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석 칼럼니스트
·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

【투데이신문 이원석 칼럼니스트】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사시(사법시험) 제도의 존치-폐지 논란이 마침내 4년간의 유지로 잠정 결정됐다. 따라서 사시를 거쳐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는 방식과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거쳐 변호사시험을 치르는 법조인 양성의 이원화 체제가 2021년까지 지속된다. 물론 미봉책에 불과하지만, 이런 결정이 나온 맥락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2017년 폐지 예정이던 사시 제도를 4년 연장하겠다는 법무부의 판단에는 사시 존치를 요구하는 대중의 목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높았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물론 대증적인 접근인지라 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으로 어지러운 요즘, 로스쿨이 금수저들을 위한 새로운 음서제가 아니냐는 국민의 의혹이 날로 증폭되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넷 상에는 여야를 막론한 고위직 자녀들의 로스쿨 진학현황에 대한 정보가 돌아다니고 있다. 물론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가령 신기남 의원의 딸이 연세대 로스쿨 출신으로 나오지만, 실상 인하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하지만 얼마나 정확하냐가 중요하지 않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국민이 로스쿨을 우리 시대의 음서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로스쿨의 저항

법무부의 사시제 폐지 유예는 사실 문제 해결을 유보한 것에 불과하다. 그만큼 사시의 존치파와 폐지파를 둘러싼 갈등의 골이 깊다. 하지만 어설픈 대로 지금의 난국을 잠정적으로 봉합하려한 것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양자 모두 불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외려 그 반증이 아닐까 싶다(사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세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데 문제는 로스쿨의 집단적 저항이다. 학생들이 수업 거부와 집단 자퇴 등으로 일사불란하게 반발하고 있다. 교수들은 법무부에서의 업무 일체 거부로 함께 하고 있다. 개별적인 반대 의사의 표명은 전혀 용납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 들려온다. 사실상 거의 모든 대학 로스쿨 재학생들의 집단 자퇴원 제출은 그 소문의 진실성을 수긍하게 만들고 있다.

로스쿨에서 나오는 대표적 주장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다. 물론 국민과의 약속은 국민을 위한 약속일 게다. 법에 명시되어 있으니 지키라는 말 그 자체는 옳다. 하지만 모든 법이 적절하거나 온당한 것은 아니다. 사후적으로 법률의 문제점이 드러났다면, 여기에 대해서 유보 혹은 개정하거나, 내지는 폐기해야 한다.

로스쿨은 사시 폐지일자가 기입된 법률과 국민과의 약속을 동일선상에 놓고 강력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진정한 국민의 뜻이다. 한데 그들이 생각하는 국민의 뜻이 어쩐지 일반적 입장과 다르게 느껴진다. 이들에 따르면, 지금의 조사 결과는 사회 각층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일방적 의견에 불과하다고 한다.

국민의 뜻

지난 5월 23-24일 당시에 동아일보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여론조사를 의뢰한 결과는 압도적으로 로스쿨에 불리하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74.6%가 사시 제도의 유지를 지지했다. 만일 사시 제도와 로스쿨 제도를 병행하는 지금의 법조인 양성 방식을 단일화한다면, 사시 제도를 지지한다는 의견이 67.9%였다. 반면 로스쿨 제도의 지지율은 23%에 불과했다.

이러한 통계 수치는 2009년에 도입한 이후로 지금까지 로스쿨 제도가 국민의 믿음을 얻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응답자의 60.3%가 로스쿨 제도가 기회의 균등에 어긋난다고 답하는 실정이다. 변호사시험 합격자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결했음에도 여전히 공개하지 않는 등의 상황이 누적되니 불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 로스쿨을 바라보는 국민의 부정적 시선은 전보다 훨씬 더 심화됐다. 최근 법무부가 조사한 바는 이전보다 더욱 반감이 증폭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시 존치의 찬성에 무려 85.4%가 표를 던진 상황이다. 조사 시에 법대 출신 비법조인의 비중이 적었다는 로스쿨 측의 반발도 있다(그게 불만이라면 숫자를 늘려서 다시 확인해도 상관없겠다).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은 “여론 조사만을 근거로 한 것이므로 졸속에다 부실이어서 자칫 사회적 논란과 혼란을 촉발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법무부의 연장에 만류를 표했단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 데, 사회적 논란과 혼란을 우려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무래도 국회 법사위원장이 염두에 두는 사회의 범위가 협소한 듯하다.

