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김재욱 작가

   
▲ 김재욱 작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그의 책을 펼치면 산책길이 나타난다.

흩날리는 꽃은 한시(漢詩)요, 살랑이는 바람은 해설이다. 그 길 위를 걷고 있노라면 진한 꽃향기가 온몸을 에워싼다. 게다가 한 군데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곳곳에 책갈피를 묻어두고 싶은 마음이 자꾸 일렁인다.

최근 출간된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에 대한 느낌이다. 목마른 감성이 우물을 찾는 가을, 이 책은 우리의 딱딱한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한다. 더불어 삶의 지혜가 담긴 한시와 명쾌한 해설은 공감을 일으켜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외수 작가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세상은 참 맛대가리 없이 돌아간다. 이 가을 읽을 만한 책”이라며 강력추천했다.

한시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허무는 이 책은 한문학을 전공한 김재욱(43) 작가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앞서 그는 <맹자 제멋대로 읽기>, <한문학 강의노트>, <역사 어제이면서 오늘이다> 등을 출간했다. 지난 2013년에는 페이스북에 삼국지 인물과 우리나라 주요 인물을 비교한 ‘즉흥적 인물평’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삼국지 인물전>을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현재 고려대 한문학과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와 집필에 힘쓰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김재욱 작가는 페이스북 친구만 4300여 명에 달해 이른바 ‘페북 스타’로 통한다. 그가 올리는 글에 많은 팬이 댓글과 ‘좋아요’로 화답한다.

지난달 8일 서울 방이역 근처의 한 카페에서 김재욱 작가를 만났다. 그는 대화하면서 마음 울리는 말을 쏟아내었다. 이번 인터뷰 기사는 페이스북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다.

   
▲ 김재욱 작가 ⓒ투데이신문

Part 1. 기자가 묻고 김재욱이 답하다

이주희 기자(이하 이): 한시 분야를 연구하고, 이런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김재욱 작가(이하 김): 어떠한 특별한 계기는 없는 것 같다. 이쪽 길을 가는 연구자로서, 연구자라고 하기에도 부끄럽다. 논문을 많이 안 써서…(웃음). 한시 분야를 전공했기에 이 길을 가는 것이다. 그래서 “왜” 라는 질문은 필요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쓴 계기는 있을 수 있겠다. 한시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책으로 내야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글을 쓰게 되고 출판사와 얘기가 잘 돼서 출간하게 됐다.

이: 한시의 매력이 무엇인가.

김: 논문을 쓰기 위해 한시를 보게 됐는데 참 어렵더라. 한시는 한문보다 더 암호 같은 부분이 있다. 어렵긴 하지만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대학원에서 기본 과목으로 한시를 조금 배워서 알고 있었지만 전공할 정도는 아니었다. 논문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공이 된 것이다.

이: “촛불에도 마음이 있어 이별을 아쉬워하여 사람 대신 날 밝을 때까지 눈물 흘리는구나”와 같이 한시에서 나오는 비유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김: 한시는 정말 알아가야 할 게 많아서 재미있다. 사실 그게 전부다. 나도 모르는 부분이 많다(웃음). 중국 사람들도 두보 등이 지은 시를 시간이 흐른 지금, 그가 무슨 의도로 썼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자국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후대에 “이랬을 거야, 저랬을 거야”하고 주석이 붙는 것이다. (한시는) 정말 끊임없이 연구해도 답이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볼 수 있는 게 많다. 어찌 보면 이게 한시의 매력일 수도 있겠다.

이: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의 집필한 기간은 얼마였고 과정은 어땠는지 알고 싶다.

김: 이 책은 준비 기간까지 포함해 6개월 정도 걸렸다. 집필 기간까지 다 생각하고 자료 세팅 마치는 게 석 달에서 넉 달 정도 소요됐다. 원고를 쓴 시간만 따지면 두 달가량이다.

이: 어찌 보면 글을 참 빨리 쓰시는 것 같다.

