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삼국지인물전>,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외 4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담임선생님이 종례를 하러 들어오셨다. 집에 가는 시간이니 떠들썩한 분위기에 선생님 표정도 무척 밝았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교탁 앞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가 책상에 낙서를 한 걸 보신 거였다. 선생님은 부드럽게 타이른다.

“야, 책상에 왜 낙서를 하고 그래. 어서 지워라.”

“네. 헤헤.”

“그런데 뭐라고 써 놨냐? 한 번 보자.”

“…….”

“어? 고바야시? 고바야시가 뭐냐?”

고바야시는 아마 당시에 이름 난 일본배우였는가 보다. 친구의 대답을 들은 뒤에 선생님은 무섭게 돌변했다.

“야! 이 자식아.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 사람 잡아가서 어떻게 한 줄 알아?”

“…….”

“우리나라 침략해서 죄 없는 사람 잡아 죽였던 놈들이야. 그런데 너는 뭐 고바야시?”

선생님이 뺨을 때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교실. 그렇게 종례가 끝났다. 혼자 집으로 오면서 가만히 생각을 해 봤다.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때려야 했을까. 고작 책상에 낙서를 한 걸 갖고 뺨을 때리다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일제의 만행에 대한 이야기는 글로도 읽고, 사진도 보아서 조금 아는 바가 있다. 당연히 적개심이 타올랐다. 친구의 뺨을 때린 선생님의 마음도 실은 그 옛날 일제를 향한 적개심이었고, 암울했던 과거를 잊고 사는 우리들을 향한 염려였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소리를 지르며 뺨을 때린 선생님의 행동은 그 친구의 잘못에 비하면 과도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뺨을 때리는 짓은 일제가 우리 국민을 모욕하기 위해 써먹던 방법이 아니었던가.

요즘 일제강점기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암살’이 흥행하고, 유력한 정치인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친일행각’이 화제가 되면서 어느 때보다 ‘친일파 청산’, ‘일제 잔재 청산’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얼마 전에는 역사학자 이덕일 씨가 고려대 김현구 교수를 식민사학자라고 비난하자 김현구 교수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다시 한 번 ‘친일’이 화두가 되고 있다.

친일파(또는 민족반역자)의 후손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워서 최소한 그들이 부끄러워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그들에게 분노한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그 태도는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친구를 때린다고 해서 일제의 잔혹함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친일파를 청산할 수도 없다.

거의 30년이 다 되어가는 고교시절 이야기를 꺼낸 것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30년 후, 현재를 사는 많은 우리들의 태도도 그 옛날 선생님의 그것과 크게 달라진 면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만큼 분노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적개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는가. 여전히 일본을 ‘왜놈’ 정도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무턱대고 한 쪽의 말만 듣고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한 학자를 식민사학자로 섣불리 매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고바야시’ 네 글자에 뺨을 때리려고 덤비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이런 태도야 말로 우선 청산해야 할 ‘일제의 잔재’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