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제1216차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 평화의 소녀상

위안부 문제해결 위한 수요시위, 25년째 이어져
시민, 한일 간 위안부 문제 협정에 강력히 반발
초등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 참석 
“위안부 문제, 조속히 해결되길 간절히 소망”

【투데이신문 이주희 기자】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지난 3일 낮 12시,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렸다.

어느덧 제1216차를 맞이한 수요시위는 한 주도 쉬지 않고 25년째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여러 단체와 시민들은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다.

(사)한국성폭력상담소의 주관으로 진행된 이번 수요시위는 주최 측 추산 5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이번 수요시위가 지니는 의미는 어느 때보다 남다르다.

   
 

지난해 12월 28일, 외교장관회담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은 굴욕적이며 비상식적인 협정이라며 분노했다.

협정 당시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군이 관여했던 사실을 인정하며 아베 신조 총리가 사죄하겠다고 했다. 아울러 우리나라 정부가 세운 위안부 지원 재단에 10억 엔을 주겠다고 했다. 이 협정을 두고 아베 일본 총리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배제한 상황에서 무엇이 해결됐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더욱이 일본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를 앞둔 상황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는 군이나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은 확인할 수 없었다”는 내용을 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진정한 사죄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난 1991년 8월 14일, 김학순(당시 67세) 할머니가 생존자 최초 공개 증언을 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요구는 변함이 없다.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 인정 ▲진심 어린 사죄 ▲법적 배상 ▲진상규명 ▲역사교육 ▲책임자 처벌 ▲추모사업 등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가 범죄였음을 인정하고 사죄하며 배상해야 한다고 말이다.  

수요시위에 참석해 방명록을 쓰던 배백섭(71)할아버지는 자신을 “수요집회 여러 차례 온 할배”라고 소개했다. 배 할아버지는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정부가 할머니들의 한을 왜 안 풀어주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역대 정부가 지금처럼 비굴하고 졸속 협정을 안 하기 위해 협상을 안 했던 것 아닌가. 이번 협상은 (우리가) 일본에 끌려간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바위처럼>이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수요시위의 첫 포문이 열렸다. ‘모진 비바람에 맞서 대지에 깊이 박힌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는 가사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들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고 사람들도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다음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모임인 4.16가족협의회 합창단의 노래가 이어졌다. 이들은 <따오기>, <오빠생각> 등을 불렀다. 단원고 2학년 5반 故 이창현 군의 아버지 이남석(50)씨는 “영하의 날씨, 많은 시민이 동참해주고 있다. 감사하다”면서도 “참으로 원통할 따름이다. 빨리 문제가 해결돼 더는 이렇게 찬 길바닥에 앉아 수요시위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이에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이어서 4.16가족협의회가 부르는 <잊지 않을게>라는 곡이 소녀상 앞 평화로에 가득 울려 퍼졌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부터 청소년, 대학생, 중년,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이번 시위에 참석했다. 시민들은 매서운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운 열기를 보여줬다. 

한쪽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손잡는 정의와 기억재단’의 설립 모금도 진행됐다. 정의기억재단은 일본이 우리 정부가 만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재단에 10억 엔을 주겠다는 뜻에 반발, 시민 힘으로 기금을 모아 재단을 만들겠다는 의미로 세워졌다.

이날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89) 할머니가 소녀상 바로 옆에 자리해 앉아있었다. 길 할머니는 시민을 향해 “감사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행복만 가득하세요”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 

이번 수요시위에 참가한 단체는 안성 가온고등학교 정치외교동아리 ‘청와대’ 학생을 비롯해 명지대 강경대열사 추모사업회, 인천 전자 마에스터 고등학교 학생 등이 자리했다. 

명지대 강경대열사 추모사업회 이소연 학생은 “이번 협정은 피해 주체인 할머니들이 배제된 채 진행됐다”면서 “조금이라도 할머니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오게 됐다. 아베 총리가 할머니들에게 ‘쓰미마셍’(죄송하다)이라고 사과하는 소리를 꼭 듣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5년째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있다는 한 일본인은 “나보다 더 열심히 수요시위에 다니는 일본인도 많다”는 말을 남기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현재 국민대, 명지대, 성균관대, 성신여대, 서울대 등 대학생들은 돌아가면서 소녀상을 36일째 지키고 있다. 학생들은 가림막 하나 없이 이불과 전기장판에 의지한 채 소녀상을 지키고 있었다. 대학생 김모(23)씨는 “이번 한일 합의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공분했다. 이에 우리 대학생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여기에 오게 됐다”며 “소녀상은 치울 수 없게 하고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겠다는 항쟁의 의미로 하는 농성”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안성 가온고등학교의 정치외교동아리 ‘청와대’ 학생들도 자리를 빛내줬다. 가온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나비배지를 400개 정도 팔아 20만 원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기부금을 전달하고자 수요시위에 참석했다. 

가온고 여지민(18)양은 “한일협정이 잘 안 이뤄졌으므로 우리가 나서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께) 뭔가를 해드리고 싶어 이런 캠페인을 진행하고 수요집회에 온 것”이라며 “추운 날씨임에도 매주 활발하게 이런 시위가 이뤄지고 있어 좋다. 하지만 문제가 빨리 해결돼 이런 시위를 앞으로는 안 했으면 좋겠다. 할머니들이 용서할 수 있게 피해 할머니 중심으로 해결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끝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손하은 관계자가 성명서를 낭독했다. 성명서에는 한일 간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발표 내용에는 그간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통해 피해자들이 일본정부에 요구해온 전쟁 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재발방지 노력) 중에서 어떤 것도 제대로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12.28 합의는 기만이고 무효”라며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가 전쟁 범죄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최종적, 불가역적 사과가 아닌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죄를 해야 한다. 또한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해야 하고 피해 생존자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쏟아졌다. 이들은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 채 당사자가 삭제된 양국 정부만의 합의로 이 사안을 서둘러 정리하려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의 성과를 폄하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에 분노를 감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1시간가량의 수요집회가 끝나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길원옥 할머니의 손을 붙잡고 걸어 나왔다. 길 할머니가 차량으로 갈 때까지 아이는 할머니의 곁에 꼭 붙어 있었다. 할머니의 차가운 손을 잡아야 하는 주체는 정부가 아닌가. 

슬픈 수요일의 시위가 끝나는 날이 속히 오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그런 날이 오지 않는 한 할머니들의 애끊는 절규, 시민들의 분노와 외침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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