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한국의 재벌기업,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

   
 

【투데이신문 박지수 기자】국가미래연구원과 경제개혁연구소, 경제개혁연대가 지난 11월 30일 오후 1시 30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재벌의 경영권 승계 관행, 어떻게 평가하고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별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들 단체는 보수와 진보가 함께 한국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지난 6월부터 한 달에 한 차례씩 시리즈 토론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다」를 진행하고 있다. 그 첫 번째 시리즈인 ‘한국의 재벌기업,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나?’를 대주제로 총 6회에 걸쳐 세부 토론을 진행중이다. 이날 토론회는 다섯 번째 세부 토론으로 ‘재벌의 경영권 승계 관행, 어떻게 평가하고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연세대학교 박상용 교수가 진행에 나섰다.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김정호 특임교수, 한성대학교 무역학과 김상조 교수가 각각 보수 측과 진보 측을 대표해 발제자로 참여했다. 또한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신광식 겸임교수, 한국경제연구원 김현종 연구위원, 2.1연구소 이계안 이사장,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박경서 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은 경영권 승계 과정 중 일어나는 총수일가의 사익추구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보수 측 김현종 연구위원과 진보 측 이계안 이사장은 기업이 사익 추구를 위한 가족승계를 하기보다 기업이 존속할 수 있도록 시장상황에 적합한 경영 승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견해 차이를 드러냈다. 발제자들과 토론자들 중 보수 측은 소유경영체제의 대안 없이 경영권 승계를 막는 것에 반대하며 가족경영자의 참호구축으로 무능한 경영자를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세우는 반면 진보 측은 총수일가가 기존의 CEO를 대신해 지주회사 이사회 의장을 맡아 성과를 평가, 관리하며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 왼쪽부터 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김상조 한성대학교 무역학과 교수, 신광식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보수 김정호 “오너 2, 3세에 경영권 승계할 수밖에”

보수 측 김정호 교수는 재벌의 경영권 세습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오너 승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오너 경영을 부인한다면 종업원이 CEO를 선정하는 방식이나 정부가 CEO를 선정하는 방식이 가장 가능성 높은 대안이나 이것이 오너 2, 3세 경영보다 더 못할 것이다”라며 “노동자 주주 기업은 주주들끼리의 대립이나 무임승차 문제가 발생해 좋은 경영성과를 내기 어렵고 정부가 지배하는 공기업 역시 사기업에 비해 경영성과가 낮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누가 기업의 경영권을 승계한다고 해도 창업을 해서 성공한 1세대 기업가만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며 “그러나 2, 3세 승계의 폐해만 문제로 삼고 규제할 경우 준비도 없이 다른 제도가 들어와 더 큰 폐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경영권 승계 시 적용되는 상속세할증 30%제도를 개선해 경영권 상속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제시했다.

김 교수는 “상속세 최고 세율 50%에 경영권 상속 할증 30%를 더하면 65%가 되는데 이는 거의 몰수에 가까운 세율로 이것을 전부 낸다면 경영권의 승계를 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의 경영권 시장과 한국인의 낮은 집단적 의사결정 능력을 생각할 때 경영권 상속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조세 유예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그는 오너 2, 3세들도 경영권 승계 이전에 대중의 지지를 얻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갑자기 이뤄지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영권 승계는 더욱이 능력 없는 애송이가 대권을 세습한 것으로 비쳐진다”며 “기업의 경영권을 승계하려는 생각이 있다면 승계 훨씬 이전부터 자신이 단순히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오너 2세, 3세가 아닌 능력을 가진 사람임을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무능한 경영인이 퇴출될 수 있도록 상대기업의 동의 없이 기업을 인수, 합병하는 적대적 M&A시장이 작동해야 대주주가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김 교수는 “능력이 없거나 부도덕한 전문경영인은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며 “정부의 기득권만 포기한다면 대주주가 없는 기업인 KT, POSCO, KT&G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적대적 M&A시장이 과연 가능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진보 김상조 “3세 총수일가는 이사회 의장 역할 해내”

