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석 칼럼니스트
· 연세대학교 신학 전공
· 중앙대학교 문화이론 박사과정 중
· 저서 <거대한 사기극> <인문학으로 자기계발서 읽기> <공부란 무엇인가>

【투데이신문 이원석 칼럼니스트】자기계발의 흐름이 다소간 바뀌고 있다. 2012년 9월에 출간된 도미니크 크로의 <심플하게 산다>(바다출판사)가 상당한 주목을 받은 바가 있고 아직도 꾸준하게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것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작년 12월에 나온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비즈니스북스)가 압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고, 여기에 비슷한 시기에 출간돈 김정운의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21세기북스)와 작년 7월에 나온 사이토 다카시의 <혼자 있는 시간의 힘>(위즈더하우스), 그리고 윤선현의 <부자가 되는 정리의 힘>(위즈덤하우스) 등이 자기계발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고독과 1인 가족의 증가

여기에서 키워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단순이고, 다른 하나는 고독이다. 이게 왜 새로운 현상인가? 기존의 자기계발 서적과 프로그램이 형성하는 주체도 홀로 서 있는 존재를 강조하지 않던가? 자기계발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반(反)공동체적이고, 반(反)연대적이지 않던가? 만인의 만인을 향한 경쟁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자기계발이 아니던가? 맞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계속 있어왔던 기존의 자기계발은 팽창과 탐욕을 추구한다면, 지금 등장하는 새로운 자기계발은 수축과 절제를 지향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자기계발적 주체는 원래 지배의 권력과 풍족한 소유를 갈망하는데, 지금은 고독한 삶과 단순한 소유를 욕구한다.

자기계발 전체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뜻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이다. 하나 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앞으로 주도권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는 사회의 변화에 있다. 이것은 1인 가족 시대의 도래와 무관하지 않다. 예능 프로그램으로 <나 혼자 산다>가 나와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을 따른 것이다. 가장 시대의 조류에 민감한 예능의 초점이 1인 가족에 맞추어져 가는 중이다. 서구의 트렌드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이미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다는 뜻이다. 주거공간의 경우에도 또한 그러하다. 이른바 땅콩주택(협소주택)이 등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단순과 청년 세대의 변화

고독과 마찬가지로 단순과 자기계발을 결합한 흐름이 국내에 온전히 녹아든 것 또한 비교적 최근이다. 도미니크 크로의 <심플하게 산다>를 제외한 모든 저작이 지난 1년 사이에 나왔는데, 이게 모두 일본과 한국의 작가들에 의해 집필됐다. 이제 단순을 지향하는 흐름이 온전히 국내에 자리매김되고 있다. 4년 전에 나온 크로의 저작은 36개국에서 1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시대적 조류에 정확하게 올라탄 덕분이다. 일본은 사토리 세대로 드러나고, 한국의 청년 세대도 이제 그러한 흐름에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덜 소유하면서도 풍요롭게 사는 법에 대한 갈망이 이제 우리의 상황 속에서 자연스레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준만 교수의 저작 제목에 나온 대로 영혼이라도 팔아 취업하고 싶다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영혼을 매각하는 정도로 취업의 문을 열고 입장할 수가 없다. 금숟가락, 은숟가락을 물고 태어나던지 아니면 막강한 뒷배경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모 공공기관에 입사하기 위해 한 정당의 원내대표가 나서서 인사청탁해야 할 정도가 아닌가. 이런 시대에 걸맞게 청년 세대의 욕망의 사이즈가 줄어들고 있다. 소유에 대한 욕망(축적)이나 관계에 대한 욕망(지배) 모두 경계가 위축되고 있다. 단순과 고독을 선택하는 것이다. 소유 면에서 단순은 물론 관계 면에서의 고독에 상응한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주체

이렇게 관계와 소유 면에서 경계가 위축돼가는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전통적인 자기계발적 주체가 변해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경쟁의 상황에서 타인을 지배하는 양상에서 고독의 상황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양상으로의 전환은 여전히 자기계발의 프레임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자기계발의 원래 의미가 self-help, 즉 스스로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자기계발의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사회적 변화에 따른 적응일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동일하게 자기 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밖으로 뻗어가는 지배나 안으로 들어가는 고독이나 매한가지다.

청년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의 집착이 아니라 수평적 연대이다. 세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연대해야 한다. 정치에서나 일상에서나 일관되게 관철해야 한다. 핵심은 뭉쳐야 산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에 있다. 달리 말하면, 새로운 주체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아니라 서로계발하는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경쟁을 통한 승자독식이 아니라 협동을 통한 상호배려가 청년 세대 생존의 비결이다(물론 청년 세대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의 자기계발 흐름에 드러나는 청년 세대의 변화는 찻잔 속의 폭풍처럼 무력하게 보인다.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는 연대가 중요하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