김: 빨리 쓰는, 이른바 속필(速筆)이 다 좋지는 않은 듯하다. 스트레스도 많고 무엇보다 깊이 있는 글을 쓰긴 어렵다. 나 역시 그 문제를 알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도 의식적으로 속필을 한다. 틀리는 게 나오면 나중에 고치면 되니까. 일단 빨리 쓰고 본다. 한편으로는 글을 쓰는 사람은 속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나 글쟁이한테 많은 자격이 요구되는데 그중 하나가 속필이라고 본다. 다만, 이것이 자격을 규정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이: 개인적으로 작가님의 글은 쉽게 읽히면서도 자연스럽고 참 재미있더라. 이 때문에 작가님이 ‘타고난 글쟁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글을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쓰시는 줄 알았다.

김: 아이고, 그런 말씀 해주셔서 감사하다(웃음). 예전에 대학에서 글쓰기 과목 강의를 할 때 ‘글쓰기의 전략’이라는 책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있더라. “세상에 스트레스 안 받고 글 쓰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나는 엄청나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한 줄을 쓸 때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물론 타고나는 건 있다고 생각한다. 글재주는 연습하면 늘지만 센스나 감각은 연습해도 안 되는 듯하다. 진짜 죽어도 안 되는 것 같다(머리를 긁적이며). 감각 있는 글을 보면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글을 쓰다가 단어를 빼먹기도 하고 조사를 틀리게 쓸 때도 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서술의 줄기를 놓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고하는 사람이 카피를 쓸 때, 기자가 머리기사를 뽑을 때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글의 핵심을 문학 용어로 자안(字眼)이라고 한다. 자안은 한 글자 혹은 문장이 될 수도 있는데, 자안을 어디에 넣어야 (독자가) 반응할지 이런 문제를 갖고 온갖 고민을 한다. 어쨌든 이 책을 쓸 때 한 글자, 한 글자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만약 독자들이 좋게 봐주신다면 그건 내 재주가 아니라 노력을 잘 봐주셔서 그런 것이다.

이: 한시 자체로만 봤을 때는 몰랐던 느낌이나 상황, 맥락, 감정을 작가님의 해설을 통해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해설을 쓰면서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김: 한시를 내세웠지만, 현재의 일에 주안점을 뒀다. 이 책에서 직접 언급은 안 했지만 전 국민을 아픔에 빠트린 세월호 참사, 정치인의 부조리한 모습들…. 독자들이 이 책을 보며 “나한테 이런 경우가 있었지”하면서 공감하는 등 자신의 삶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셨으면 한다. 꼭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엄마로서, 직장을 가진 사람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고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셨으면 한다. 한시를 내세웠지만 어찌 보면 한시는 부가적인 것이다.

   
 

이: 앞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작가님은 “글 한 줄, 한 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담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작가님에게 글과 책은 어떤 의미인가.

김: 흠… 어려운 질문이다.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다. 나한테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예전에는 사회 부조리에 대해 치열하게 쓰고, 그것으로 사회에 이바지하는 게 좋은 의미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조금 하긴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을 안 하게 됐다.

내가 아무리 글에 의미를 담는다고 해도 독자들이 “이게 뭐야?”하면 끝인 거다. 의미라는 건 우리(작가)가 부여한다고 해서 부여되는 게 아니다. 결국은 그 글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독자다. 그렇다고 작가가 독자의 기호에 맞춰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에 수록된 한시 중에서 작가님의 마음을 움직인 시는 무엇인가.

김: 모든 시가 다 마음을 움직였다. 한시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꼽은 것이다. 문필가나 철학가에게 화두가 되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나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또 미지의 영역이기에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 목차 배열할 때 지금 이 책처럼 사랑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왜냐하면 그걸 알고 싶었으니까.

기본적으로 내 성격 자체가 어둡고 내성적이라서 남들한테 속 얘기를 잘 안 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나라 시인 이하의 시와 같은 어두운 작품을 좋아한다.

