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투데이신문 강서희 기자】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26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온 국민의 이름으로 말씀드린다”며 “사모하던 하나님의 품안에서 부디 안식하소서”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오후 2시부터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거행된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했다.

다음은 김 전 의장의 추도사 전문.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영삼 대통령님!

지난 19일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해도, 불굴의 의지로 어려운 고비를 꼭 이겨내시고 반드시 회복하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11월 22일 0시 20분, 대통령님은 영영 저희 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엄혹한 군사독재정권시절, 대통령님께서는 “국내에서의 투쟁을 접고 외국에 나가 있으라”는 집요한 회유를 받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핍박받는 국민들을 남겨두고, 나 혼자 편하자고 고난의 현장을 떠날 수는 없다”며 단호히 이를 거부하셨습니다. 대통령님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을 섬겨 오신 진정한 문민 정치가였습니다.

민주주의와 민권을 위해 모든 것을 남김없이 바치신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대통령님. 그렇게 사랑하던 조국, 그렇게 사랑하던 국민, 그렇게 사랑하던 동지들을 남겨놓고 이렇게 홀연히 가셨습니까?

회고해 보면, 실로 대통령님의 생애는 시련과 극복, 도전과 성취의 대한민국 민주헌정사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국가장은 국회에서 거행되고 있습니다. 민의의 전당인 이 곳 국회에는 대통령님의 숨결이 도처에 배어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국회를 포기하지 않았던 의회존중의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26세 최연소 의원으로 3대국회에 처음 등원하신 이래 아홉 차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야당 원내총무 다섯 번, 제1야당 총재를 세 번, 그리고 집권여당의 대표까지 지낸 의회정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가 대통령님이셨습니다.

1970년에는 40대 기수론을 제창해 한국 야당사에 신기원을 열었고, 1990년에는 3당 통합 결단으로 문민정부의 탄생을 구축한, 참으로 용기 있는 지도자이셨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구현을 위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오시는 동안 초산테러, 가택연금, 국회의원직 제명 등의 혹독한 탄압이 간단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꺾지 못했습니다. 특히 1983년, 군부독재에 맞서 목숨 걸고 결행한 23일간의 단식투쟁은 민주화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어 있던 겨울공화국 치하에서 조국 땅, 역사의 현장을 지키며 생명을 던져 처절하게 저항하는 대통령님의 모습은 모든 민주세력들에게 무한한 감동과 용기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절규는,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던 국민들의 가슴 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비원으로 아로 새겨져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1993년 2월 25일,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는 군 사조직 척결, 공직자 재산등록제, 금융실명제, 지방자치제의 전면실시 등 경이적인 민주개혁을 과감히 단행하셨습니다.

군사독재체제의 누적된 폐해를 혁파하고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공고히 한, 역사적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거짓과 위계, 음해와 사술을 배격하고 한결같이 ‘대도무문’의 정도를 걸어 온 김영삼 대통령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퇴임 후에도 대통령님께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나라의 근본을 흔들려는 불순한 기도가 감지될 때마다 가해진 준엄하고 단호한 경고는 강력한 제동력을 발휘해 국가 사회가 혼동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냈습니다. 여론에 좌고우면함 없이 “옳은 길이라면 백만인이 반대해도 꿋꿋이 나의 길을 간다”는 불퇴전의 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대의 앞에 단호한 대통령님이셨지만 이웃들에게는, 동지들에게는,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한 분이셨습니다.

지난 5일간 언론을 통해 그간 숨겨졌던 대통령님에 관한 일화들이 많이 소개됐습니다. 소탈하고 가식없었던 대통령님의 따뜻한 면모를 새삼 추억하면서 국민들의 마음이 모처럼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울대병원 빈소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분향소에는, 고인의 서거를 애도하는 추모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광주 ‘5.18 기념재단’이,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을 제정하고‘ 명예회복, 민주묘지 조성, 국가기념일 지정을 하신 대통령님을 기리기 위해 대통령님 유족들에게 ’공로패‘를 드리기로 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통합과 화합‘이라는 휘호를 유언처럼 남기신, 정직한 언행일치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대통령님.

지난 닷새의 장례기간 빈소를 지키면서, 금방이라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조문객 사이에 끼어 앉아 격의없는 대화를 함께 나누시는 대통령님의 모습을 부질없이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 저 건너편에서 “나, 김영삼인데요”하는 대통령님의 음성이 바로 들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머지않아 저희 모두 대통령님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겠지만, 사람을 중히 여겼던 대통령님을 모시고 정치 역정을 함께 해 온 많은 후배동지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이 나라의 정치를 바로 세우고, 님께서 염원하시던 상생과 통합, 화해와 통일의 그 날을 반드시 실현해 낼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끝으로 이 땅에서 대통령님과 영결하는 이 시간, 저는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온 국민의 이름으로 삼가 대통령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영삼 대통령님, 참으로 참으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사모하던 하나님의 품안에서 부디 안식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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