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삼국지인물전> 외 5권

【투데이신문 김재욱 칼럼니스트】 중국 역사에 정통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진시황(秦始皇) 석 자는 안다. 전국을 통일한 공은 있으나, 지식인들의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농업서와 점술서를 제외한 책을 불사르도록 한 ‘분서(焚書)’사건과 유학자들을 생매장 해버린 ‘갱유(坑儒)’ 사건은 진시황을 상징하는 단어로 역사에 전해지고 있다. 그 뿐인가. 만리장성 공사에 수많은 백성을 동원해서는 짐승처럼 부려먹었던 일 역시 폭군 진시황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결국 살인적인 노동착취를 이겨내지 못한 진승과 오광을 비롯한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이 반란을 신호로 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면서 진나라는 몰락했다.

교수들은 올해 우리나라 상황을 대변하는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라는 말을 선정했다. 사람들이 ‘어둡고 용렬하여’ 세상에 ‘도덕’이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최고의 지성답게 절묘한 말을 잘 골라냈다고 본다. 필설로 다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올 하반기 우리나라를 강타한 이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아닐까 한다. 역사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실리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와 관계없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역사를 한 가지로 묶어 버리겠다는 발상 자체가 ‘분서갱유’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반민주적인 일을 버젓이 할 수 있는 바탕에는 박근혜 정부와 여당의 ‘오만불손함’과 ‘불통’이 깔려 있다.

정부와 여당만 ‘불통’했다면 그나마 낫다. 이 ‘불통’은 ‘혼용무도’를 외친 지식인들, 더구나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에 비분하고 탄식하는 그 지식인들한테도 있기 때문에 절망적이다. 자신들은 몸으로 저항하지 않으면서 저항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탓하고, 동시에 불통하는 정부를 고작 ‘성명서’ 한 장으로 비판하고는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자위한다. 자기네들만 아는 언어로 자기네들 사이에서만 고담준론을 일삼으면서 유명 인사들이 폼 잡고 신년휘호를 갈기듯 ‘혼용무도’ 네 글자만 던져 놓고는 지식인의 사회에 대한 책무를 다 했다고 여긴다. 자기네들은 이것을 사회와의 ‘소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대중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 하나의 ‘불통’이라고 여길 뿐이다. 이념과 정치성향에 관계없이 불통의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힘없고, 덜 배운 시민들이다. 이런 점에서 ‘혼용무도’는 올해 우리나라 사회 전체에 ‘불통’이 유행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예언해 주는 상징적인 말이라 할 수 있겠다.

「진시황(秦始皇)」

‘분서’는 너무 졸렬한 계책 이었으니
백성이 어찌 어리석어졌겠는가.
끝내 진시황의 무덤을 파헤친 사람들은
오히려 시와 예를 익힌 선비가 아니었다.

焚書計太拙(분서계태졸) 黔首豈曾愚(검수기증우)
竟發驪山塚(경발려산총) 還非詩禮儒(환비시례유)

조선의 사회시인 권필(權韠,1569-1612)의 시다. 희망이라고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시기를 산다. 정치인들을 믿을 수 없고, 내 목소리를 대변해 줄 것으로 기대했던 지식인들한테도 이제 기대할 거리가 많지 않아졌다. 이제 믿어야 할 사람은 나보다 힘이 있는 권력자가 아니고, 나보다 많이 배운 지식인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고 ‘우리’라고 믿는다. 한 권의 역사 교과서로 우리의 생각을 ‘한 가지’로 묶으려고 해 봐야 우리는 ‘어리석어지지’ 않는다. 공영방송과 종편에서 여당의 반대편을 줄기차게 ‘종북’으로 몰아도 흔들리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입을 막아도 진실은 바람이 되어 우리한테로 불어 올 것으로 믿는다.

분서갱유를 겪고도 지식인들은 진시황의 무덤을 파헤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덤을 파헤친 사람들은 이름 없는 백성들이었다. 현대판 분서갱유를 겪으면서도 지식인들은 누구하나 앞장서지 않았다. 오히려 정부에 대항한 사람들은 어린 학생들이었고, 덜 배운 우리들이었다. 역사에서 얻는 교훈은 이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 줄 짐작한다. 옛날 그들의 손엔 곡괭이가 있었고, 지금 우리의 손엔 투표용지가 있다. 내년엔 반드시 우리의 힘으로 진시황의 무덤을 파헤쳐야 한다.

<올 한 해 ‘김재욱의 평천하’를 아껴주신 투데이신문 독자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 해 동안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재주의 부족함을 절감해 연재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독자여러분의 격려에 힘입어 이렇게 인사말씀이라도 드립니다.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성원을 보내 주시리라 믿습니다. 더 열심히 써서 좋은 글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남은 올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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