랐다. 바로 풍납토성과 백제왕성의 관계에 관한 학술회의 공고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얼마 전에 벌어졌던 ‘풍납토성이 과연 백제왕성인가’를 따지는 논쟁의 당사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제3자가 아닌 당사자 입장이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더욱이 이번 학술회의를 공고하면서 학회 측에서 그 의미를 소개한 내용도 의미심장하다. ‘우리 학회에서는 7개 기관과 연합해 최근 풍납토성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각종 잘못 알려지고 있는 이슈 등에 대하여 대응하고자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라고 해놓았던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상당히 의미 있는 학술대회인 것처럼 보인다. 학술적으로 논란이 있는 주제에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으면, 당연히 이를 밝히는 것이 관련 전문가와 학회가 할 일이다. 그러니 풍납토성이 백제왕성인지 여부에 논란이 일고 있고, 또 이 지역 발굴사업에 몇 조의 금액이 거론되고 있는 이 시점에 사실을 밝힐 학술대회를 연다는 자체는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속을 들여다보면 이렇게 겉으로 내세운 목적이 전부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주최 측이 내세운 대로 ‘잘못 알려지고 있는 이슈’를 밝히자면, 당연히 ‘이슈에 대해 잘못 알려놓은 당사자’를 대상으로 논리적으로 격파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그러니 반대주장을 하는 사람을 불러놓고 공정하고 정정당당하게 논리 싸움을 벌여 제압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주최 측에 의하면 바로 그 당사자가 되어야 할 필자는 이번 학술회의가 기획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랬으니 확정된 내용을 공고를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나름대로 의미심장하다. 언급하기도 민망할 만큼, 이 학술회의에서 필자가 아는 발표·토론자는 당연히 풍납토성을 왕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 자체가 한성백제왕성에 대한 논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황당할 일이다.

말하나 마나 한 소리지만, 논란이 있는 문제에 대한 시비를 가리려면 서로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근거와 논리를 공개하여 결론을 내주어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을 배제해버린 상태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보나마나라는 뜻이 된다. 즉 이렇게 기획된 학술회의라는 것 자체가 특정한 결론을 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이다.

명색이 학자라는 사람들이 학술적인 논쟁이 있는 사안을 이런 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풍조가 대한민국 사회에 무엇을 시사해줄까? 그리고 여기에는 황당함을 넘어 섬뜩한 측면이 있다. 이 학술대회를 주최·주관한 곳이 도시사학회·백제학회·중국고중세사학회·중부고고학회·한국고고학회·한국고대사 학회·한국상고사학회로 되어 있다. 여기에 문화재청·서울시청·송파구청의 후원까지 받았다고 당당하게 명시됐다.

여기에 명시된 학회와 후원 기관들의 이름만 보아도, 역사학이나 고고학 관련자들의 기를 죽이기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고대사 관련 학회 거의 전부가 풍납토성을 한성백제왕성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대한민국 문화재청을 필두로 서울시청·송파구청의 후원까지 받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원칙적으로 학술적인 논란은 근거와 논리에 의해 결론이 나야 하는 것이지, 세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왕성이냐 아니냐는 것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런 점을 모를 리 없는 학술단체들이 반대 주장하는 측의 배제해 놓은 채, 특정 결론을 낼 사람들만 모아 학술대회라는 것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학술대회’라기 보다 ‘궐기대회’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이런 짓을 대한민국 지성이라는 학자들이 해도 되는 것일까?

경제적 이익 때문에 관련 심포지엄을 주최한 풍납동 주민들 쪽에서도 반대 주장을 하는 인사들을 찾아 시비 가릴 기회를 줬다. 이 때 반대토론 할 사람을 구하는데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필자 혼자서만 십여 명을 추천했는데, 거의 다 황당한 핑계를 대로 도망가 버리고 겨우 박순발·이도학 교수만 나섰다. 그런데 그 때 시비 가리자는 자리 피한 당사자 상당수가 이번 학술대회에는 나왔다. 하필 지난 번 나섰던 사람이 이번에 빠진 것도 이채롭다.

어쨌든 비전문가들도 최소한의 도리는 했는데, 순수하게 학술적 시비를 가리는데 집중해야 할 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기본적인 도리를 저버린 셈이다. 명색이 학자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대 주장 펴는 측을 일방적으로 소외시켜 놓은 채 ‘잘못 알려지고 있는 이슈’를 밝히겠다는 학술대회를 개최할 발상을 했을까? 그리고 이런 발상에 7개 단체나 되는 학술단체, 대한민국 문화재청과 서울시청·송파구청 관계자 중 누구 하나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안했다는 뜻이다. 있었다 하더라도 이 단체와 기관을 끌고 가는 핵심요인들이 철저하게 무시했다는 얘기가 되니, 양심 있는 사람이 있었다고 해도 별 의미는 없겠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집단이기주의가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그래서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패거리 모아 세력을 과시하는 집단은 손가락질을 받는다. 당장 이들의 반대편에 있던 풍납동 주민들을 한국일보에서 어떻게 매도했는지 상기해보자. 그 기사에서는 경제적 이익에 눈이 먼 주민들이 자기들 원하는 결론을 내기 위해 심포지엄에서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물론 이 자체도 사실과 다르다. 주최 측과 합의 아래, 물리적 폭력은 물론 야유까지 자제하자고 했고 이 현장에서 그대로 이행됐다. 반대 주장을 발표하러 나선 충남대 박순발 교수가 시비를 가리자는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도 않는 무성의한 발표로 일관하는데도 역사학에 대해 ‘무식한’ 일반 시민들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켰던 셈이다. 답답한 마음은 지지하는 주장에 대해 박수와 환호 정도하는 수준에서 자제했음을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한 언론사는 이조차도 강압적인 분위기로 매도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의 지성이라는 학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반대주장 할 사람들을 원천적으로 배제한 상태에서 ‘잘못 알려지고 있는 이슈’를 밝히겠다는 학술대회를 열겠단다. 풍납동 주민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학자님들과 문화재청과 서울시청·송파구청 관계자 분들의 이러한 행각에 대해 영향력 있는 언론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궁금하다. 지금까지의 행각을 봐서는 어떤 보도가 나올지 뻔하다.

이런 짓을 해놓고도 주변에서 대한민국의 지성이라는 학자 분들이 하는 언행을 보면 가관이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정치인들이 사리사욕 채우기에 바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집단 중 하나가 바로 이들이니까. 이렇게 위선적인 행각을 벌이는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부모 등이 휘어지는 등록금으로 월급 받아가면서. 우리 사회가 왜 점점 파렴치한 사회가 되어가는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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