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서 정치적 성향 강요 논란
전형 다 치렀는데…합격자 없어

학교 차별에서 4달짜리 채용 전형까지
공고에 없었던 시험에 발목 잡히기도

피드백·편의 배려로 감동 준 기업도 있어
긍정적 채용절차, 기업 이미지 제고 성공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올 하반기 공채가 마무리돼 가면서 구직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바늘구멍만한 취업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구직자들을 중심으로 갖가지 증언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구직자에게 부모님 직업, 정치성향을 묻는 기업부터 창업주 자서전을 읽고 감상문을 쓰라는 기업까지 이상한 채용 절차를 요구하는 기업들도 있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낫다. 고된 채용 과정을 다 통과했음에도 합격자를 뽑지 않고, 이조차 알리지 않아 분노를 산 기업 또한 있었다.

반면 채용에서 떨어진 지원자들에게 형식적인 통보가 아닌 진심이 담긴 ‘따뜻한 탈락 통보’를 보내 감동을 주는 기업들도 있다.

구직자가 채용과정에서는 ‘을’일지 몰라도, 회사 밖에서는 소비자로 ‘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회사들은 부적절한 채용 절차로 불매운동이라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반면, 구직자의 마음까지 다독인 회사는 특별한 홍보나 마케팅 없이도 긍정적인 이미지 만들기에 성공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년 동안 구직자를 울고, 웃고, 황당하게 한 채용 뒷담화를 살펴봤다.

“국정 교과서, 찬성이냐 반대냐”
지원자들의 정치 성향 밝혀라?

지난 10월, 아모레퍼시픽 영업관리직무 정규직전환형 인턴 최종면접에 참가했던 A씨는 기분 나쁜 경험을 했다.

한 면접관이 국정교과서 논란에 대해 질문을 한 것. A씨는 “솔직한 의견을 말해도 되냐”고 말한 뒤 “국정교과서는 사실상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면접관은 “그래서 국정교과서 찬성이냐, 반대냐”라고 다그치듯 물었다. 답변을 이어간 A씨는 최종면접에서 탈락했다.

A씨는 이 같은 경험을 SNS에 올리며 “영업관리직무를 수행하는데 국정교과서에 대한 제 견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이같은 A씨의 사연이 알려지자 일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아모레퍼시픽에 대한 불매운동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보다 한술 더 뜬 면접도 있었다.

이랜드그룹 계열사인 리드온은 지난 9월 인턴 채용 과정에서 면접 하루 전 ‘최근 논의되고 있는 국정교과서에 대한 문제와 본인의 입장은 무엇인가’, ‘세월호 법이 늦게 통과된 원인은 무엇이고 지원자의 생각은 무엇인가’, ‘천안함의 진실은 무엇인가’ 등의 면접 질문을 지원자들에게 사전 배포했다.

더불어 응시자들에게 국정교과서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강요했다는 논란도 있었다. 리드온의 한 팀장은 응시자들에게 나눠준 질문지에 “대한민국을 폄하하거나 비방하는 입장에서 서술한 교과서는 허용될 수 없다”며 “정부는 올바른 역사 교육을 위해 국사 교과서를 만들라는 특명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기재했다.

리드온의 이상한 질문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수련회 전날 가이드북을 만들어야 하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어떻게 하겠냐”, “이탈리아 출장 5일 만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어떻게 하겠냐” 등의 질문도 던져졌다.

리드온은 이랜드그룹에서 온라인 비즈니스 솔루션 제공을 담당하는 계열사다. 때문에 직무와 관련성 없는 정치 이슈 질문으로 부적절한 면접 진행이었다는 비난이 일었다.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취준생들의 불안정한 상태를 악용해 기업이 우월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부적절한 처사”라며 “지난 2011년 인권위원회에서 기업들이 면접 과정에서 정치적 성향 등의 부적절한 질문하는 것에 대해 인권침해로 판단한 바 있다”고 말했다.

   
 

“창업주 자서전 읽고 감상문 써라”
공채 전형 다 치렀는데 합격자 없어

공개 채용 전형을 다 치렀는데도 합격자가 없는 이상한 면접도 있었다.

대구지역 도시가스 공급업체인 대성에너지는 3달 가까이 진행한 공채 전형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아 물의를 빚었다.

또 사측은 최초 모집공고에 없었던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의 대면 면접을 추가로 진행했고, 창업주 고 김수근 명예회장과 부인의 자서전을 읽고 감상문을 쓰게 했다. 이 과정에서 김 회장의 작은 누나인 김정주 대성홀딩스 대표가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모든 뜻은 하나님 뜻”이라 말한 것으로 알려져 종교적 편향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이상한 특별 전형을 끝마친 지원자들은 합격 통지를 기다렸지만 전원 탈락했다. 이후 이들을 중심으로 대성에너지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박카스로 잘 알려진 동아쏘시오홀딩스는 지난 11월초 신입공채에서 글로벌전략 부문 지원자들을 아무런 공지 없이 전원 탈락시켜 논란이 됐다. 특히, 이중 30명은 면접까지 치른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불합격 소식을 들었다.

