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구를 위하여 축문(祝文)은 읊히나!
[칼럼] 누구를 위하여 축문(祝文)은 읊히나!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5.09.30 2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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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추석 연휴가 끝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귀성 행렬에 동참했고, 그 덕분에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이 됐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고생하면서도 고향에 방문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고향, 혹은 부모님 댁에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다. 필자 역시 고향에 방문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추석 연휴 이후 주변 사람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 집은 종갓집도 아닌데, 종갓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부모님이 차례와 제사를 지내며. 특히 부모님께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조금 힘겨우실 정도의 환자인데도 제사나 차례를 지낸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특히 제주(祭主)가 몸이 좋지 않을 경우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그리고 제사나 차례에 참석하는 사람이 임신을 했거나 환자인 경우 그 사람은 제사나 차례에 참석할 수 없다. 돌아가신 선조에게 불효일뿐더러, 의례도 제대로 진행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께서 밤새 제사 음식을 만들고, 아픈 다리를 만지면서 절을 하며, 각종 질환으로 힘들어하시는 아버지께서 힘겹게 차례를 준비하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주변 사람은 무척 속이 상했다고 전했다.

명절이 되면 각종 허례허식(虛禮虛飾)들과 자랑과 시비 걸기 배틀(battle)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며느리들은 명절 전부터 소화불량을 비롯한 각종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다. 그 비싼 명절 음식과 차례상의 음식을 구매하기 위해서 그 전까지 뼈 빠지게 돈을 벌었던 남성들은 명절 때 뒹굴 거리면서 논다는 핀잔을 듣곤 한다. 청년들은 취업과 결혼 등에 관한 각종 잔소리에 시달린다. 기가 막힌 것은 지금의 청년들의 힘든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은 청년들이 아닌 기성세대인데, 이 청년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은 가해자인 기성세대라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 보면 이러한 허례허식과 세대와 가족 사이의 갈등의 결정체가 바로 추석 차례상일 것이다. 원래 전통적으로 추석 차례상은 농업을 주로 하던 시대에 한 해 농사의 수확물들을 나누고, 그 수확물을 낼 수 있게 도와준 조상에게 감사를 드리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산업화되고 핵가족화 된 현대 사회에서 추석 차례상은 그나마 가족들이 서로가 가족이며 친척임을 확인할 수 있고, 한 가족이라는 정체성을 심어주는 상징적인 것이다. 함께 음식을 만들고, 함께 차례라는 의례를 치르며, 함께 차례 음식을 나눠 먹기 때문이다. 추석 차례상은 가장 아름다운 것의 결정체인 동시에 가족 사이의 갈등과 상처의 결정체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추석 차례상이 허례허식과 갈등의 결정체가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엄청난 음식의 양, 그리고 성별과 시부모-며느리 사이의 위계질서 때문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차례 음식이 화려해야 된다는 기록은 문헌 어디에도 없다. 한국 유교문화의 본산인 성균관 박광영 의례부장도 2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차례라는 말 자체가 기본적인 음식으로 간소하게 예를 표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한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같은 것은 문헌상에 근거가 없으며, 그저 밥, 술, 안주용 고기, 나물, 과일만 있으면 되며, 종류 별로 2가지 이상을 갖출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박광영 부장은 차례 음식의 간소화를 통해 시부모-며느리 사이의 갈등을 유발시키는 요인 중 하나는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한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2014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통대로라면 남자가 차례 음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교익씨는 ‘조선시대 때 제사음식은 다 남자가 만들었다. 대신 차례에 여자들은 빠졌다. 그런데 지금은 명절 고생은 여자들이 다 하고 남자들은 차례상 앞에서 생색만 내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금도 마을 제사 등 전통적인 모습을 많이 보존하고 있는 의례에서 남성들이 의례 음식의 장만에서 뒤처리까지 다 하는 것을 보면 황교익씨의 주장은 매우 일리가 있다.

필자가 아는 한 무당은 “굿이 죽은 사람을 위하는 기능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산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차례상은 어떨까? 차례상이 돌아가신 조상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이 아닌 산 사람들의 섭섭함을 풀기 위한 것이 되고, 허례허식과 갈등의 결정체가 된 것을 보는 조상들의 마음은 어떨까? ‘너희들의 정성이 갸륵하구나!’라고 할까? 아니면, ‘너희들 마음 섭섭하지 않으려고 싸움박질 하면서 만든 차례상 따위 필요없으니, 사이좋게나 지내! 이 이기적인 것들아!’라고 호통을 칠까?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들의 진심이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까지 돌봐주신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객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자식과 며느리, 사위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다보니 어머님들은 아픈 줄도 모르고 밤새 추석 음식을 만든다. 그리고 그 엄청난 양의 음식이 차례상을 핑계로 만들어진다. 막히는 길에서 고생하지 않을까 아버지들은 동구 밖까지 나와서 학수고대 자식들이 오길 기다린다. 그리고 막히는 길 위에서, 붐비는 기차 안에서 자식들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각종 스트레스에 시달린 몸을 이끌고, 명절에 부모님 뵙겠다는 마음으로 내려간다. 그 진심만 어우러진 차례상이 빨리 자리 잡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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