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결혼이민여성을 위한 취업박람회에 가다

   
▲ 2015년 결혼이민여성 취업박람회가 열린 서울시청 내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서울시청이 취업의 열기로 들끓었다.

지난 17일 서울시청에서 ‘결혼이민여성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결혼이민여성과 구인업체의 일자리 연계를 위해 실시된 이번 박람회는 서울특별시서부여성발전센터가 주최했다. 올해 3회째를 맞이한 이날 행사에서는 ▲구직신청서 작성 ▲이력서 제출 ▲구인업체 면접 ▲취업전문가 상담 등이 이뤄졌다.

이에 본지는 결혼이민여성의 뜨거운 구직활동 현장을 다녀왔다. 취업을 향한 열망은 국적과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 세탁물관리업체에서 면접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투데이신문

힘든 취업의 길… “나이 많으면 갈 데가 없어”

중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지 15년째가 된 윤연화(여‧44)씨. 윤씨는 현재 1년 넘도록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면접은 수도 없이 봤으나 갈 때마다 들러리 역할만 했다. 수차례 본 그룹 면접에서 인사담당자들은 그에게 질문을 하나도 건네지 않았다. 윤씨는 최근 보러 간 면접에서도 이런 일을 또 겪자 면접장에서 이렇게 외쳤다. “나 외국인인 것 알면서 불렀잖아요. 여기까지 온 사람한테 뭐라도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에요?”

전산회계 1급, 전산세무회계 1급, 다문화상담사, 다문화케어복지사, 스트레스 상담사…. 지금껏 그녀가 취득한 자격증들이다. 한때 주민센터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상담일도 2년간 했다. 윤씨는 아무리 노력해도 취업하는 게 쉽지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박람회를 통해 윤씨는 상담사로 취업할 생각이다. 이왕이면 다문화가정 전문 콜센터나 상담 관련 일을 하길 바라고 있다. 이유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결혼이민여성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예전에 그녀가 힘든 한국 생활로 우울증에 걸렸는데 주변 친구들의 도움으로 극복한 경험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취업은 윤씨에게 단순한 생존 수단이기보다 ‘꿈’에 가깝다.

   
▲ 취업전문가에게 이력서 상담을 받고 있는 윤연화(여·44)씨 ⓒ투데이신문

윤씨는 박람회장에서 상담 관련 업무를 하는 회사 두 곳에 면접을 봤다. 하지만 크게 희망을 갖지 않는 듯했다. 윤씨는 “사실 나이가 많으면 식당이 아니면 갈 데가 없어요. 요즘은 젊은 한국인들도 취업하기 힘들잖아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서울시청 지하1층에 마련된 취업박람회는 크게 ▲취업지원관 ▲채용관 ▲체험관 ▲사진관 등으로 나뉘었다. 기자는 취업지원관으로 향하는 윤씨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한 관계자는 윤씨에게 구직신청서를 건네며 쓰라고 권했다. 윤씨는 신청서 이곳 저곳을 거침없이 쓰다가 희망임금형태 칸에서 잠시 망설였다. 이내 빈칸에는 ‘월 120만원’이라는 글자가 적혔다.

“어떤 직종에 가고 싶으세요?”
“컴퓨터 실력은 어느 정도 되세요?”
“나이 말고 (취업) 실패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취업담당자는 윤씨가 쓴 이력서를 꼼꼼히 보며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담당자가 중국어 통번역 일을 추천하자 윤씨는 자신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번에 한 적이 있었는데 머리 아프고 힘들었어요” 그러자 취업담당자는 “장기적으로 가려면 남보다 특별한 분야를 찾아야 해요. 어려움이 있다면 극복해야지요. 꾸준히 도전해야 붙을 수 있어요”라고 조언했다. 이어 두 사람은 구인게시판에 걸린 업체의 공고문을 살피며 구체적인 지원 전략을 짰다. 게시판에는 약 30개의 구인업체 정보가 나와있었다.

   
▲ 채용게시대에서 구인정보를 보고 있는 여성 ⓒ투데이신문

한쪽에서는 결혼이민여성과 구인업체의 일대일 면접이 진행됐다. 결혼이민여성들은 마음에 드는 업체가 있는 부스에 방문해 이력서를 제출하고 바로 면접을 봤다. 행사 관계자는 지난해보다 현장면접 업체수가 늘어났다고 귀띔했다. 이날 현장면접에는 사무관리, 교‧강사, 보건 의료, 통‧번역, 판매 서비스, 생산직 등 6개 직종 11개 업체가 참여했다.

취업서비스관에서는 이력서 클리닉, 구직상담, 창업기초 컨설팅, 취업성공패키지 사업안내, 다문화가족상담 등이 마련됐다. 이곳에선 취업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몇몇 결혼이민여성은 이력서 클리닉 혹은 구직상담 코너를 찾아 전문가의 조언을 들었다.