새정련의 무감각

더욱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서 새누리당과 새정련 사이의 온도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민 새정련(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법사위 간사를 맡고 있는 전해철 새정련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서 사시 존치를 주장하며 규탄 집회를 벌이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측에서 사시 존치 법안을 다섯 건이나 제출했는데, 법사위에서 심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다.

지금 이 상황은 새누리당의 예리한 촉을 보여준다(이자스민을 의원으로 받아들이던 그 촉이다). 반면 새정련은 이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삼 정권 때에 시작된 로스쿨 일원화 정책을 관철한 것은 새정련의 친노 그룹이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 자신들이 추진한 선택의 결과를 제대로 돌이켜 봐야 한다.

더욱이 신기남 의원이 자기 자녀들의 로스쿨 졸업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황이 아닌가. 경희대 로스쿨 학생이던 아들은 결국 구제되지 못했지만, 인하대 로스쿨 학생이던 딸은 간신히 구제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신 의원의 아들 탈락 건을 통해서 로스쿨의 공정함을 주장하는 분들로서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신기남 의원의 자녀 졸업 건으로 청탁했다는 논란이 단지 의혹에 불과하더라도(물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새정련으로서는 당 자체의 신뢰도가 급격하게 하락할 위험 소지가 다분하다. 지금이라도 사시 존치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새정련은 국민의 뜻을 반영하겠다는 시늉이라도 할 의향이 없어 보인다.

밥그릇 챙기기

사시 제도 존치 지지자들은 로스쿨 폐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로스쿨 재학생들은 사시 제도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적잖은 이들은 사시 제도가 지속될 시에 (그 수적인 차이로 인해 발생할) 사시 합격자와 로스쿨 졸업자의 위계 때문에 그들이 반대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사실 다른 논거에 대해서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납득하기가 어렵다.

혹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사법연수원 유지비용을 걱정하던데, 그렇다면 차라리 국립대학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지 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 혹자는 고시 낭인들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로스쿨이 필요하다고 말하던데, 그렇다면 아예 교원 양성도 교육전문대학원으로 일원화하면 되겠다. 결국 문제는 거기 있지 않다.

법률가 양성제 변화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로스쿨에 왔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렇다면 현역 사시 준비생들은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하다. 결국 스스로 선택한 것일 뿐이다. 또한 로스쿨로 인해 변호사 숫자가 늘어서 경쟁이 강화되고 결과적으로 서비스가 좋아진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시 합격자들과도 더불어 경쟁하면 될 것이다.

로스쿨에 흙수저 출신 재학생도 있다는 증거로 특별전형 제도와 가계곤란 장학금을 제시한다. 이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한데 문제는 그러한 배려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로스쿨가계곤란 장학금 평균액은 2012년 2학기에 443만원이었다가 2015년 1학기에 382만원으로 감소하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대학인데도 말이다.

법조인이 추구할 것은 무엇인가

현재 전국의 로스쿨 재학생들 대부분이 집단으로 자퇴라는 강경 수단을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싶다. 부디 진심으로 자퇴서를 제출한 것이기를 바란다. 이들은 현재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소리 높이지만, 정작 국민의 85.4%가 사시 제도의 존치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하지만 현역 변호사도 아닌 로스쿨 재학생들은 그 자체로 강력한 세를 과시하고 있다. 그들의 집단 반발로 법무부 장관이 흔들리고 있다. 로스쿨 학생들의 출신 환경을 조사해보면 좋을 듯하다. 가령 2015년 현재 서울대 로스쿨 입학생의 출신고교 절반이 서울에 있다(50.1%=538명). 그나마도 강남 3구에 몰리고 있다(15.6%=167명).

지금 국민의 눈에 비치는 로스쿨 재학생들의 모습은 내집단의 이익을 위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조직이다. 하지만 국민은 자기 밥그릇보다 국민의 뜻을 우선하는 법조인을 원한다. 국가는 국민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자기 집단의 욕심을 포장해서는 안 된다. 대다수 국민들은 로스쿨 재학생들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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