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재벌의 경제력 남용과 상생경제,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주제로 토론회 열려

   
 

진보 “재벌총수 일가에만 경제력 집중…규제 불가피”
보수 “최소 범위만 규제 필요… 시장 판단에 맡겨야”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국가미래연구원과 경제개혁연구소, 경제개혁연대가 지난 10월 27일 오후 3시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재벌의 경제력 남용과 상생경제,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별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들 세 단체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 한국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지난 6월부터 한 달에 한 차례씩 시리즈 토론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다」를 진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시리즈인 ‘한국의 재벌기업,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를 대주제로 총 6회에 걸쳐 세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는 네 번째 세부 토론으로 ‘재벌의 경제력 남용과 상생경제,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진행에 나섰다. 전성훈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이 각각 보수 측과 진보 측을 대표해 발제자로 참여했다. 또한 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임영재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이봉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따른 경제력 남용의 심각성과 정책적 대응의 필요성에 뜻을 모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책 대안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를 드러냈다. 발제자들과 토론자들 중 진보는 사전적인 행위규제를 강조하며 경제력 집중이 재벌총수일가의 이익만을 쫓는 결과를 초래해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반면 보수는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한 사후적인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시장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아울러 참석자들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 규제 및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및 동반성장과 관련해 규제 철학 및 법집행 원칙, 정책의 기본 방향과 구제척 수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진보 위평량 “사전적 구조개선 필요”

진보 측 위평량 연구위원은 재벌의 경제적 집중현상으로 인한 경제적 남용 폐해를 막기 위해 사전적 구조개선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위 연구위원은 “현행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사업자 중 1위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상위 3사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일 정도로 높다”며 “그만큼 시장경제가 규제되지 못하고 있어 경제력 남용의 폐해를 막으려면 재벌에 대한 사후적 행위규제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위 연구위원은 현행 법률상 남용행위가 법적 제재를 받으려면 행위와 함께 부당한 방법의 행위가 이뤄져야 하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위 연구위원은 “경제력 남용행위 그 자체만으로 제재를 받기 보다는 이론적·실증적으로 부당성요건을 치열하게 다퉈야 하므로 처벌이 어렵다”며 “특히 한국의 재벌총수는 사회적 합의인 법과 제도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운영원리를 스스로 결정하고 좌우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위반행위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고 진단했다.

구체적인 개선 과제로 경제력집중 완화를 위한 시장구조 교정과 관련해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추정 기준의 강화, △의무공개매수제도의 도입, △기존순환출자의 단계적 해소, △지주회사행위규제 강화, △지주회사의 판단요건의 강화, △친족그룹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금융계열사가 일정요건 이상인 경우 중간금융지주회사 설치 의무화, △계열분리명령제 도입 등을 제시했다. 중소기업(소상공자영업)과의 동반성장을 위한 과제로는 △중소기업에 대한 선별적인 담합 허용, △상생법 상의 성과배분제도의 실질화 및 이익공유제 도입,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 실효성 강화 등을 제안했다.

보수 전성훈 “규제 최소화해야”

보수 측 전성훈 교수는 재벌의 경제력 남용과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폐해에 대한 규제가 이뤄져야 하지만 거래비용을 절감하는 기업조직의 선택은 제한하지 않도록 신중한 법집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즉 전 교수는 대기업집단 부당지원행위의 규제에 대해 사익편취, 중소 경쟁기업 사업기회 박탈, 부실 계열사 지원 등의 불공정거래의 측면과 내부거래의 효율적 측면을 비교형량해 합리원칙을 정립하고 규제를 합리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전 교수는 재벌 문제의 성격을 △소유주 일가의 사익편취, △대규모 기업조직의 경제력 남용, △자원배분에 있어서 시장의 대안 기제로서의 기업조직 선택 등 세 가지로 나누고 ‘경제력 남용 방지’와 ‘상생협력의 촉진’의 측면에서 정책방향과 개선과제를 제시했다.

전 교수는 “전통적인 ‘시장경쟁 촉진’과 재벌과의 상생을 다루는 ‘기업생태계 건전화’ 두 가지 영역을 구분해 공정위 규제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대기업집단에 대한 규제는 소유·지배 구조가 내포하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고려할 때 최소범위의 사전적 규제가 적절하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와 같이 필요가 생길 때마다 예외 규정을 도입해 보완하는 방식은 규제시차로 정책실패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재량적 판단이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나 대규모 유통점 영업규제와 같은 경쟁제한적 규제는 그 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입각해 존폐 여부 및 개선 방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자발적 상생협력은 촉진하고 불합리한 경쟁제한적 규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수 김정호 “경제력 남용 규제, 계약 위반에 국한”