진보 측 김상조 교수는 기업가의 역할은 해야 할 일에 역량을 집중하고 해서는 안되는 일을 관리하는 것으로 재벌의 경영권을 ‘소유경영체제냐 아니면 전문경영인체제냐’라는 식의 이분법적 구도로 나누는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CEO에서 이사회 의장’으로의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시기에 상당수의 그룹이 급격한 구조조정으로 해체됐으나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에는 지연되는 구조조정으로 인해 금호아시아나, STX, 동부, 현대, 동양, 웅진, 대한전선 등의 그룹이 구조조정 중에 있거나 이미 해체됐으며 그룹 부실은 만성화·악성화되고 있다”며 “한국의 재벌은 최상위 재벌 및 그로부터 계열분리된 친족그룹들만에 의해 지배됨으로써 기업가정신과 활력이 침체되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1987년부터 2015년까지 29년간 30대 그룹에 한번이라도 포함됐던 그룹은 총 77개로 2015년 30대 그룹은 47개 그룹이 30대 그룹에 포함됐다가 탈락한 것이다. 또한 30대 그룹 등재 햇수가 11~18년인 그룹이 총 19개인데 이들 중 상당수는 1990년대 이후 모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된 친족그룹들이며 등재 햇수 19~25년 및 27년인 그룹은 하나도 없고 26년과 28년인 그룹은 각각 하나뿐이다.

김 교수는 “결론적으로 30대 그룹도 일부를 제외한다면 안정적 위상을 유지하기는커녕 부침과 명멸을 계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재벌의 위상도 불안정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자본주의의 동태적 발전은 기업가와 은행가의 상호작용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조지 슘페터의 <경제발전론>을 인용하며 현재는 진정한 은행가의 출현이 지체되고 있어 그 결과 기업가정신이 소멸됐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왜곡된 경제환경 속에서 재벌그룹은 총수일가의 지배력 유지·승계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기업가정신을 상실함은 물론 새로운 기업가의 출현을 방해하는 폐해를 유발하고 있다”며 “일감 몰아주기, 회사기회유용 관행은 여전하고 오너 2, 3세의 부를 그룹 지배권으로 이끌기 위한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규율은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그룹 경영권의 유지·승계와 관련한 총수일가의 의사결정 권한과 이에 따른 책임의 괴리는 크다”며 “총수일가의 경영권 유지 욕망이 신속한 구조조정을 저해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한편으로는 과소규제의 사각지대를, 다른 한편으로는 과잉규제의 경직성을 해결하는 방향의 법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법과 관련한 개선 방안으로 △연결회계상의 ‘지배’ 개념에 의한 ‘기업집단’ 정의 도입, △지배주주의 ‘공정성 의무’ 도입, △소액주주의 정보권 및 다중대표소송권 도입 등이 있다”며 “공정거래법과 관련한 개선 방안으로는 △기업집단의 조직형태별 규제격차 해소 △대규모 기업집단의 ‘대표회사’ 지정 및 ‘그룹 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의무 도입 △기업분할, 계열분리 명령제 도입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어 “구조조정관련법과 관련한 개선 방안으로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및 주채무계열제도 개선 △ 통합도산법에 기업집단법적 요소 도입이 필요하다”며 “재벌 3세들이 자신과 그룹, 국민경제를 위해 이사회 의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보수 신광식 “경영 권한 전문가에게 넘겨야”

