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금수저 vs. 흙수저 생존 게임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18세기 후반 근대 자본주의가 꽃피기 시작하면서부터 부의 불평등은 고착화됐다. 이후 부의 불평등은 노동과 자본의 계급 간 싸움으로, 나아가 이념적 다툼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현재, 부의 불평등은 수저계급론이라는 새로운 계급론을 만들어냈다.

<월간잉여>의 최서윤 편집장은 ‘수저게임’이라는 게임으로 현실을 돌아봤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뉜 세상에서 열 턴 동안 살아남는 현실반영 생존게임. 지난해 12월 26일 열린 수저게임 체험단 모집 공지에 지원했지만 뜨거운 인기에 선착순에서 밀려난 기자는 굴하지 않고 참관해 ‘그들의 사회’를 지켜봤다.

   
▲ 금수저와 흙수저의 갈림길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뉜 참가자들

10명의 참가자는 2명의 금수저와 8명의 흙수저로 나뉘었다. 흙수저는 유동자산을 뜻하는 칩 10개가 전부였지만, 금수저들은 거기에 주택 3채가 더해졌다.

승리조건은 열 턴간 흙수저는 생존하는 것, 금수저는 자산을 증식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국고가 바닥나지 않아야 한다.

첫 턴에서 참가자들은 대학 진학과 취업의 갈림길 앞에 섰다. 대학은 수업료로 칩 1개가 네 턴 동안 소모되지만 졸업하면 칩 2개를 수입으로 얻을 수 있다. 취업은 칩 1개의 수입을 처음부터 끝까지 받는다. 흙수저 4명은 일터로, 나머지 6명은 대학으로 향했다.

첫 턴이 종료되고 자산 현황이 공개됐다. 대학 진학한 흙수저들은 수업료와 임대료로 칩 2개가 빠져나갔다. 취업을 택한 흙수저들은 번 돈을 고스란히 임대료로 냈다. 하지만 자택을 제외하고도 2채의 집이 있는 금수저들은 모두 대학에 진학했음에도 불구하고 임대료로 칩 2개를 얻어 자산이 늘었다.

무상임대·종부세 통과…이어진 금수저의 응징

두 번째 턴이 시작됐다. 이번 턴은 칩 1개를 소모해 법안을 낼 수 있는 시기다. 흙수저들은 다같이 무상임대를 외쳤다. 더불어 금수저들에 대한 견제로 종합부동산세도 제시됐다. 금수저들은 반발했지만, 법안은 8대 2로 통과됐다. 이제 집 2채 이상을 소유한 금수저들은 종부세를 내게 됐다.

세 번째 턴에는 금수저들이 결탁해 흙수저 한 명을 감옥에 보낼 수 있다. 금수저들은 주저하지 않고 권한을 행사했다. 그들은 무상임대와 종부세를 발의했던 참가자의 친구를 철창 안으로 보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표면적으로는 경제적으로 자신들에게 대적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사람을 꼽았다고 금수저들은 말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흙수저들은 없었다. 흙수저들은 세 턴 뒤에 또다시 행사될 금수저의 합법적인 폭력에 떨었다.

   
▲ 흙수저와 금수저는 공존할 수 있을까?

질병에 대한 공포…결혼이 답이다?

더불어 이번 턴에는 질병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했다. 무주택자는 네 번째 턴부터 질병에 걸린다. 그렇게 되면 치료비로 칩 1개를 잃고 이후 한 번 더 질병에 걸리면 사망한다.

이 같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은 주택 구매 열풍으로 이어졌다. 취직한 흙수저들은 전 재산을 털어 집을 샀고, 집값인 칩 10개가 없는 대학간 흙수저들은 서로의 자산을 모아 주택을 구매하기 위해 정략결혼에 나섰다. 다행히 이 세계에서는 결혼에 특별히 돈이 들지 않았고 동성결혼도 허용됐다. 그 결과, 무주택자는 감옥에 간 흙수저를 제외하고 단 1명이었다.

마음이 급해진 무주택 흙수저는 법안을 통해 질병 문제를 해소하려 했다. 의료보험, 질병보조금, 병원 건설, 집값 인하 등 다양한 방안들이 나왔지만 통과되진 못했다. 그리고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던 세 번째 턴의 법안은 해당 턴의 테마였던 질병에서 많이 벗어나 법안을 발의해서 통과되면 인센티브로 칩 2개를 받는 것으로 결정됐다. 지난 법안의 찬반대결에서 금수저 vs. 흙수저의 대결구도가 무주택자 vs. 유주택자로 변한 것이다.