보수 측 김정호 교수는 전 교수의 기업조직 선택을 제한하지 않도록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에 의견을 더했으며 경제력 남용 행위의 유형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경쟁관계인 경우와 서로 계약관계인 경우로 나눠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김 교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대기업과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 다른 중소기업과 거래를 하거나 또는 소비자와 직접 거래를 하는 것보다 더 선호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대·중소기업이 경쟁관계인 경우 대기업의 경쟁력 있는 상행위 자체를 문제 삼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공급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자리에 입점하는 것을 경제력 남용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며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계약관계인 경우 서로 합의된 기대를 벗어나 일어난 납품단가 후려치기, 인력빼가기, 부당거래요구, 기술편취 등 경제력 남용에 대한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중소기업 역시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비효율적 생산자를 현 상태로 보호하겠다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대형마트 규제 등의 정책은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루는 것일 뿐이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진정 사람들 간의 격차를 줄이고 형평성을 높이고자 한다면 가난한 사람에 대한 직접지원을 늘리는 것이 답이다”며 “그 재원은 기업에 대한 규제와 보호를 줄여 마련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진보 이봉의 “공정거래법 실효성 의문”

진보 측 토론자로 참여한 이봉의 교수는 전 교수가 공정위의 재량적 판단이 가능해도록 해야한다는 제안에 대해 “효율성을 강조하는 경쟁법 집행의 합리화는 결국 최소한의 규제로 귀결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시장집중과 소유집중, 일반집중의 세 가지 차원이 서로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는 전통적인 경쟁정책수단으로는 해결이 어려우며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전 교수가 공정위의 재량적 판단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 효율성을 강조하는 경쟁법 집행의 합리화는 결국 최소한의 규제로 귀결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공정거래법상 재벌에 대한 사전규제는 출자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는 양상을 적절히 방지하기 어렵다”며 “부당지원이나 사익편취의 금지는 재벌의 편법적인 지배권승계를 억제하는데 기여할 수 있으나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고 꼬집었다.

이어 “불공정거래의 측면과 내부거래의 효율적 측면을 비교형량하고 합리원칙을 정립해 규제를 합리화하는 ‘공정거래법 집행의 합리화’에 대해 누구나 동의할 수는 있겠지만 접근방법 혹은 구체적인 정책수단을 둘러싸고 이견이 큰 상황이다”며 “경쟁법 집행의 합리화란 효율성을 강조하는 경제이론의 주도로 진행된 측면이 크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실무는 합리적 규제라는 이름으로 결국 최소한의 규제로 귀결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상생협력 내지 동반성장을 위한 시책의 타당성을 주기적으로 평가해 실효성을 저해하는 원인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이 교수는 주장했다. 이 교수는 “상생협력 시책의 타당성을 평가함에 있어 경쟁제한 여부는 여러 기준 중 하나일 뿐이다. 중소기업의 거래조건이나 경쟁력, 교섭력이 얼마나 제고됐는지가 관건이 돼야 한다”며 “재벌의 발전적 변화는 총수의 인식변화를 통해 보다 용이하게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총수의 태도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법제도상의 유인, 제재시스템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수 임영재 “‘중소기업의 구조조정’ 필수”

보수 측 토론자인 임영재 연구위원은 재벌이 총 취업자의 10%에게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나마도 조기퇴직인 반면 총 취업자의 90%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정체 또는 퇴보하는 최근 추세를 볼 때 기존 형태의 재벌정책, 중소기업정책, 상생정책만으로는 양극화 위기를 완화하거나 극복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 양극화의 주요 양상이 상시 기업구조조정의 결과로 조기퇴직자가 양산되고 이들이 자영업에 몰려들어 ‘조기퇴직→자영업’의 구조적 함정에 빠져 있으며, 이를 피한 다른 국민들 역시 급속하게 위축되는 중소기업부문에 일자리를 갖고 있어 과거 중산층에 속했던 국민들이 상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임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하지만 기존의 정부정책들이 대체로 양극화 위기의 구조적 원인들 보다는 그 다양한 사회경제적 증상들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임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임 연구위원은 “양극화 위기로 인한 사회경제적 증상에 초점을 두고 그 증상의 완화를 시도하는 정부정책이 경쟁력이 없는 한계중소기업들을 연명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며 “한계중소기업의 퇴출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보 박상인 “사회 각계에 재벌 영향력 끼쳐”

진보 측 박상인 교수는 재벌의 경제력 남용보다 집중의 폐해를 강조하며 정치계와 관계, 학계, 법조계, 언론 등 사회 각계에 재벌의 영향력이 미치는 사례를 들고 기술혁신과 시장의 활력을 저해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 교수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혁신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고 내부거래를 통해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기술혁신과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고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은 전형적인 수직계열화와 무관한 영역으로 사업 확장을 포괄한다”며 “총수일가의 이익이 사회적 이익과 정합성을 갖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재벌개혁 정책이다”고 말했다.

이어 “건전한 주식회사제도의 작동을 위해 경영자의 사익추구를 견제할 수 있는 대주주와 기관투자자들이 필요하다”며 “공정한 경쟁과 노력의 결과로서 부의 축적과 조세부담을 통한 부의 승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함으로써 건전한 자본주의 발달의 초석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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