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억과 공동체 재생으로서의 장례식
[칼럼] 기억과 공동체 재생으로서의 장례식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1.1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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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약 1년 전 필자는 본 지면을 통해 「1990년대 복고풍의 의미」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은 적이 있다. 그 칼럼에서 필자는 1990년대의 문화를 즐겼던 당시 10대 후반~20대, 즉 지금의 30대~40대가 문화 소비의 중심이 되고, 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세대가 되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경향은 작년 말부터 tvN에서 방송 중인 「응답하라 1988」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응답하라 1988」은 이전의 시리즈 전작인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가 각각 첫사랑과 청춘을 조명한 것과는 다르게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 이야기 외에도 이웃과의 정과 가족애도 함께 담고 있기 때문이다.(김승현, 「’응팔’, 삶의 무게 짊어진 어른들의 동화」, 『엑스포츠』 2016년 01월 17일 기사) 특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당시 미성년자~40대까지의 다양한 세대의 인물들이 거의 비슷한 비중의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지금의 20대~60대까지 모두의 공감이 가능할 것이다.

필자가 「응답하라 1988」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장면 중 하나는 바로 성덕선(혜리 분)의 할머니의 장례식 장면이었다. 『미디어스』에서 소개한 그 장례식 장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덕선이 너무나 좋아하는 할머니의 짧은 방문 그리고 이어진 갑작스러운 죽음. 항상 티격대며 싸우기만 하던 언니 보라는 차분하게 어린 두 동생을 데리고 할머니의 집으로 향한다.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어린 동생들을 다독이며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당황한다. 아이들에게 다가온 풍경은 그들이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숙하고 애도하며 눈물이 가득할 것으로 여겨졌던 상가집이 아니라 왁자지껄한 그곳에서 할머니의 죽음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덕선이 가장 걱정했던 아빠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덕선의 눈에는 자기 자랑하기 바쁜 친척 어른들까지 보였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면서 덕선은 아빠의 모습에 배신감까지 느꼈다.

밤을 새우고 그렇게 할머니를 지키던 아버지의 진짜 모습은 마지막 날 미국에서 힘들게 온 큰 아빠의 등장에서였다. 장남인 형이 오지 않은 상가집에서 애써 슬픔을 참아가며 상주 역할을 해야 했던 아빠와 고모들. 믿었던 아빠에게 배신감까지 가졌던 덕선은 뒤늦게 온 형을 붙들고 하염없이 우는 아빠와 고모들을 보면서 그들은 사이보그가 아니라 애써 눈물과 아픔을 참았고, 그렇게 그들은 어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단 사실을 깨닫는다.(지아미, ‘응답하라 1988 2회- 혜리 남편 찾기와 할머니의 장례식, 웃음 한 모금에 감동 한 사발’, 「[블로그와] 자이미의 베드스토리」, 『미디어스』 2015 11월 18일자 참조)

이 장면이 주목이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집에서 치르는 장례식을 재연했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할머니의 장례를 집에서 치르는 것을 목격했고, 공교롭게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1988년이었다. 지금이야 장례식장이나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는 것이 보편화되어있지만 과거에는 집에서도 장례를 많이 치렀다. 장례가 치러지는 집의 대문에는 ‘근조(謹弔)’라고 써 있는 등이 걸렸고, 지금은 ‘장의사’라는 사람이 장례의 보조 역할을 담당했다. 집에서 치르는 장례를 치르는 것이 지금은 조금은 어색하고 상상만 해도 번거로운 장면일 것이다. 그것을 재연한 것 자체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지향점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장례식의 의미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앞의 인용문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식을 소개하고 자랑하기 바쁜 아버지, 서로 반지를 자랑하는 고모들, 왁자지껄 술판을 벌이고 화투를 치는 어른들의 장면이 주는 의미를 잘 소개하였다. 그것 외에도 장례식이 가진 의미 하나를 추가한다면 바로 ‘해체된 듯 보인 공동체의 재결집’이라는 것이다. 종교학, 사회학, 인류학 등에서는 의례가 특정한 집단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재연하고, 그것을 다시 체험하고 기억하게 함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다시 살려내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극중에서도 덕선의 아버지는 그의 남매들이 알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자신의 자식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 갔던 덕선의 큰아빠가 돌아오면서 아빠-큰아빠-고모들은 그때에 비로소 자식으로서의 슬픔을 분출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그 집안사람들이 다시 한 번 가족이며 친족임을 인식하는 모습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비단 장례식뿐만 아니라 각 종교의 의례, 학교의 개교기념일, 한 단체의 창립기념일, 국가 공휴일 등은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

잘 만들어진 방송이나 영화, 연극, 오페라, 음악, 예술작품 등은 사람들에게 감정적 감동을 주는 것부터 학문적 의미를 재고하게 만드는 것까지 다양한 영향력을 준다. 반대로 이러한 영향력을 주는 것은 다양한 의미의 긍정적 평가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이 막판에 남편 찾기와 사랑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뒷심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렇지만 그 전에 보여준 1988년의 기억의 재생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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