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문연 “일제 강점기에 애국기 헌납 주도한 친일파” 주장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씨 평전에 대한 광고 <사진=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민족운동가 김용주인가 친일파 가네다 류슈인가
민족문제연구소 “김용주, 명백한 친일반민족행위자”
김무성 의원실 “모든 것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투데이신문 임이랑 기자】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씨(이하 존칭 생략)의 친일행적과 이에 따른 근거 자료가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기 김용주의 주요 활동무대였던 포항 일대(당시 영일군)에서는 김용주가 애국기(愛國機) 헌납운동에 앞장섰다는 증언이 있었지만 구체적인 증거와 관련 사료가 없었기에 그저 설(說)에만 그쳤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이하 민문연)는 일제의 민족 말살 통치가 강화되던 1940년에 발행된 동아일보와 매일신보 등에 기재된 김용주의 친일 행적에 대한 기사 내용 등을 공개함으로써 그의 친일 활동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김무성 대표 “부친은 일제의 요시찰 인물”

해방 70돌을 맞은 지난 8월 15일 이성춘‧김현진 공저로 발간된 김용주의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이 출간됐다.

출판사는 <강을 건너는 산>의 주인공인 김용주에 대해 대한민국 성장의 밑거름을 마련한 숨은 일꾼이자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민족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 소리 없이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온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김용주가 3‧1운동 정신을 담은 ‘삼일상회’를 개업해 극일(剋日)의 길을 걸었고,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던 1945년 조선총독부는 미군이 조선에 상륙하게 되면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이 내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판단 아래 총살 대상자들을 선정했는데 김용주는 포항 지역에서 총살 대상 1호였다고 주장했다. 오해와 왜곡 속에 감춰진 애국자라는 것.

아들인 김무성 대표도 그동안 각종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부친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김 대표는 부친의 친일 행위 논란과 관련해 지난 2013년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누구든 상해나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국내에 남아 가정을 이뤘을 것”이라며 “그러면 창씨개명을 했을 것이고 일정한 사회생활을 했을 것이다”면서 부친은 자발적으로 친일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김 대표는 “부친께서는 은행원 신분으로 독서회를 만들고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은행에서 내침을 당했다”며 “몸도 약한 분이 헌병대‧경찰서에 수시로 끌려가는 등 요시찰 인물로 찍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무시하거나 관용으로 대했지만 이제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거나 고소 등 조치를 할 계획이다”며 부친의 친일파 논란에 대해 강경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지난 25일에도 김 대표는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오찬 및 티타임을 가지며 “우리 아버지는 친일 인명사전에 없다”며 주장했다.

그는 “부친은 3·1운동을 본따 ‘삼일상회’라는 회사를 만들었고 한국인들을 위해 학교를 세웠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그 학교 졸업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부친은 비공식적으로 독립군에 몰래 활동자금도 주고 그랬다”며 다시 한 번 부친의 ‘친일’논란을 일축했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씨 평전에 대한 광고 <사진=민족문제연구소 제공>

민문연 “김용주는 명백한 친일파”

하지만 김용주의 친일 행적이 담긴 일제 시기의 신문 등 1차 문헌자료가 공개돼 김용주가 애국자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먼저 민문연은 “김용주가 경상북도 도회의원으로서 일제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김용주가 도회의원이던 1940년 2월 23일 제12회 경상북도 도회에서 “설치를 고려하는 국체명징관(황도정신의 보급이라는 미명 아래 조선인들의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를 촉진한다는 목적으로 세운 건물) 내에는 내선관계의 역사적 연원을 증명하는 자료를 진열해 내선일체의 정신적 심도를 올려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동아일보 기사를 제시했다.

이 뿐만 아니라 김용주는 다음날 24일까지 이어진 경상북도 도회에서 “충량한 황국신민으로서 내선일체의 이상에 향하고 있으므로 옛날과 같이 불온사상을 가진 자는 한명도 있지 않아 반도교육에 일대 전환할 시기인줄 생각한다”고 발언한 내용이 1940년 2월 26일 매일신보 석간 3면에 실려 있다.

김용주는 1943년 9월 8일 아사히신문(朝日新聞)에 “대망의 징병제 실시, 지금이야말로 정벌하라, 반도의 청소년들이여”라는 제목의 징병제실시 감사 결의 선양 광고를 게재하며 일제의 조선 청년 징병에 대한 찬양을 하기도 했다.