“남산은 왜 이다지도 슬픈가.
빈 풀밭에 흩뿌리는 음산한 비
깊은 밤 가을날의 장안
바람 앞에 몇 사람이나 늙어 가는가.
흐릿한 황혼의 길
푸른 상수리 한들거리는 길
중천에 달뜨자 나무 그림자 없고
온 산엔 오직 하얀 새벽빛뿐
도깨비불은 새 사람을 맞이하고
깊은 무덤 속엔 반딧불 어지럽다.”

이하라는 사람은 28살에 요절했다. 이 사람의 시는 어둡다. 불교 쪽 논문을 쓰다가 이 시를 보게 됐는데 분위기가 음산했다. 그래서 나한테 와 닿더라. 이 시를 사람들이 읽고선 공감하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이: 글을 쓰면서 감정 기복도 심하셨을 것 같은데.

김: 특히 <삼국지 인물전>을 쓸 때 그랬다. 안희정 편은 울고 나서 쓰고 표창원 편은 울면서 썼다. 내가 그 사람이 돼야 한다. 그게 글쟁이라고 생각한다. 내 혼이 나가야 다른 사람의 혼이 들어오지 않겠나. 밝은 글을 쓸 때는 의도적으로 밝은 분위기에서 쓴다. 예를 들어 사랑이나 자연, 이런 밝은 글을 쓸 때는 밤에 안 썼다.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이미지 트레이닝과 같은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 사랑 관련 파트를 쓸 때는 야들야들한 노래를 들었다. 사회 이야기를 쓸 때는, 록을 좋아하는데 록밴드 레드 제플린이나 주다스 프리스트의 음악을 들었다. 이처럼 글을 쓸 때는 음악의 도움도 받는다. 감정이입이 돼야 하니까…

이: 한시 연구와 관련해 존경할만한 분이 있다면 어떤 분인가.

김: 존경하는 연구자는 정말 많다. 다만, 외곽 분야인 한시를 대중이 이만큼이라도 알게 된 것은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정민 선생님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분에 대한 호불호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어려운 한시를 대중이 알 수 있게 해주신 분은 정민 선생님이다. 그분이 한시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 혹시 정치하실 생각은 없나.

김: 그럴 만한 사람도 안 되고 그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어릴 때 “대통령이 꿈”이라고 재미삼아 얘기한 적은 있었지만(웃음). 나한테 정치를 권하는 분도 거의 안 계시고 <삼국지 인물전>을 냈을 당시 나를 아껴주시는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실 때도 웃어넘겼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치할 수 있는 깜냥이 안 된다.

이: 끝으로 페이스북 친구들과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김: 페이스북에서는 내 나름대로 운영방침이 있다 보니 나를 까칠하다고 보시는 분들이 많다. 실제로 그렇게 사람들을 대한다. 그런데도 이해해주고 믿어주시는 페이스북 친구분들, 참 감사하다. 김재욱이라는 작가가 사람들을 속이는 글을 쓰지는 않는다고 믿어주시는 것 같다. 그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내 책을 읽어주시는 독자들께도 감사드린다. 염치없이 드리는 말씀인데, 나의 어떤 면이 마음에 들지 않으실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에게 바라는 부분도 있으실 것이다.

작가의 생명이 끝나는 건 독자의 기호에 맞추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러고 싶지 않다. 내 이름이 조금 알려진 게 <삼국지 인물전> 때문이라 그런지 많은 분이 내게 정치적인 얘기를 많이 하거나,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메시지를 쓰길 원하신다. 나 스스로 장점이 무엇인지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내 장점이 ‘정치평론’ 쪽에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글쓰기 수업을 받아본 적 없고 나 스스로 재능도 많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오래 읽힐 수 있는 무협지를 쓰는 게 나의 꿈이다. 한 번도 써본 적은 없지만 그게 내 꿈이다. 끝으로 나를 ‘자기 전공 분야를 대중들한테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 김재욱 작가 ⓒ투데이신문

Part 2. 페이스북 친구들이 묻고 김재욱이 답하다

※ 인터뷰에 앞서 김재욱 작가의 페이스북 친구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여러분의 애정 어린 질문이 곳곳에 피어있을 것이다. 김 작가는 어떤 물음에도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이윤정]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제목이 눈과 가슴에 와 닿는다. 제목을 누가 지었는지 궁금하다.

