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화장실서 쓰러진 채 발견돼
계약서도 없이 유령직원으로 일해

롯데 “책임 없어”…어디에 책임 물어야 하나
민주노총 “원청이 사용자로서 책임 져야”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지난 5월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한 사회적 책임에 앞서겠다던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의 약속은 무색해질 위기에 처했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에서 지난달 22일 판매원으로 근무하던 박유정(40)씨가 백화점 내 직원화장실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그런데 롯데백화점은 자사가 박 씨를 직접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고와 관련해 책임질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박 씨가 행사매장에서 아르바이트 형태로 근무했다는 이유로 근로계약서 한 장 작성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롯데백화점의 ‘고용행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박 씨는 10년 동안 롯데백화점 내 행사 때마다 아르바이트 형태로 롯데백화점 입점업체에서 일해왔으며 사고가 일어난 날 역시 아웃도어 브랜드 ‘아이더’ 매장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위해 판매대행 중이었다.

부산진경찰서에 따르면 쓰러진 박 씨는 이날 오후 1시 직원화장실에서 박 씨의 동료에 의해 발견됐으며 박 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근로계약서 없어 재직 사실 입증조차 어려워

근로기준법 17조에 의거해 고용주와 피고용주는 근로계약서를 작성 후 한 부씩 교부해야 하며 이를 어겼을 시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한다. 즉 사업장 내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원칙이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계약의 효력여부와 무관하게 처벌대상이 된다.

이와 같은 사실을 무시한 채 박 씨가 근무했던 아이더 대리점은 박 씨의 주소와 주민번호 등을 알아본 정도에 그쳤다고 알바노조 부산지부는 전했다.

이에 따라 근로계약서를 통해 박 씨와 아이더 대리점주 사이에서 어떤 계약 내용이 이뤄졌는지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박 씨가 계약 내용에 따라 마땅히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다.

더욱이 유가족들은 산업재해보상 신청을 위한 근로 사실 입증 자체가 어려운 실정에 놓여있다. 박 씨의 사망원인이 업무로 인한 과로로 판정이 날 경우 근로복지공단의 판단 하에 유가족들은 산업재해보상을 받을 수 있으나 현재 근로계약서가 없어 박 씨가 롯데백화점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롯데百, 입점업체 임직원 고용 관여는 ‘경영 간섭’
아이더, 대리점은 개인사업체… 본사 개입 안 해

롯데백화점은 자사가 박 씨를 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박 씨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 관계자는 “박 씨를 직접 고용한 아이더가 산업재해보험이 박 씨 유가족들에게 지급될 수 있도록 처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롯데백화점은 고용주인 아이더 대리점주와 피고용주인 박 씨 간의 계약 체결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원청인 롯데백화점이 근로계약서 작성에 대해 관여를 하는 것은 경영 간섭에 해당한다”며 “근로계약서 작성을 권유하는 수준일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입점업체 관리자가 근로자를 고용할 때 근로계약서를 체결하도록 강구할 방법을 계획중이다”며 “하지만 경영 간섭이 염려돼 강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이더 역시 대리점주가 임시로 근로자를 고용한 것이기 때문에 본사와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아이더 관계자는 “본사는 대리점주가 자체적으로 고용한 근로자와 어떻게 계약을 맺는지 관여하지 않는다”며 “본사는 대리점주와 계약을 맺을 뿐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 씨의 죽음과 관련한 모든 사항들은 전해듣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천연옥 위원장, 롯데에 책임 물어야
백화점 3사 정규직 비율 3.7%… 비정규직 만연

이에 대해 노동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울분을 터트렸다. 알바노조 부산지부, 노동당 부산시당. 좋은롯데만들기 부산운동본부는 지난 3일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원청 사용자인 롯데백화점이 이번 사건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갖고 산업재해라는 점을 인정하기를 촉구했으며 노조 조합원들은 계속해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비정규직위원회 천연옥 위원장은 박 씨가 지난 10년간 롯데백화점에서 일했으며 롯데백화점 내에서 일어난 일이니 롯데가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 위원장은 “산업재해보상을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박 씨가 롯데백화점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통장내역 등의 자료를 수집하는 중이다”며 “하지만 이 와중에도 롯데백화점은 계속해서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 노동법에는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원청이 결정하지만 법적으로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이 점을 악용해 롯데백화점과 같은 원청은 하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천 위원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건설현장에서는 불법 하도급관계가 극심해 노동자가 산재사고가 날 경우 원청이 책임지고 있다. 이처럼 일반 사업장에도 원청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천 위원장은 주장했다.

이와 함께 천 위원장은 롯데백화점을 포함한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의 정규직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3,7%에 불과할 정도로 비정규직이 만연해 있는 상황이라고 천 위원장은 지적했다.

천 위원장은 “박 씨와 같은 백화점 내 수많은 비정규직 판매사원들은 화려하게 보이는 백화점 분위기와 달리 휴식공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재벌그룹 ‘롯데’가 사회적 책임을 가질 수 있도록 시위를 통해 계속해서 촉구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롯데백화점이 입점업체와 계약할 때 입점업체가 비정규직에 대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을 의무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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