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션은 화성인이다
[칼럼] 마션은 화성인이다
  • 이원석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1.1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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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석 칼럼니스트
·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

외국 영화의 번역 제목 유감

<마션 The Martian>과 <파더 앤 도터 Fathers and Daughters>를 아실 게다. 둘 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제목이다. 마션(Martian)이라고 하면 뭔가 있어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어사전으로 확인해보면 그저 ‘화성인’일 뿐이다(단어 자체는 ‘화성의’나 ‘화성에서 온’ 등 형용사형으로도 활용된다). 이는 물론 맷 데이먼이 분한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처지를 가리키는 것이다. 주인공은 제 1호 화성인이 되고 만다. 실은 화성에 버려진 것뿐이지만 말이다.

<파더 앤 도터>의 경우에도, 왜 ‘아빠와 딸’ 혹은 ‘아버지와 딸’로 옮기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인지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만일 원어의 복수형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아빠들과 딸들’은 너무 어색할 테니까.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아빠와 딸’로 옮겨도 되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원문 그대로 옮기겠다면, 파더스 앤 도터스로 옮겨야하지 않았을까? 정확하게 원어 그대로 옮기지도 않을 거라면, 왜 어색한 음역을 시도한 것일까?

또한 <닌자 터틀>과 <허큘리스>도 아시리라 믿는다. 이는 작년에 개봉한 영화 제목들이다. 전자의 경우, 이미 오랫동안 ‘닌자 거북이’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거북이 대신에 터틀(turtle)로 음역했다. 우리의 영어 어휘력을 늘려줄 의도가 아니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처사이다. <닌자 거북이>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주목을 끌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게다(물론 거북이들의 사실적인 비주얼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이다).

1990년에 동명으로 나온 영화가 <닌자 거북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나 최근에 리부팅된 SF 영화 <판타스틱 4>는 2005년에 개봉하던 당시의 제목 그대로가 아니던가. 더욱이 <닌자 터틀>의 원제목 자체가 그대로다. 1990년이나 2015년이나 한결같이 Teenage Mutant Ninja Turtles다(1984년에 만화로 처음 등장할 때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닌자 터틀>도 <파더 앤 도터>처럼 정확한 원제목을 옮긴 것도 아니다.

허큘리스의 경우는 더 황당하다. 허큘리스가 누군가 바로 그리스 신화 속의 영웅 헤라클레스가 아니던가. 물론 <허큘리스>의 경우는 이미 동명의 다른 영화가 개봉되었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2014년 연초에 극장에 걸린 레니 할린의 <헤라클레스- 레전드 비긴즈>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드웨인 존슨의 헤라클레스’처럼 주연 배우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헤라클레스와 친구들’처럼 영화의 내용을 담아 풀어쓴 제목으로 옮기면 되지 않았을까?

혹자는 허큘리스가 헤라클레스의 원어라고도 하던데, 황당할 뿐이다. 물론 헤라클레스를 영어로는 허큘리스(Hercules)라고 한다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하나 실상은 Hercules 자체가 그리스어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물론 Heracles도 마찬가지다). 원어 스펠링은 Ἡρακλῆς인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대로 ‘헤라클레스’(Hēraklēs)라고 읽으면 된다. 그러니 외려 ‘허큘리스의 원어가 헤라클레스다’라고 해야 옳다. 그런 의미에서 2005년에 개봉한 로저 영 감독의 <Hercules>를 <헤라클레스>라는 제목으로 소개한 것은 매우 올바른 것이다.

한데 이렇게 이상하게 외국 영화의 제목을 그대로(혹은 더 이상하게 자의적으로 수정해) 음역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이야기다. 국내에는 1957년에 소개된 영화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까지 갈 것도 없다(원제목은 Gone With The Wind이며, 1939년에 공개된 작품이다). 폴 버호벤의 1992년 작품 <Basic Instinct>를 <원초적 본능>으로 옮긴 것을 생각해보라. 요새라면 분명 ‘베이직 인스팅트’로 소개할 것이다.

언어사용과 사회구조의 관계

이렇게 변화된 흐름은 대략 십여 년 어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IMF 이후의 급격한 세계화(라기보다는 미국화)의 급속한 물결을 타고 영어 권력이 급격하게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리라. 요새 청년들에게는 낯설게 들리겠지만, 그 이전에는 (극히 일부 영역을 제외한다면) 취업 면접에 영어 성적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다. 요즈음은 동사무소조차 이름을 주민센터라는 기이한 조어로 바꾸어 부르는 시대가 아닌가.

그러고 보면, 1999년 6월 12일에 개봉된 영화인 <인스팅트>의 원제목이 바로 <Instinct>라는 사실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Basic Instinct>를 <원초적 본능>으로 번역하던 감성이 <Instinct>를 <인스팅트>로 번역하는 감성으로 바뀌는 것은 사회구조가 바뀌는 것을 반영하는 것일 게다. 1999년 6월은 IMF 관리 하에 머무르던 시기(1997. 12. 3-2001. 8. 23)의 한복판이라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외국 영화의 제목을 마구잡이로 음역하는 현상에 대한 나의 아쉬움(이라기보다는 짜증과 분노)을 피력하기는 했지만, 사실 이것은 급격한 사회구조 변동의 일단에 불과하다. 가령 동사무소를 일제히 주민(복지)센터로 개명하기로 한 것도 1999년이다. 그 발단은 1996년에 세계화추진위원회가 내놓은 <민원행정의 세계화 방안>이다. 이미 세계화라는 단어에서부터 드러나듯이 단지 영어단어 하나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흐름 속에 있는 것이다.

‘보그 병신체’ 또한 마찬가지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의 글(보그 병신체에 대한 단상-우리 시대의 패션 언어를 찾아서)로 촉발된 이 비판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문체의 남발이 그저 <보그 코리아> 초대 편집장 이명희(드라마 <스타일>의 주인공 박기자의 모델)와 같은 패션계 여론 선도자들의 영향력 때문이겠는가? 그렇지 않다. 다소 과한 측면이 있지만, 이는 실상 이미 틀어진 사회적 흐름의 선두에 서있음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먼저 우리부터 시작하자

그러므로 영화업계나 패션업계를 질책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다. 그들이 여론을 선도하지만, 그들은 대중의 암묵적 지지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대중이 이를 거부하고 정상적인 언어 사용을 추구한다면,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우리가 잘못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리어 우리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데에서부터 문제 해결이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바로 우리의 내면세계를 반영한다.

가령 영어 발음에 열등감을 가지는 것은 우리 마음이 (이전에도 어느 정도 그런 측면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세계화(실은 미국화)의 물결을 타고 급속하게 영어 식민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막상 쓸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어회화를 공부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또한 누군가 영어나 불어 등 여러 서구권 언어를 구사하면 동경의 대상이 된다. 발음이 좋다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기문의 연설에서 내용보다 발음에 주목한다.

이런 의식 구조를 성찰하고, 나아가 사회 구조를 변혁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슨 진지한 자기 성찰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실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바로 우리의 일상 영역에서부터 질문을 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에게 낯선 단어, 그러니까 마션처럼 이질적인 음역의 단어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 그렇다. 미국인에게는 마션이지만, 우리에게는 화성인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마션을 화성인이라 부를 권리를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