   
▲ 취업상담을 받고 있는 결혼이민여성 모습 ⓒ투데이신문

“결혼이민여성 중에도 능력 좋은 분 많아”

회사 이름이 적힌 부스마다 업체 담당자들이 앉아 있었다. 결혼이민여성들은 각자 원하는 업체 관계자를 만나고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중 이레인터네셔널이라는 곳에 들렀는데 이 회사에서는 중국어 담당 의료관광가이드를 모집하고 있었다. 4년째 의료관광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몽골 출신 벌얼초롱(여‧24)씨는 싱글벙글 웃으며 지원자들을 반겼다. 여성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고 질문했다.

벌얼초롱씨는 “우리 회사에서 선호하는 인재는 한국어와 중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사람”이라며 “엑셀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도 잘 다뤘으면 좋겠어요. 특히 의료관광가이드는 사람 대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사람을 좋아해야 해요”라고 했다.

   
▲ 면접을 보고 있는 결혼이민여성 ⓒ투데이신문

일각에서는 결혼이민여성의 취업 실패를 능력이 부족한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세탁물관리업체 크린토피아 강서지사 우지연 팀장은 “입사 지원자 중에서는 능력이 좋은 분들이 많아요”라며 “고국에서 간호사를 10년 넘게 하신 분, 공부를 많이 하신 분 등이 있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취업을 못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파요”라고 말했다.

   
▲ 사진촬영 중인 결혼이민여성 ⓒ투데이신문

“사진 준비 안 되신 분들, 찍으러 오세요”

어떤 관계자가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한쪽에 무료로 이력서에 붙일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캄보디아 출신 운 팩트라(여‧29)씨가 카메라 앞에 앉자 사진가는 찍을 준비를 했다. 다른 관계자는 운 팩트라씨의 옷매무새와 머리칼을 다듬었다. 사진을 찍고 나온 그녀는 양 팔에 자료집을 한아름 안고 취업지원관을 두리번거렸다. 운 팩트라씨는 “한국말이 서툴러 불이익을 겪는 캄보디아 노동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며 강한 취업의지를 드러냈다.

다른 한쪽에서는 양초공예, 리본공예가 이뤄졌고 네일아트, 퍼스널 컬러 진단검사, 메이크업 시연 등이 열리기도 했다.

   
▲ 퍼스널컬러 진단검사를 받고 있는 결혼이민여성 ⓒ투데이신문

필리핀 출신 박지은(여‧32)씨는 “나는 사람을 대하는 일이 좋아 텔레마케터 쪽을 지원했어요. 이번 박람회가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워요. 앞으로 이런 행사가 앞으로 많아졌으면 좋겠네요”라는 바람을 전했다.

반면 박람회에 대한 아쉬운 의견도 있었다. 러시아 출신 김사랑(여‧28)씨는 “다양한 직업군이 많은 업체가 박람회에 참여해 결혼이민여성들을 고용했으면 해요”라고 소망했다.

시곗바늘이 오후 5시를 향해 가자 결혼이민여성들은 하나둘씩 박람회장 문을 나섰다. 희망을 품고 떠나는 그들에게 합격의 기쁨이 하루빨리 찾아오길 바란다.

   
▲ 이력서를 살피고 있는 결혼이민여성 ⓒ투데이신문

결혼이민여성, 취업하려면 이것만은 지켜라!

지난 2013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조사한 ‘서울시 다문화가족 생활실태분석을 통한 정착 및 사회통합지원 방안연구’를 보면 서울시 다문화가족은 월평균 소득 200만원 미만 가구의 비율이 44.4%로 취약계층이 많았다. 더욱이 서울시 거주 결혼이민자·귀화자 중 취업자는 64%였고 대부분 단순노무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 알선과 교육 상담을 담당하고 있는 용산여성인력개발센터 홍진희 취업설계사는 “결혼이민여성의 취업이 힘든 게 사실”이라며 “특히 안정된 기관에 취업하기는 어렵고 주방 쪽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취업을 원하는 결혼이민여성이 알아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현장에서 들은 홍진희 취업설계사의 조언을 간략히 정리했다.

1. 한국말을 제대로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회사에서 상사가 어떤 일을 시켰을 때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고용자들은 기본적으로 한국말을 원활히 하는 사람들을 원한다. 한국말이 서툴면 업체 쪽에서 달가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2. 신뢰를 주는 게 중요하다. 간혹 결혼이민여성 중에서 약속 개념이 희박한 분들이 있다. 며칠만 일하고 나오지 않거나 면접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하는 사람을 뽑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신뢰’라는 걸 잊지 말자.

3. 구직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일부 결혼이민여성은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할 수 있는 회사를 원한다. 현실적으로 그런 곳은 드물다. 물론 남편과 육아도 중요하지만 주체적인 취업 준비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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