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지난 11월 14일 토요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대규모의 집회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이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이 집회에서 연세가 70이 다 된 농민 한 분이 물대포를 직접 맞고 쓰러지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고, 11월 18일 현재까지도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고 한다.

자칭 ‘보수’라고 하는 정당과 언론, 단체에서는 14일의 집회가 폭력 시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렇게 일부 좌익 집단에 의한 폭력 집회는 공권력에 대한 엄연한 도전이며, 공권력의 입장에서 정당한 법 집행을 한 것이라며 경찰의 집회 진압을 옹호했다. 그리고 공권력의 도전과 피해에 대한 근거로 경찰버스가 부서졌다는 것을 들고 있다. 특히 여당의 국회의원들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의 공권력의 발동과 시위 횟수 등을 예로 들면서 이번 집회에 대한 공권력 사용이 정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프레시안 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경찰은 물대포를 맞는 시민의 상태와 연령대를 애초에 제대로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시위 중 '안전'은 시위대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와 같은 여당과 수구 언론, 단체들의 주장은 이미 많은 반박이 있었기 때문에 본 지면을 통해 다시 같은 반박을 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대신 “역사를 통해 현재를 본다’는 본 칼럼의 취지에 맞게 공권력의 사용이 후세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되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다른 자료가 아닌 한 사건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가 가장 많이 압축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백과사전’을 인용하고자 한다.

4·19혁명 전 수주일 동안 주로 지방도시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이 불법선거 및 자유당과 경찰의 반민주적이고 억압적인 행위에 항의하는 시위를 산발적으로 행했다. 그러나 이승만은 상황의 급박성을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고, 또 그럴 수 있는 능력도 결여하고 있었다. 마산에서의 시위에 대해 이승만은 4월 15일, 그 사건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고무되고 조종된”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이런 사태의 비극에 책임이 있는 “무분별한 사람들”의 죄는 간과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 이승만은 “젊은 청년들”을 폭동으로 유도하고, 선동하는 “정치적 야심가”와 공산주의자들의 선전활동에 대하여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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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에는 서울에서 시위하고 있던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경찰의 비호를 받고 있는 반공청년단의 폭력배들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중략)- 이승만정권이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강력하고 적나라한 폭력을 사용하는 것뿐이었다.

4월 19일 약 3만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교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그 가운데 수천 명이 경무대로 몰려들었다. 경찰은 데모대에 대하여 발포하기 시작했으므로 학생들의 시위는 폭동으로 화하였다. 전국적으로 부산·광주·인천·목포·청주 등과 같은 주요 도시에서 수천명의 학생들이 가세했다. 서울에서만도 자정까지 약 130명이 죽고, 1,000여 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하기 시작한 직후, 우리 나라의 주요 도시에 계엄령이 반포됐다.

위의 인용문은 국가출연 연구기관이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4·19혁명’ 항목을 인용한 것이다. 부정선거를 비롯한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이승만이 매카시즘을 적용하는 모습, 학생들의 시위에 폭력배를 동원하는 것, 집회에 대한 무력 진압 등은 현 정부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리고 ‘경무대로 이동하는 시위대에 대한 발포’ 등은 여당 모 국회의원의 “시위대가 청와대로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모른다”라는 언급, 종편에 출연한 패널이 ‘위수령을 선포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말과 그 궤적이 너무나 비슷하다. 그리고 이 때 일어났던 시위와 공권력 발동은 훗날 ‘4.19 민주혁명’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프랑스 혁명, 3.1 운동, 68 혁명 등 국민들이 현 정부의 잘못에 대하여 비판하고자 시위에 나섰고, 이것을 공권력이 무력을 진압하려고 했던 사례들은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훗날 이러한 사건들은 ‘정부 전복을 기도한 반국가적 소요’가 아닌 역사를 바꾼 의미 있는 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이 있었을 때 정부 측은 십중팔구 시위대의 폭력성을 거론하면서 공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정부 측이 부정했고, 시위대가 옳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공권력을 언급하면서 모든 사태의 책임을 시위대의 잘못으로 몰기 전에 왜 국민들이 거리로 나왔는지를 뼈저리게 반성하는 것이 정부와 여당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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