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부 살해 혐의로 복역 중인 무기수 김신혜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개시 첫사례

무죄 증거 없어 형 집행은 ‘유지’
검찰, 재심 개시 결정에 불복 항고

【투데이신문 한정욱 기자】법원이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15년이 넘도록 복역 중인 무기수인 김신혜(38·여)씨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20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지난 18일 무기수 김신혜씨 재심청구 사건에 대한 기일을 열고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법원은 당시 사건 수사에 관여한 경찰(사법경찰관리)이 압수·수색 영장에 따르지 않고 강제수사인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며, 이 과정에 경찰을 참여시키지 않았음에도 마치 참여한 것처럼 압수조서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판단(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허위공문서작성 등)해 재심을 결정했다.

아울러 김씨가 현장검증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도 영장에 의하지 않고 김씨에게 장소를 이동하게 하면서 의무없는 범행 재연을 하게 한 것으로도 봤다.

다시 말해, 김씨 사건의 수사에 관여한 경찰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으로 봤으며, 이는 곧 재심 사유(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 해당한다는 의견이다.

단 무죄 등을 선고할 명백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것은 아닌 만큼 형의 집행을 정지하는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재심사유 해당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경찰 등이 범한 직무에 관한 죄가 사건의 실체에 관계된 것인지 여부나 재심사유가 재심대상 판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가의 실체적 사유는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김신혜 사건’은 지난 2000년 3월 7일, 김씨 아버지가 전남 완도의 한 버스승강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사건 발생 만 하루 만에 큰딸 김씨를 피의자로 체포했다. 수사기관은 김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술에 수면제를 타 아버지를 살해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하려 사체를 유기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자백과 증언 외에 구체적인 물증을 하나도 찾지 못했으며, 김씨는 강압수사 등을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대한변협 인권위 법률구조단은 지난 1월 김씨의 재심을 청구했으며,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지난 5월 13일 재심을 결정하기 위한 심문기일을 열었다.

김씨는 당시 법정에서 아버지를 숨지게 한 범인으로 갑자기 몰려 연행된 뒤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와 무차별적인 폭행, 겁박 등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잊지 않기 위해 속옷과 양말바닥, 티셔츠 등에 기록했으며 옷도 제대로 벗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김신혜씨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는 “법원의 재심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대한변협은 18일 성명을 내고 “김씨는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로 인해 23살 꽃다운 나이에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무기수가 돼 15년간 옥살이를 했다”며 “수사기관의 권위의식과 비인권적인 수사 방식 등 전근대적인 태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씨에 대한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은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이 개시된 첫 사례”라며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적법절차의 원칙, 사법절차의 기본권, 무죄추정의 원칙 등이 15년 만에 실현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재심절차는 재심개시절차와 재심심판절차 등 2단계로 구분된다. 김씨 사건의 경우 재심 개시 결정이 이미 내려진 만큼 향후 심판절차가 남아 있다. 심판절차는 각 심급의 공판절차와 동일하며, 종국재판의 형식에 따라 마무리된다.

김씨의 재판은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대한 검찰의 항고가 없을 경우 곧바로 진행된다. 검찰은 결정문 고지 3일 이내 항고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검찰의 항고가 이뤄질 경우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한 또 한 번의 판단은 광주고등법원에 맡겨진다.

광주지검 해남지청은 20일 오후 무기수 김신혜에 대한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해 항고했다. 이에 따라 무기수 김신혜의 재심 개시 여부가 타당한 지는 광주고등법원에서 다시 한 번 판단을 하게 된다.

한편 김씨는 친아버지를 살해한 혐의(존속살해)로 지난 2000년 8월31일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같은 해 12월 기각됐으며, 다음해인 2001년 3월 대법원 상고마저 기각되면서 유죄의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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