또 김용주는 일제의 ‘애국기(愛國機)’ 헌납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 민문연은 그 근거로 1944년 7월 9일 발행된 아사히신문에 게재된 애국기 헌납 선동 기명 광고를 근거로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를 제시했다. 해당 광고에는 그의 일본 이름인 金田龍周(김전용주), 가네다 류슈가 뚜렷하게 적혀있다.

김용주의 이러한 활약(?)으로 영일군은 1942년 2월부터 1945년 2월까지 약 3년 동안 일제에 14대의 애국기를 헌납했다.

민문연은 그의 이러한 친일행위에 대해 “김용주의 친일 행위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닌 매우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출간할 당시 재원과 자료 부족으로 지방의 친일반민족행위를 전면 조사할 수 없었다”며 “김용주가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김 대표는 부친의 친일행적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그간 행태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결전은 하늘이다! 보내자 비행기를> 김용주씨가 아사히신문에 기재한 광고 <사진=민족문제연구소 제공>

“김용주 평전, 역사 급조한 기획 상품”

민문연은 김용주의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이 심각한 역사 왜곡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문연은 “이 책은 말이 평전이지 김씨의 회고록인 <나의 회고록 풍운시대 80년>의 요약판에 지나지 않는다”며 “역사를 변조할 목적으로 급조한 기획 상품이라 본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민문연은 평전 <강을 건너는 산>의 문제점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평전 137쪽을 살펴보면 “때마침 실시된 경상북도 도회의원선거에 출마한 것이다. (중략) 나는 당선했다. 때는 1935년, 내 나이 불과 31세, 당시로서는 국내 최연소 도회의원이었다”고 기술했다. 이 같은 내용에 대해 민문연은 “도회 의원에 처음 당선된 것은 1935년이 아닌 1937년이며 나이도 31세가 아닌 33세다. 당시 최연소 당선자는 황해도 도회의원인 29세 이흥엽이다”고 주장했다.

평전 154쪽을 살펴보면 일본 복도(福島) 대위의 발언이 나온다. 복도대위는 “미군이 조선지역에 폭격을 시작하면 곧 전토에 계엄령이 발포되는데, 계엄이 발포만 되면 즉시 지역 내에 거주하는 특징 조선인 8명을 체포 총살하라는 지시가 왔다. 그 명단 중 제 1호가 바로 포항의 김용주”라고 발언한 것으로 서술돼 있다.

이에 대해 민문연은 “1944년 말은 일제의 패전이 가시화되고 있던 상황에서 조선인 유력자 등을 살해할 계획도 여력도 없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근거 없는 사실로 김씨를 과장하고 미화했다고 지적했다.

민문연은 “해당 평전은 허다한 사실관계의 오류와 근거 없는 황당한 주장으로 객관성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연구소의 분석 결과”라며 “친일을 감추고 애국으로 미화하며 친일파를 비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힌 민문연은 “유력한 대권 후보에 의해 의도적으로 행해진 선대의 경력 세탁”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 대표는 친일 혐의 제기를 특정세력의 정치공작으로 몰아붙이며 선친은 애국자라고 강변하고 있다”며 “김용주에게 애국은 일본을 향한 애국이고 충성이라면 천황을 향한 충성일 뿐이다”고 일침을 가했다.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뉴시스

김무성 측, 종합적‧객관적 판단 필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실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민문연에 대해 다양한 평들이 있지 않나”라며 “민문연의 소장과 구성원들의 경력은 이미 논란이 됐기 때문에 그쪽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진 않는다”며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이 관계자는 “민문연이 자료라 주장하는 것 대부분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와 아사히신문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당시 민족지라는 동아일보를 살펴보면 부친께서 조선인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신간회 활동도 하며 민족운동을 한 기록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도의회 의원이라서 친일파라고 주장하는데 당시 도의회에서도 관선과 민선이 있었다”며 “민선 도의회 의원으로서 일제가 면화장려 정책을 펼쳤을 때도 어려운 조선인들은 면화재배가 힘드니 면제해줬던 것도 있고 조선총독부를 상대로 싸운 기록들이 다 있다”며 민문연의 주장을 반박했다.

마지막으로 이 관계자는 “70~80년이 지나 한 사람의 일생을 판단할 때는 논란이 되는 부분들을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역사학자인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아버지의 일을 가지고 아들을 대해선 안 된다고 생각 한다”며 “그러나 적어도 공인일 경우 아버지의 과거 흔적에 대해선 친일문제에 대해 명확히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차기 대권후보로서 집권여당의 대표인 김무성 의원이 국민 앞에 친일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확실히 드러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대단히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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