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
[칼럼]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0.0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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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1871년(고종 8) 음력 3월 20일, 흥선대원군이 전국에 있는 47개소의 서원을 제외한 나머지 서원을 모두 없애라는 명령을 내린다.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린 이유는 너무 많이 세워진 서원들, 그리고 그곳에 쌓인 오랜 적폐(積弊)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원은 우리나라의 선현(先賢, 옛날의 어질고 사리에 밝은 사람, 보통 대유학자들이나 스승을 일컫는다)을 배향하고 유생들을 가르치던 조선의 대표적인 사학교육기관이다. 1543(중종 38)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설립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 그 효시이며, 그 뒤 풍기군수로 있던 이황이 조정에 사액(賜額, 임금이 사당, 서원, 전각의 문 등 이름을 지어서 새긴 현판을 내리던 행위)과 전토(田土)를 주도록 건의함에 따라, 1550(명종 5)년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액(額)을 내린 것이 사액서원(賜額書院)의 시초라는 것은 유명하다. 초기의 서원은 인재 양성과 선현 배향, 유교적 향촌 질서 유지 등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했다.

이랬던 서원이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여러 가지 폐단을 드러내게 된다. 우선 서원은 군역(軍役) 회피를 위한 온상이 돼버렸다. 조선 후기에 들어 권력을 가진 사람이 서원에서 공부를 하게 되면 군역을 면제받는다는 것을 알고 서원에 들어가서 한참동안 나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또한 서원에 들어가는 유생에게는 세금이 면제된다는 것을 알고 식솔들을 거느리고 들어가거나, 서원 자체적으로도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또한 서원에 같은 선현이 배향된 사원이 여러 개 지어지거나,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사원을 짓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것은 서원이 세금과 군역을 면제받는다는 점에서 국가적으로 큰 손해였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한 폐단은 영조 대에도 있었고, 이로 인해 이러한 서원을 정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영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1727년(영조 3년) 음력 12월 11일에 삼남에 어사를 파견해 증축한 서원을 조사하고 한 사람에 대해서도 여러 개 첩설한 서원에 대해서 모두 훼철하라고 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서원이 혈연·지연 관계나 학벌·사제·당파 관계 등과 연결되어 많은 폐단을 남겼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같이 서원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순기능보다는 폐단이 더 큰 것을 두고 보지 못했던 흥선대원군은 서원철폐령을 내렸다. 흥선대원군의 의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서원철폐에 강력하게 반발했던 유생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원철폐령이 내려지자, 전국의 유림(儒林)들이 서원철폐령을 취소하라고 요구하면서 단체로 한양으로 올라와서 집회를 열었다. 이때마다 대원군은 유림들의 집회를 강제 진압하고, 유림들을 노량진 밖으로 축출해, 유학자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유림이나 유생들의 단체 행동과 건의가 국가 정책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조선시대에 흥선대원군이 이것을 강경 진압한다는 것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을 지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선대원군은 강경 진압을 강행한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것은 서원과 조선이 가지고 있는 사상적 배경이었다. 조선은 성리학을 국가 운영의 사상적 배경으로 삼는 나라였고, 서원은 성리학의 이상이 실천되고, 성리학을 가르치며, 각종 의례를 통해 성리학의 대가들을 기억되는 장소였다. 조선의 실권자가 서원을 철폐한다는 것은 성리학적 이상 국가 구현을 위해서 서원이 제 구실을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성리학의 성지(聖地)를 없애더라도 제대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또한 전제군주 국가인 조선에서 선왕(先王)이 친히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을 친필로 써서 현판을 만든 서원을 없앤다는 것은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서원들의 일부마저도 없앤 것이다.

조선시대에 서원을 철폐한 것은 지금으로 치면 사립대학교를 정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일이 올해 ‘대학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득보다 실이 많다면 국가 차원에서 사립대학교를 정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교육이 백년지대계이며, 정부와 학교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일인 만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올해 있었던 대학구조개혁은 소위 ‘학령인구가 줄어드는 것에 대비해야한다’는 이유로 시작됐다. 그런데 과거 정권에서 장기적 안목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대학 개설을 허가한 것에 대한 반성은 하나도 없다.(심지어 현 정권과 같은 정권에 일어났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고질적 병폐인 학력 인플레이션, 학벌과 학력중심사회에 대한 근본적 개혁에 대한 고민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논란이 많은 대학구조개혁을 강행한 뒤, 대학이 부족하면 다시 대학 개설을 마구 허가할 것인가?

그리고 이번 대학구조개혁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학교의 졸업생은 나쁜 대학을 나왔다는 ‘낙인’에 찍힐지도 모른다. 또한 수도권 대학에 비해 지방대가 여러 가지로 불리한 평가였다는 지적도 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하고 검토한 후 정책을 실시해야 하는 것이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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