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삼국지인물전> 외 5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 “나는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웠는데 그것이 내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것을 한 사람의 생각일 뿐이라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어차피 한국사는 ‘시험용’이므로 차라리 한 종의 교과서로 배우는 게 나을 수도 있고, 한 종이든 여러 종이든 살아가면서 그 교과서의 내용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한테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나 ‘국정화가 되었을 때 야기될 가능성이 있는 우려’에 대해 말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내용만 다를 뿐, 꽉 막혀 버린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들이 행세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방면에 통달한 사람이 대표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내가 그거 해 봐서 아는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던가. 내 경험담 하나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집의 딸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이렇게 물어 왔다.

“너 누구 딸?”

“아빠 딸.”

집사람은 이러는 나를 보고 픽픽 웃는다.

“으이구, 애들 세뇌를 시키는구먼.”

“하하. 이런 건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켜야 돼. 메롱.”

이제 아이들도 다 커서 ‘엄마와 아빠 딸’ 이라는 걸 알고, 내가 누구 딸이냐고 물어본 것도 자기네를 귀여워해서 그러는 것인 줄 안다.

“이제는 엄마 딸이라고 말할 거야. 호호호.”

‘흠. 그렇단 말이지.’ 평상시에 기습적으로 물어 봤다.

“너 누구 딸?”

“아빠 딸, 아, 아니 어 엄마 딸.”

“으하하하하.”

“아, 엄마 딸이라고 해야 하는데. 호호호.”

“네가 십 년을 넘게 아빠 딸이라고 했는데 그게 쉽게 바뀔 거 같으냐? 하하."

‘내 경험’상, 무언가가 습관으로 굳어지면 자신은 그게 습관인지도 모르고, 호불호를 느낄 겨를도 없이 평상시에 그 습관이 나온다. 나중엔 그것이 자신의 본성인 줄 착각하기도 한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사람의 생리가 그렇다는 말이다.

국정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들어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려 되는 것은 바로 부지불식간에 학생들의 머리에 ‘한 가지’의 생각이 자리 잡아 그것이 습관이 되어 버려서 나중에 다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렇게 안 배웠는데요.’ 하면서 자기가 배운 것, 자기가 경험한 것만 옳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논란이 되는 ‘좌편향’, ‘친일’, ‘독재’, 즉 역사에 대한 ‘해석’의 문제와는 별개로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하고 사는, 또는 살아야 할 학생들한테 한 가지만 가르치겠다는 건, 모든 걸 떠나 ‘무식한 짓’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경험’상, 국정교과서를 찬성하거나 밀어붙이는 사람들은 이처럼 무식하다. 여기에서 무식하다는 건 반드시 가방끈의 길이나 읽은 책의 양을 염두에 둔 건 아니라는 걸 설명해야 할 정도로 무식하다. 내 경험이 전부인 줄 알고 떠드는 것만큼 무식해 보이는 짓은 그리 흔하지 않다.

“너 누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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