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삼국지인물전> 외 5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조선 인조(仁祖)때 사람 심기원(沈器遠, ?-1644)은 좌의정으로 있으면서 남한산성 수어사 벼슬까지 하고 있었다. 큰 힘을 지니게 된 심기원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반란을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됐다. 죽을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사형을 당해야 했다. 당시 심기원의 라이벌은 영의정 김자점(金自點, 1588-1651) 이었다. 김자점이 인조에게 말했다.

“이 역적은 기존의 법으로 단죄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팔 다리를 자른 뒤에 죽여서 반역자들에게 본보기를 보이십시오.”

어차피 그냥 둬도 죽을 사람인데 김자점은 자신의 사적인 원한을 이런 식으로 풀려 했다. 인조는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 지 김자점의 건의를 받아들여 법을 바꿔 버렸다.

사형을 집행하는 날이 되었다. 집행자는 심기원의 목을 치지 않고 다리부터 자르려 했다. 심기원은 형틀에 엎드려 있다가 이 모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것은 무슨 형벌인가?”

“김상공(金相公)의 명이오.”

심기원은 장탄식을 했다.

“나를 대신해 김자점한테 전해 주시오. ‘당신도 반드시 이런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이후 김자점은 효종(孝宗)의 북벌계획을 청나라에 밀고했다가 대신들의 탄핵을 받아 광양으로 유배를 갔고, 아들인 김익(金釴)이 북벌론자들을 제거하고 숭선군(崇善君)을 추대하려던 계획이 발각돼, 아들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이 때 김자점은 예전 심기원이 그랬던 것처럼 산 채로 능지처참을 당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조선후기의 문인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 쓴 『청성잡기(靑城雜記)』에 수록돼 있다. 성대중은 이 일화를 통해 ‘악법은 그 법을 만든 사람을 죽인다’는 것과 ‘자신이 저지른 악행의 과보는 자신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 뿐인가. 수레에 사지를 매달아 찢어 죽이는 이른바 ‘거열형(車裂刑)’을 창안한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상앙(商鞅) 역시 ‘거열형’으로 죽임을 당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삼백 만을 죽였는데, 우리는 백만에서 이백만을 죽여도 끄떡없을 것입니다.”

이 말을 남긴 차지철은 제일 먼저 총에 맞아 죽었다.

“미국 경찰은 폴리스라인을 벗어나면 그대로 패버린다…그게 오히려 정당한 공권력으로 인정받는다 …최근 미국 경찰은 총을 쏴서 시민이 죽는데 10건에서 8~9건은 정당한 것으로 나온다.…언론이 과잉진압 이런 것 부각하는데 선진국은 정말 그런 것 아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 <2015. 11. 16. 노컷뉴스>

이런 말을 당당하게 외친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한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전 세계가 테러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때에 테러 단체들이 불법 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다. 복면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할 것…IS도 그렇게 지금 하고 있지 않느냐. 얼굴을 감추고서.”<2015. 11. 25. 시민의 소리>

심기원과 김자점의 일화를 보면 ‘인과응보의 설이 과연 세상사에 공평하게 적용 되는가?’, ‘악법은 결국 악법으로 끝이 나는가?’, ‘선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기는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년 후, 20년 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봐온 역사대로라면 어떻게 흘러갈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어김없이 오지 않았던가.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