: 일단 내가 지은 건 아니다(웃음). 이 책이 우수출판콘텐츠인데 출판사에서 이 공모에 응모하면서 책 제목을 이렇게 정했더라. 원래 제목은 <한시에 마음 베이다>였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 책 표지를 골라달라고 사진을 올렸다. 그때 림태주 선생님(시인)이 ‘마음 베이다’사이에 ‘을’을 넣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림태주 선생님의 댓글을 본 다른 분들도 “나도 그 말 하려고 했는데”라는 식으로 댓글을 달더라. 어딘가 모르게 비는 느낌, 단절된 느낌이 있었는데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로 해 놓으니 뭔가 안정되는 것 같았다.

[박신정] 책에 실린 한시의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 내가 좋아하는 시를 기준으로 삼았다. 일상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것. 나는 목은 이색의 영물시(사물을 주제로 쓴 한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래서 그런 시도 넣었다.

[Min Jin] 작가님이 한시의 매력에 푹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독자)가 이 책의 매력에 어떻게 빠져야 할까.

: 매력, 이게 굉장히 어려운 얘기다. 한시는 어렵다. 우선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처음에는 한자를 무시해야 한시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고 말이다. 번역을 보고 일단 무슨 말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렇게 읽다 보면 와 닿는 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시엔 부드럽게 감성을 자극하는 것도 있고, 비분강개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것도 있다. 실제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그것을 두고 매력에 빠졌다고 할 수 있겠다.

옛날 사람들이 한시를 비평해 놓은 걸 보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평론과 다르다. 일반인이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다. “이 시는 시원하면서도 편안하다”라고 하는 게 끝이다. 왜 시원하고 왜 편안한지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도 번역을 읽어보고 “아주 좋네, 마음을 움직이네”라는 생각이 들면 이미 그 매력에 빠진 것이다. 참고삼아 한문을 같이 써 놨지만 우선 이걸 버려야 한다. 그래야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김성보(Sung Bo Kim)] 한시를 짓는 법 혹은 읽는 방법을 가르치는 모임을 만들 계획은 있나.

: 한시라는 장르 자체가 쉬운 분야가 아니다. 읽기도 어렵고, 짓기는 더욱 어렵다.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한시를 짓는 모임도 있긴 하나 활발하진 않은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예전에 잠깐 배우다 말았다. 게다가 한시는 한자를 단순히 나열해서 글자 수를 맞추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글자마다 가지고 있는 성조(聲調)를 알고 그것을 엄격한 규칙에 따라 배열해야 한다. 그래서 배우기가 어렵다. 전공자가 아니면 더 어렵다고 본다. 물론 수강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모임을 구성한 뒤 장소를 마련해 주시고, 최소한의 차비를 주신다면(웃음).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윤중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도 비춰 볼 수 있는 한시가 있다면.

: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작품이 있다. 조선의 이식이라는 분이 지은 시다.

늙은 할멈 베 한 필을
잿물에 빨아서 겨울 볕에 말린다.
무릎 잡고 사립문에 쪼그려 앉았는데
살이랑 피부는 얼어서 찢어질 듯
몸에 걸칠 옷 마름질하면
아침저녁으로 끝낼 수 있겠지 했건만
얼마 안 가 아전이 들이닥쳐선
(중략)
아전은 베를 말아 돌아간다.
할멈은 가슴 치며 하늘 향해 부르짖는다.
“올겨울 얼어 죽는 거야 불쌍할 거 없지만
이토록 나라에서 못살게 굴 줄이야.
그 옛날 태평세월 이 눈으로 봤었는데…….”

관리들이 한 할머니의 집에 들이닥쳐서 베를 빼앗아 간다. 자신들도 ‘을’인 주제에 가장 하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갑질을 한다. 이때 가장 위에 있는 기득권계층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관리를 닦달하면 된다. 을들이 더 약한 을을 혼낸다. 당하는 을들은 맨 위에 있는 갑을 쳐다볼 수 없다. 결국 같은 ‘을’들끼리 서로 아귀다툼하는 것이다.

