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이제 곧 연말연시 시즌이 시작된다. 연말연시가 되면 갖은 송년회를 비롯해 많은 술자리가 생긴다.(물론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서, 연말연시 분위기가 무르익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연말연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과음 풍토를 비판하곤 한다.

과음을 경계하는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다산 정약용의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 21권, 「서(書)」에 나오는 ‘유아(游兒)에게 부침’이라는 글이다. 이 글은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글들 중 일부로서, 전라남도 강진에 유배돼 있던 정약용이 아들들을 그리워하고 걱정하면서 쓴 편지글이다.

‘유아에게 부침’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가운데 과음을 경계하는 글이 나온다. 그 내용을 보면, 강진에 온 큰 아들에게 동생이 자신보다 주량이 세다는 말을 듣고, 정약용의 장인, 즉 두 아들의 외할아버지와 정약용 자신이 술을 절제했던 이야기를 편지에 쓴다. 그리고 옛 성현의 글에 나오는 술을 절제하는 이야기, 그리고 과음이 몸에 미치는 악영향과 술주정의 추태들을 제시하면서 술을 절제할 것을 당부한다.

여기에 나오는 ‘소가 물을 마시듯 마시는 저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는 적시지도 않고 곧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무슨 맛이 있겠느냐.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다.(彼牛飮者。酒未嘗沾脣漬舌。)’라는 대목이 이맘때쯤 많은 사람들에게 인용된다.

이 부분의 결론은 술을 아예 마시지 말라기보다는 ‘정신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 정약용이 관리였을 때 정조에게 상으로 옥필통에 가득 담긴 술을 하사 받고 몇 잔을 이른바 ‘완샷’을 했으나 정신을 잃지 않았고, 이후에도 정조가 주는 술을 다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이 편지에 함께 담겨있다는 점이 그 근거이다.

나아가서 ‘유아에게 부침’의 주된 내용은 술에 관한 것이 아다. 그보다 더 많은 애용은 공부를 열심히 할 것, 학문의 자세(심지어는 정약용은 둘째 아들이 닭을 키우는 것을 칭찬하면서, 닭을 키울 때도 “독서하는 사람이 닭을 키우는 자세”에 관해 언급한다.) 등에 관한 것이며, 이 가운데 술을 절제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요즈음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다양하다. 앞에서 언급한데로 많은 사람들이 연말연시에 술을 자제하자는 말을 하려고 이 부분을 인용한다. 20~60대 남성이 주된 회원인 한 사이트에서 이 글이 올라왔는데, 댓글에는 ‘아버지인 정약용의 잔소리가 참 심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주량 자랑과 공부 자랑을 잔뜩 하다가 아들에게 술을 자제하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한 정약용이 아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얼마나 성장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아들을 마냥 어린아이로 취급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막상 필자의 눈길을 끈 부분은 ‘너처럼 배우지 못하고 식견이 좁은 폐족(廢族)의 한 사람으로서 못된 술주정뱅이라는 이름이 더 붙게 된다면 앞으로 어떤 등급의 사람이 되겠느냐.(以汝之不學寡識廢族之人而添之以酒妄之名。將成何品人耶。)’라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에서는 정약용이 이렇게 잔소리를 한 이면에 아들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 그리고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한을 엿볼 수 있었다. 정조 대에 뛰어난 학문적 역량과 이것을 알아 본 정조의 배려로 승승장구했던, 오늘날에는 조선 유학을 집대성한 최고의 학자로 꼽히는 정약용이지만, 정조가 승하한 이듬해 1801년(순조 1) 신유사화가 일어나면서 그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이 참화를 당했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정약용은 그해 2월에 장기로 유배됐다가 11월에는 강진으로 옮겨졌으며, 이후 18년 동안의 기나긴 강진 유배생활을 했다. 즉 고속승진이 보장된 최고의 지위에서, 무군무부(無君無父)의 사교(邪敎) 신봉자, 반역자로 몰려서 유배를 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들을 ‘폐족(廢族)의 한 사람’이라고까지 지칭하면서 술을 자제하라고 한 정약용의 마음에는 아들들에 대한 미안함과 나락으로 떨어진 자신의 모습에 대한 한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말을 한 정약용의 속은 까맣게 타지 않았을까?

정약용과 그 아들들의 상황은 요즈음 말로 바꾸면 ‘금수저’에서 한 순간에 ‘흙수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흙수저들은 연말연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조차 ‘자제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2015년이 가는 것과 2016년 병신년(丙申年)이 오는 것은 금수저에게나 흙수저에게나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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