마무리되는 결혼…자산보다 의결권 택한 금수저

네 번째 턴이 시작되고 무주택 흙수저 1명은 병에 걸렸다. 하지만 그는 이를 가엾게 여긴 금수저의 간택을 받았다. 전 턴까지 질병에 공포에 떨던 그는 더 이상 없었다. 친구 대신 감옥에 다녀온 흙수저도 다음 턴에는 질병에 걸릴 위기였으나, 친구는 그의 고초를 잊지 않고 미래를 책임졌다. 나머지 금수저도 짝을 찾음으로써 참가자 전원이 가정을 꾸렸다.

금수저들은 서로 합쳐 자산을 증식하는 길 대신 의결권을 늘리는 길을 택했다. 결혼하면 2명이 1개의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 전원이 결혼한 현시점에서 기존 8대2였던 흙수저와 금수저의 의결권 비율은 6대4로 변했다.

이번 턴에는 랜덤이벤트가 일어났다. 금수저들에 대한 세무조사가 벌어졌고 그들은 칩 10개씩을 잃었다. 금수저들과 흙수저들의 차이는 점차 줄어들었다.

   
▲ 이날 참가자들이 남긴 법안과 기록들

금수저의 폭력에 대한 저항

다섯 번째 턴이 찾아왔고 대학에 간 참가자들도 본격적인 사회생활에 나섰다. 다음 여섯 번째 턴은 금수저들이 다시 흙수저 1명을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시기다. 이번 법안은 이들 금수저의 합법적 폭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투옥금지법이었다. 예상외로 법안은 금수저들의 저항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다만 지난 턴에서 금수저의 간택을 받은 흙수저는 나직하게 ‘생각들 잘하시라’는 말을 남겼다. 더 이상 질병에 떨던 무주택 흙수저는 없었다.

여섯 번째 턴이 이어졌다. 원래 금수저들의 합법적 폭력이 행해지는 턴이었지만 지난 법안으로 인해 그 권한은 상실됐다. 대신 랜덤이벤트가 다시 일어났다. 이번에는 취업난이 들이닥쳤다. 모든 흙수저들은 직업을 잃었고 금수저들은 1명씩 자신이 고용주가 돼 이들을 구제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각자 자신의 아내와 남편을 고용해 자산을 지켰다.

취업난 속 부의 재분배

취업난이 있었지만 대다수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대학 나온 흙수저들이 손해를 보긴 했지만 그들은 이미 취업한 흙수저나 금수저와 함께하고 있었다. 문제는 한 커플이었다. 둘 다 대학 나온 흙수저, 주택 구매를 위해 제일 먼저 결혼에 골인한, 자산 증식이 단 한 턴에 불과했던 커플이다.

이번 법안 발의는 그간 쌓인 국고의 재분배에 초점이 맞춰졌다. 다만 취업난으로 타격을 입은 둘 다 대학 나온 흙수저 부부는 자산 상위 1위 부부의 부를 재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격론 끝에 결국 합의된 법안은 흙수저 부부에게 기본소득으로 칩 2개씩을 더 지급하고 국고가 부족할 경우 자산 상위 1위 부부의 자산을 세금으로 걷는 안이었다.

   
▲ 이날 수저계급론이 사라진 사회를 만든 주역들

생존목표가 사라진 세계…‘수저계급론’이 사라진 사회

게임은 종반을 향했다. 여덟 번째 턴이 왔고 랜덤이벤트로 북한의 도발로 인해 흙수저들이 빨갱이로 몰려 모두 죄수복을 입게 됐다. 이어지는 턴에서 법안을 발의할 수 있는 건 금수저 2명뿐. 그러나 이미 모두 생존조건을 충족시킨 뒤였고 금수저들 역시 더 욕심부리지 않았다. 지난 법안에 이어 다시 국고의 재분배에 나섰다.

이윽고 찾아온 마지막 턴. 마지막 법안 발의를 앞둔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만든 이 세계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법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회안전망 구축, 계급론 폐지 등의 논의가 이뤄졌고 결국 흙수저와 금수저 카드를 반납하면서 이들의 사회에서는 수저계급론이 사라졌다.

이날의 금수저들은 자신들의 특혜를 내려놓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이날의 흙수저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저계급론이 사라진 사회를 남겨둔 채 이날의 세계는 막을 내렸다.

게임이 끝나고 한 참가자가 말한 것처럼 이 게임은 흙수저들의 생각에 따라 결말이 바뀐다. 두 번째 턴에서 수적 우세를 앞세워 금수저들에게 족쇄를 걸었던 흙수저들은 바로 그다음 턴에 무주택자와 유주택자로 분리됐다. 대학 졸업 여부나 자산의 크기가 그들을 가르는 시기도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해서 다같이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아갔고 거기엔 금수저들의 조력도 함께였다. 비록 그들은 이날 처음으로 머리를 맞댔고 때론 대립하기도 했지만, 3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하나의 공동체 사회를 이룩했다.

그들이 했던 것은 침묵하지 않는 것, 그리고 끝까지 대화하는 것들이었다. 현재 수저계급론 아래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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