지원자들이 불합격을 통보받은 과정도 문제가 됐다. 합격 여부를 알리기로 한 지난달 5일, 채용 홈페이지에 해당 직군의 채용 과정을 알리는 항목이 사라졌다. 이에 한 지원자가 이의를 제기했고 사측은 다음날인 6일, 문자로 불합격 사실을 통보했다.

동아쏘시오홀딩스 측은 “해당 직무군에 적합한 인재상을 찾지 못해 합격자가 없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사건 이후, 지난 1일 새정치민주연합 임내현 의원은 채용 과정과 결과를 구직자들에게 알리지 않는 경우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이른바 박카스 방지법을 발의하는 등 정치권에서는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한 달 사이 4건이나 발의됐다.

“자비로 항공권 샀는데 면접관 출장…일정 연기”
다양한 갑질…학교 차별부터 4달짜리 채용 전형까지

이외에도 다양한 갑질로 악명 높은 기업들도 존재한다.

소셜커머스 업체 쿠팡 영업직에 지원했던 B씨는 지난 11월 18일 1차 면접에 합격한 후 25일 2차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제주도에 살고 있던 B씨는 서울-제주 간 왕복 항공권을 자비로 구매한 뒤 면접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면접 하루 전날인 24일 오후 면접관의 출장 일정으로 면접이 연기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또 지난 9월 쿠팡의 배송 전담 직원인 쿠팡맨 채용에 응시한 C씨는 해당 지역 면접 일정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달 넘게 기다린 뒤 면접에는 합격했지만, 결국 최종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채용모집 공고에는 없었던 운전시험이 발목을 잡았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인사담당자가 직접 학교를 방문해 지원자에 대한 현장면접을 실시하는 캠퍼스 리쿠르팅을 지난 2010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캠퍼스 리쿠르팅을 펼치는 학교는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 22개 학교뿐. 즉, 나머지 학교 출신들은 입사 서류를 낼 수조차 없다.

대신증권은 입사지원서에 추천인 기입을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내부 직원 자녀 및 지인을 뽑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앞서 지난 2009년에는 부모님 직업, 주택, 동산, 부동산 내역도 적게 해 논란을 빚었다.

채용 절차가 몇 달 동안 진행되는 기업도 있다.

유니클로는 서류 전형, 인·적성시험, 1·2차 면접, 2주 인턴 후 최종 면접까지 4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작년에는 인턴만 1달이었다가 그나마 올해는 2주로 바뀌었다. 입사에 도전했다 떨어지면 4달의 시간이 허비되는 것이다.

   
 

“저 또한 취준생 시절 수차례 고배 마셔”
따뜻한 통보…지원자들에 피드백·편의 배려

위와 같은 사례들로 인해 실질적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회사들과 달리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지원자들을 배려하는 모습도 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번 공채에서는 귀하를 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취업준비생 시절, 수차례 고배를 마셨습니다.”

지난 10월 말 중견그룹인 이수그룹의 채용담당자가 서류전형 탈락자들에게 보낸 편지의 앞부분이다. 이 편지는 취업커뮤니티와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며 ‘따뜻한 탈락 통보’의 전형을 보여줬다.

비슷한 시기, 실무 면접을 진행한 현대차그룹 광고기획사인 이노션도 취준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노션은 “오늘 보여주신 열정과 의지로 도전한다면 세상 그 어떤 것도 이뤄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라며 “많지 않은 면접비지만, 친구들과 소주 한 잔, 시원한 맥주 한 잔하며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라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면접 수고비를 면접에 참가한 지원자들에게 전했다.

구직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지원하는 기업도 있다.

롯데그룹은 탈락한 지원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제공하고 있다. 롯데는 지난해 하반기 공채부터 면접 전형에 참가한 지원자들에게 각 전형 별로 그래프화한 점수를 이메일로 보내고 있다. 역량 면접, 프레젠테이션 면접, 토론 면접, 임원 면접 별로 지원자의 점수와 응시자들의 평균 점수, 합격자들의 평균 점수를 그래프로 표시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현대차그룹은 인·적성검사(HMAT)의 호환성을 늘려 지원자들이 같은 시험을 여러 번 응시해야 하는 불편을 줄였다. 그룹 계열사 어디서든 HMAT를 치르면 6개월 이내에 그룹 내 다른 계열사를 지원하더라도 전에 봤던 HMAT 결과를 계열사별로 재해석해 반영한다.

LG전자는 면접자들의 대기 시간 줄이기에 초점을 맞췄다. 예전에는 면접 순서에 관계없이 특정 시간에 모이게 했던 것을 올해부터는 면접 순서에 따라 시간을 통지해 면접자들의 대기시간을 30분 내외로 줄였다.

삼성과 두산그룹은 면접관들의 역량 향상에 중점을 뒀다. 특히, 두산은 ‘면접관 인증제도’를 도입,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 실무 면접관을 선발하고 2박 3일 동안 추가로 교육시킨다. 삼성 역시 면접관들에게 철저한 사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 홍보팀 박영진 과장은 “면접자들은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며 “기업에서 이런 식의 배려를 늘려간다면 채용 과정에서 갑질 등의 문제점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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