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자 이희진

【투데이신문 이희진 칼럼니스트】지난 연말 일본과 협상이 타결된 이른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말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에서는 역대 대한민국 어떤 정부도 나서지 못했던 협상을 이루어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당 소속의 젊은 개혁 선두주자라는 이준석씨 조차 방송에서 ‘역대 어느 정권도 이루어내지 못한 협상을 타결 지었다’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더구나 협상타결 내용을 언론에 발표하면서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말이 들어간 점을 보면 더 이상의 협상을 하기도 곤란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런 말을 언론에 발표한 것을 보면 대한민국 현 정부는, 이른바 ‘위안부 문제’를 두고 더 이상 협상할 필요가 없다는 뜻을 내보인 꼴이 되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발표해도 좋을 정도로 완벽한 협상을 한 것일까? 아무래도 의문이 든다. 우선 청와대 자체에서 내놓았다는 협상의 원칙부터 지켜진 것 같지가 않다. 방송에서 지적한 바에 의하면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협상을 하겠다고 했다 한다. 그런데 피해당사자들이 이 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시위를 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첫 번째 원칙부터 지키지 않은 점은 분명하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협상인지도 의문이다. 대한민국 현 정부에서는 일본 측이 당시 ‘군이 관여했다’는 점을 인정하게 만든 것을 대단한 성과로 여기는 모양이다. 이를 인정받은 것도 나름대로 성과라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성과라 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아는 사람 다 아는 사실을 두고, 그동안 일본 측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우겨왔던 것일 뿐이다. 이를 마지못해 인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대한민국 입장에서 소득인 것 같지가 않다.

이것이 성과가 되려면, 최소한 이를 통해 피해자들이 실질적으로 얻는 것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피해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자기들 눈으로 뻔히 봐서 알고 있는 사실을 인정받았을 뿐, ‘그러니까 책임을 느끼고 배상해주겠다는 보장’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일본 측에서는, 자기들이 인정한 ‘책임’이라는 것이 ‘법적 책임’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했다 하니, 더 확인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결국 ‘군의 관여’라는 말이 들어갔다는 것 이외에 실질적인 성과가 있었다고 하기는 곤란할 것 같다.

그렇다면 10억 엔을 들여 재단을 만들어준다는 점은 어떨까? 재단이라는 것의 생리에 비추어 보면, 이런 재단 생겨봐야 대부분의 기금이 재단 자체를 운영하는 데에 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피해당사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지 않다. 또 이런 재단의 활동도 별 것이 없기 일쑤다. 대개는 먹물 들은 사람들 모여서 입에 발린 말이나 늘어놓고 연구비·발표비 명목으로 얼마 되지 않는 운영비까지 축내 버리기는 일로 끝내 버리는 일도 많다. 이런 일이 피해당사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그러니 우리 정부가 해결했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사실 이른바 ‘위안부 문제’에서 해결해야 할 본질은 비교적 간단하다.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해, 강제로 일본군에 끌려가 능욕을 당하고 인생을 망가뜨린 피해당사자들이 실질적인 사과와 배상을 받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피해당사자들에 대한 잘못 인정과 배상을 빠진 협상은 벌일 이유조차 없다는 뜻이 된다. 이에 비추어 보자면, 이번 협상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무엇을 했을까?

대한민국 현 정부 측에서는 나이가 많은 피해당사자들이 죽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려 협상을 벌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정작 피해당사자들에게 돌아간 것이 없는 셈이다. 그러니 이런 협상을 굳이 서둘러야 했다는 변명이 공허하게 들린다. 오히려 본질을 피해간 협상을 서두른 배경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상황이 되풀이 되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해 억울한 꼴을 당한 피해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것이다. 해방된 조국조차 자신들의 문제 해결에는 별 관심이 없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품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민주화’가 제법 진행된 90년대 이전에는 대한민국에서 피해당사자들이 피해 사실을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이와 같은 문제를 두고 일본과 협상을 벌였던 대한민국 정부의 발상부터 의심스럽다. 그동안 정권만 잡으면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에 대해서 말은 많았지만, 정작 피해당사자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한 내용은 보기 어렵다. 실제로 피해당사자들이 일본 측의 배상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이번에도 ‘군이 관여했다’는 단순한 사실 인정과 별 의미 없는 ‘유체이탈 화법’적 사과 이상의 것을 받아냈다고 보기 어려울 같다.

반면 이번 협상의 경우는 오히려 일본 측의 요구를 수용하는데 더 주력하는 인상까지 준다. ‘최종적’, ‘불가역적’이라는 말을 언론에 발표함으로써, ‘몇 번이나 사과를 해야 하는거냐’는 일본 측의 불만에 화답을 해준 꼴이 되었으니까. 더욱이 일본의 만행에 대해 압박의 상징으로 작용해왔던 ‘소녀상’ 철거에 대한민국 정부에 ‘해결’에 나서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일본 측의 입장에서의 해결에는 진척이 있었던 셈이다. 이러니 대한민국 정부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해결에 나선 것인지 헛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정치인의 생색내기를 위해, 이러한 문제를 두고 일본과 협상을 벌이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듣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이렇게 보면 일본과의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는 원인도 분명해지는 셈이다. 일본이야 가해자의 입장이니, 가급적 사실을 덮어버리려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대한민국 측에서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주도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역대 대한민국 정부 대부분은, 피해당사자들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이 나서서 생색내는 데에만 주력한 셈이다. 그러니 피해당사자들은 이런 협상 결과 못 받아들이겠다고 악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다. 일본은 일본 대로, 걸핏 하면 과거 들춰내서 ‘도대체 같은 일을 가지고 몇 번이나 우려먹자는 거냐’고 볼멘소리 할 빌미를 얻는다.

이런 꼴을 보면 박정희 정권 초기에 있었던 한일협정은 차라리 양반이었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때도 단돈 5억 달러에, 일본에 입은 피해 청구권을 팔아 넘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도 이때는 먹고 살기도 어려운 나라의 경제 개발에 필요한 종자돈이라도 마련해보려 했다는 변명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얻어냈다고 생색을 내는 10억 엔짜리 재단과 ‘군 개입 인정’이라는 한마디 문구가 그만한 가치라도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정권이 생색을 내기 위해 역사와 국민을 팔아넘긴 꼴이 될 것이다. 그것도 ‘최종적’이자 ‘불가역적’으로. 신년 초부터 예언(?)했던 역사문제에 대한 이적질이, 하필 일본을 대상으로 일어날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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