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흔히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한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기록의 대상이 되는 왕조를 무너뜨린 사람들이 수행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후삼국시대를 통일한 고려 때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저술됐고, 고려를 무너뜨리고 생긴 조선 왕조 초에 『고려사(高麗史)』가 저술됐다. 특히 선대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기술해야 현재의 집권층이 정통성을 인정받기 때문에 선대 역사의 기록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며, 끊임없이 교차 확인을 해야 된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매우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례가 등장한다.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갔다. 임금이 유관(柳觀)에게 《고려사(高麗史)》의 교정하는 일을 물으니, 관이 대답하기를,

“역사(歷史)란 만세의 귀감(龜鑑)이 되는 것이온데, 전에 만든 《고려사》에는 재이(災異)에 대한 것을 모두 쓰지 아니하였으므로, 지금은 모두 이를 기록하기로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모든 선과 악을 다 기록하는 것은 뒤의 사람에게 경계하는 것인데, 어찌 재이라 하여 이를 기록하지 아니하랴.”

하였다. [『세종실록』 7권, 세종 2(1420)년 2월 23일 1번째 기사]

이 기록에서 세종은 재이, 즉 재해에 관한 것이더라도 후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모두 꼼꼼하게 기록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비록 당대의 왕조가 무너뜨린 선대 왕조라고 하더라도, 후세를 위해서는 공정하고 꼼꼼하게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고려사』를 저술하는 과정에서 세종의 역사 기록에 대한 관점이 두드러지는 부분이 아래의 『세종실록』 기록에서 나타난다.

오늘 사필(史筆)을 잡는 자가 이에 성인이 취하고 버리신 본지를 엿보지 못할 바엔 다만 마땅히 사실에 의거하여 바르게 기록하면, 찬미하고 비난할 것이 스스로 나타나서 족히 후세에 전하고 신빙할 수 있을 것이니, 반드시 전대(前代)의 임금을 위하여 그 과실을 엄폐하려고 경솔히 후일에 와서 고쳐서 그 사실을 인멸케 할 것은 없는 것이다. [『세종실록』 22권, 세종 5(1423)년 12월 29일(병자) 3번째 기사]

이 기록을 자세히 풀면,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성인을 본받아서 역사를 기록하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사실 그대로 역사를 기록해서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라는 내용이었다. 비록 본인들이 무너뜨린 왕조라고 하더라도 역사의 기록은 후세에게 전하고 교훈을 주고자 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최소한 사실 그대로라도 적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국정의 거대한 블랙홀이 되고 있다. 과거의 사실을 기록해 후손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하는 점에서 국정화를 찬성하는 측이나 반대하는 측이나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멸망시킨 왕조에 대한 기록마저도 객관적이고 사실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주장은 세종대왕 시절에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물며 유신과 5.16 군사 쿠데타에 대해 ‘바로잡겠다.’라는 생각을 가진 대통령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면, 교과서가 출간되지 않았더라도 그 내용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미 교학사 교과서에서 보여준 사례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일제강점기에 매국 행위를 어떻게 왜곡할지도 명약관화 할 것이다.

역사는 기록부터 정확하게 하라고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잘못된 사실을 기록한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발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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