이게 지금 우리나라 상황과 다를 게 무엇이겠나. 책에 지난 2013년 정부가 세수확보를 위해 폐휴지를 거둬 생계를 유지하는 175만 명 노인들에게 주어졌던 세금혜택을 줄이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비판하는 글을 썼다. 다시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정당명을 가진 모든 정당, 과연 그들이 자기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고 일하고 있나. 자기네들은 약자를 위한다지만 실제로 약자를 위해 일하고 있느냐는 거다. 이 사회의 가장 약자가 누구인가. 노숙자, 홀몸노인, 장애인 등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혜택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세상’ 파트를 쓰면서 하고 싶었던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내 마음을 담았다.

(정치인들은) 서민을 위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노력하고 있으니 잘 봐달라”고 한다. 근데 그러면 안 된다. 왜냐하면 실제로 하는 게 없지 않나. 이 시간에도 사람들은 죽고 있지 않나. 그들은 지금 그냥 우리와 같이 한숨을 쉰다. 한숨을 쉬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한숨을 반영해 실제로 움직여야 한다. 그게 싸움이 되든 뭐가 되든 눈에 보이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윤중만] 작가님이 생각하는 본인은 어떤 사람인가. 작가님이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가.

: 잘 모르겠다. 살아온 것만 갖고 말씀드리면 성격은 내성적인 게 틀림없다. (웃음). 더불어 난 되게 편파적인 사람이다. 호불호가 확실하다. 어떤 식으로든 나와 교감하고 나누면 웬만해선 그 사람을 안 버린다.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어도 끝까지 좋아한다. 마찬가지로 싫어하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안 본다.

사람들은 나보고 이렇게 말하더라. 이른바 진보 진영에 있는 사람들의 편을 들고 진보적인 사람을 좋아하니까 진보적이라고. 보수적이라는 소리도 듣기 싫지만 그런 쪽에 서게 되는 것도 싫다. 물론 편의적으로 나누다 보니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런 말을 듣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만약 지금 진보정당 출신이 대통령을 하고 진보정당이 다수당이 되어서 지금의 여당처럼 한다면 나는 그들을 비판할 것이다. 잘못하는 것에 대해 잘못했다고 얘기할 것이다.

   
▲ 김재욱 작가 ⓒ투데이신문

[유나팜] 세월호 같은 억울한 사건에 대한 한시가 있다면.

: 있다. 그 질문을 해주기를 바랐다. 이건 죄송하면서도 감사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먼저 죄송한 것은 이 책은 한시 교양서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염두에 두고 소개한 작품은 분명 있다.

하나는 ‘제장안주인벽’이라는 시다. 해설 부분을 보면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한 친구가 “돈이 최고야”라고 말하고 다른 친구가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니까 사고 나서 사람이 죽으면 ‘보상금 좀 받겠네’하는 소리를 당당히 하는 거야. 필요하다고 해서 그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 아닌가?”라는 대화가 나온다. 일부 사람들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나라에서 보상도 해준다는데 그만해야지, 지겨워”라고 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썼다. 아마 내 책을 읽는 독자 중에서는 그런 분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또 하나는 조선 중기 문인 최립의 시다.

“세밑 전 새벽 꿈에 나타난 죽은 딸아이
다섯 살까지 살다가 세상 떠난 지 2년.
말 배우고 즐거이 놀 때 얼마나 기뻤던지
(중략)
현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의 죽음은 누가 관장하는가.
뚜렷한 얼굴 모습, 잠깐 새 떠나버려
늙은 아비 베갯머리 눈물이 더디 말라.”

이 시는 세월호 학생들의 부모를 생각하면서 소개했다. 내가 그분들의 마음을 100%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래도 우리는 공감하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 이런 일이 또다시 벌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이 시를 통해 어떤 경로로든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은 똑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 독자들도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을 아셨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글에 다 담을 수 없었지만, 사실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논리가 아니라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의 힘도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비극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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