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누구를 위한 명분과 실리인가?
[칼럼] 누구를 위한 명분과 실리인가?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5.12.3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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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2015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우리에게 “한-일간 위안부 문제 합의”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합의 내용과 그 이후 과정을 듣기 전까지 이 소식은 성탄절과 2016년 병신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이 소식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위안부로 끌려갔던 분들과 국민들에게 선물같은 소식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적어도 필자에게는 일단 기쁜 소식으로 들렸다.) 그러나 위안부 할머니들과의 사전 양해가 없었다거나, 아베가 사과했다는 얘기만 있고 공식적으로 아베가 사과하는 장면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철거하는 것이 전제가 되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전해지면서 이 소식은 선물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소식을 듣고 필자는 예전에 본 지면으로 소개했던 기유약조(己酉約條)가 생각났다.(자세한 내용은 본 칼럼의 ‘실리와 명분을 모두 얻은 기유약조와 한일국교정상화 50년’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 칼럼을 통해서 필자는 한일외교정상화가 얼마나 실리도 명분도 얻지 못한 것이었는지를 기유약조의 사례와 비교했다. 그런데 당장에 보이는 것만 봤을 때는 이번 합의 역시도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는 국정 운영자들의 잘못된 명분 쌓기가 얼마나 큰 후폭풍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알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인조가 반정(反正)을 성공시킨 뒤 책봉(冊封)을 받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조선시대 광해군과 인조반정, 그리고 인조대의 치세는 아직까지도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특히 인조반정의 경우 광해군이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유폐시킨 것이나 명(明)과 후금(後金)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펼친 것에 대한 반발은 명분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는 권력에서 소외된 서인들의 재집권을 향한 욕망이 더 크다는 것이다.

원인이야 어찌되었건 반정을 성공시킨 인조와 서인 세력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명으로부터 책봉(冊封)을 받는 것이었다. 건국 이후 사대(事大, 큰 국가를 섬김)를 대중(對中) 외교 방식으로 견지해왔던 조선의 입장에서 왕위를 인정받는 책봉은 왕실의 권위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고려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 장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른 태종과 세종,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세조 등은 모두 책봉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책봉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영춘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명 왕조는 인조의 반정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다고 한다. 인조반정은 군사를 동원해 왕위를 빼앗은 것으로 인식돼 있었고, 이는 종주국 명의 권위를 손상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도 그럴 것이 성리학의 명분론과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으로 무장돼 있는 명에서는 명의 책봉을 받은 왕이 무력에 의해 쫓겨난 상황을 왕위 찬탈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광해군이 살해되었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유포돼 여론이 악화되었다. 특히 이영춘은 임진왜란이 종전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반정 세력이 왜군을 끌어들였다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소개하면서, 그 결과 반정 이후 인조가 책봉을 받는 것에만 6개월이나 걸렸고, 명 조정에서도 인조의 책봉을 놓고 난상토론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인조가 명의 책봉을 받는 것은 결과적으로 인조를 비롯한 지배층에게는 이익이 되는 일이었다. 반정이 정당성을 부여받았고, 특히 이괄의 난이 일어나는 등 반정 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책봉을 받은 것을 계기로 정국을 빠르게 안정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배층에게만 이익이 되는 일이었다. 바로 이 책봉이 병자호란(丙子胡亂)의 또다른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후금과 대립하고 있던 명의 입장에서 이전까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했던 조선을 적극적으로 명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인조의 책봉이었다. 인조의 책봉을 핑계로 명은 조선 정부에 적극적으로 명의 편에서 후금에게 저항할 것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전까지 평화로웠던 조선과 후금 사이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병자호란 발발의 한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상처를 입었다.

흔히 협상에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명분과 실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할 것이다.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누구의 명분과 실리냐를 고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10억엔의 기금(배상금이 아니다)을 조성하고 아베가 사과했다는 ‘이야기만 들은’, 그리고 당사자의 양해가 없는 이번 한일간의 합의는 누구를 위한 명분과 실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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