신광식 교수는 한국의 재벌들은 소유권, 지배권 괴리가 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지배의 사적 이익’을 누리고 있다고 비판하며 가족경영자의 참호구축으로 무능한 경영자를 대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가족에게 경영권 승계하는 것이 소유자-경영자 간 대리인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기업의 성과를 높일 수 있지만 경영자의 사익추구로 지배주주-여타 주주들 간 대리인 비용이 증가해 기업가치가 하락하는 단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 유럽의 가족기업들에 대한 실증연구 결과 후손의 경영권 승계는 빈번히 기업성과 하락을 초래하며 차등의결권 주식, 피라미드 등 가족지배 강화를 위한 장치들은 기업성과를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 교수는 “미국에서의 상장기업 가족 지배에 관한 실증연구에 따르면 가족에 경영권 승계를 할 경우 가족이 아닌 이에게 경영권을 승계한 기업대비 실적은 21% 하락했다”며 “캐나다 기업들에 대한 연구 결과 역시 상속자 지배기업의 실적이 저조하고 상속자 기업들은 여타 기업들보다 연구 개발 투자를 덜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는 소유권-지배권 간 괴리를 줄이고 지배의 사적이익을 축소함으로써 소유자-경영자 간 대리인 문제를 최소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가족경영자의 참호구축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문경영자에게 진정한 권한을 부여하고 지배주주는 전문경영자들에 대한 경영감시에 전념해야 한다”며 “△피라미드 지배와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 강화, △차등의결권·황금주 도입 반대, △사익편취 규제 강화, △투자자 보호와 소액주주 권익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왼쪽부터 박경서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이계안 2.1연구소 이사장.

진보 박경서 “부당한 혜택 줄이고 책임감 높여야”

고려대학교 박경서 교수는 한국에서 가족승계가 가능한 이유는 순환출자와 피라미드출자를 통한 계열사의 우호적 지분 확보가 가능하고 일감몰아주기와 회사기회편취 등으로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한국의 경우 전문가경영보다는 가족경영을 선호하지만 전문가경영과 가족경영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은 경영구조인가에 대한 판단은 어렵다”며 “그러나 국내기업의 경영승계가 대부분 부적절한 수단을 통해 축적된 부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기에 이를 규율할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오너가족의 지분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무능한 후계자가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기회손실의 부담은 높지 않다”며 “그러나 사적혜택에 대한 제재의 부담이 크지 않아 가족승계를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가족승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승계와 관련된 부당한 혜택을 줄이고 경영권행사에 따른 책임은 높이는 정책방향이 전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구체적인 제도개선 과제로 △자기거래 성격의 거래에 대한 무관용정책 추진 △자회사 보유 요건 상향조정 등 지주회사제도 개선 △일정 지분 이상 주주의 이사추천권 도입 등 이사회의 규율기능 강화 △순환출자구조의 점진적 해소 및 피라미드구조의 단계적 축소 △기관투자자의 외부견제기능 강화 등을 제시했다.

그는 “기업의 성장을 막는 위주의 정책은 기업경영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며 “거래소 상장규정으로 지배구조모범규준의 원칙준수, 예외설명 제도를 도입하는 연성규제 방식 등 기업에 선택기회를 제공하고 시장의 투자자들이 이를 판단하도록 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보수 김현종·진보 이계안 “시장에 따른 선택 필요”

한구경제연구원 김현종 연구위원과 2.1연구소 이계안 이사장은 경영권 승계 문제를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데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김 연구위원은 “도요타도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다 실적이 나빠지자 총수가 직접 경영했다”며 “이처럼 시장 상황에 따라 경영권 승계가 이뤄저야 한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대기업이 정치적 영향이나 사회적 흐름에 따라 운영체제를 바꾸는 경향이 있는데 대주주가 있을 경우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인 기업가치를 생각하며 경영하기 때문에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기업보다 가족경영이 좋은 실적을 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이사장은 바람직한 경영 승계 제도에 대해 과거 현대차 사장으로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접근했다.

이 이사장은 “과거에는 정주영 회장의 뜻에 따라 정세영, 정몽구 회장 등 승계가 이뤄졌다”며 “그러나 이제는 회사 성장에 전문경영과 총수경영 가운데 유리한 것을 시장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조원의 완전 고용을 보장하는 것, 즉 그룹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은 사장이 아니라 시장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 사회를 맡은 연세대학교 박상용 교수는 “재벌의 승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의 의견이 조금씩 다르지만 계속해서 이러한 토론의 자리가 마련된다면 해결방법을 합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며 바람직한 재벌의 승계 과정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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