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자룡(趙子龍)

혼자서 적진으로

207년, 유표가 죽자 그의 아들 유종은 조조한테 항복을 해 버렸다. 이때 유비는 유표한테 의탁하고 있는 신세였다. 유비 군은 형주지역의 번성이라는 작은 성에 주둔하고 있었다. 조조는 형주를 점령하자, 눈엣 가시 같은 유비를 공격했다. 유비는 가족들과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게 됐다.

아무래도 병사와 백성이 섞여서 길을 가니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조조는 추격 군을 보내서 유비를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인해 유비군은 궤멸 당했고, 일행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유비의 장수 조자룡(趙子龍)은 유비의 두 부인과 어린 아들을 호위하고 있었는데, 조조 군에 맞서 싸우다가 이들을 잃어버렸다.

조자룡은 말을 타고 다니면서 유비의 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도중에 유비의 문관 간옹을 만났다. 조자룡이 말했다.

“주공께 조자룡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하늘 끝이나 땅 속으로라도 가서 두 분 부인과 아기씨를 찾아서 돌아가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조자룡은 다시 길을 떠난다. 저 쪽에 피난 가는 백성 한 무리가 있다.

“조자룡 장군!”

감부인이다. 조자룡은 말에서 내려 울며 말한다.

“부인이 이처럼 고초를 겪고 계신 것은 모두 저의 허물입니다. 미부인과 아기씨는 어디 계십니까.”

“저는 미부인과 함께 적에게 쫓겨 수레를 버리고 걷다가 또 다른 적병을 만났습니다. 미부인과 아기씨는 어디로 간 줄 모릅니다. 저만 이렇게 살아서…….”

이 때였다. 백성들이 소리를 지른다.

“적군이다! 적군이 또 나타났다.”

조자룡이 바라보니 조조의 장수 순우도가 유비의 부하 미축을 말에 묶어서 병사 천 명을 거느리고 행군 중이다.

“네 이놈!”

순우도가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조자룡의 창은 순우도를 꿰뚫었다. 조자룡은 미축과 감부인을 호위해 조조의 진을 뚫고 나왔다. 저 앞에 ‘장판교’라는 다리가 있다. 거기엔 장비가 버티고 서 있다. 조자룡은 장비한테 이들을 맡긴 후 다시 말을 달려 적진으로 되돌아간다.

조자룡은 얼마간 가다가 조조의 장수와 마주했다. 이 장수는 창을 잡고, 등에는 한 자루 검을 메고 있다. 하후은이라는 장수다. 조자룡은 말없이 창을 들고 덤벼들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하후은은 절명했다. 조자룡은 하후은이 갖고 있는 검에 금으로 새겨진 ‘청홍’ 두 글자를 보고 이것이 보검인 줄 알았다. 조자룡은 쇠도 끊을 수 있다는 청홍검을 취하게 됐다.

조자룡은 다시 조조의 포위망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백성을 만날 때마다 미부인의 생사를 물어 본다.

“부인께서 왼쪽 다리를 창에 찔려 다치셨습니다. 아기를 안으신 채 저 앞 무너진 담 안에 앉아 계십니다.”

조자룡은 그 쪽으로 말을 달렸다. 과연 그 곳엔 미부인이 아기를 안고 말라버린 우물 옆에서 울고 있다. 미부인이 말했다.

“저는 이미 중상을 입은 몸이라 죽어도 아까울 게 없습니다. 이 아이나 보호해서 안고 가십시오.”

“그럴 수 없습니다. 어서 말을 타십시오. 적군의 함성이 들립니다. 어서 말을 타십시오!”

미부인은 끝내 조자룡의 말을 듣지 않고, 아기를 땅에 내려놓더니 몸을 날려 우물 속으로 뛰어들어 버린다. 적군한테 시신을 빼앗길 수는 없지. 조자룡은 눈물을 흘리며, 무너진 담을 번쩍 들어 우물을 덮었다. 그러고는 갑옷 끈을 풀고 심장 가리개로 아기를 감싼 뒤에 품에 안았다.

아기는 쌔근쌔근 자고 있네

말에 올랐다. 뒤에서 적군의 함성이 들린다. 돌아보니 적장 안명이 삼첨검을 들고 조자룡을 향해 덤벼든다. 안명은 조자룡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삼 합도 안 되어 안명은 창에 찔려 낙마한다. 얼마간 가니 조자룡의 눈앞에 큰 깃발이 펄럭거린다.

‘하간(河間) 장합’

조조가 자랑하는 일류장수 장합이다. 조자룡은 장합과 십여 합을 겨뤘다. 그러나 품속에 아기가 있으니 맘 놓고 싸울 수가 없다. 옆길로 도망을 간다. 장합은 급히 뒤쫓기 시작했다. 아, 이럴 수가. 조자룡은 조조 군이 파 놓은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장합이 소리쳤다.

“이 놈! 조자룡아! 어딜 도망가느냐!”

장합은 창을 들고 조자룡을 찍으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붉은 흙먼지가 일면서 조자룡의 말이 튀어 오른다. 이 모양을 본 장합은 기가 꺾여 버렸다. 싸울 맘이 없어진다. 그대로 달아난다. 조자룡은 장합을 쫓을 이유가 없었다. 앞을 보고 나간다.

“조자룡아, 어디로 도망가느냐!”

적장 초족과 장남이었다. 뒤에선 마연과 장기가 따라붙었다. 조자룡은 앞뒤에서 달려드는 네 명의 장수와 악전고투를 벌인다. 조조의 병사들은 이쪽으로 물밀 듯 들어와 겹겹으로 조자룡을 에워싼다. 조자룡은 우선 네 장수의 포위를 뚫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앞에선 무수히 많은 조조의 병사들이 달려들고 있다. 조자룡은 창 대신 청홍검을 뽑아 들었다. 보검은 명장의 손에서 빛을 발하는 법! 청홍검은 적의 갑옷을 종잇장처럼 벤다. 검이 스칠 때마다 푸른 하늘에 붉은 핏줄기가 사방으로 흩날린다.

조조는 산 위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 사람을 시켜 누구인지 알아보게 했다. 장군 조홍이 말을 타고 산으로 내려와 큰 소리로 묻는다.

“진중에서 싸우는 장수는 누구인가! 이름을 밝혀라!”

“나는 상산 땅의 조자룡이다!”

조조는 조자룡의 자태에 반해 버렸다. 사로잡아 자신의 사람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조자룡한테 활을 쏘지 마라! 반드시 사로잡아야 한다!”

조조의 장수 중엔 조자룡을 사로잡을 명장이 없다. 조자룡은 겹겹의 포위를 뚫고 탈출에 성공했다. 조자룡은 잠시 숨을 돌리고는 장비가 있는 장판교를 향해 간다. 이 때 조조의 두 부대가 앞을 가로막는다. 종진과 종신이라는 장수다. 종진은 도끼를 들고, 종신은 극을 들고 달려 든다. 조자룡은 종진을 찔러 죽이고, 앞을 보며 달려간다. 이 모양을 본 종신은 극을 들어 조자룡의 등을 찍으려 한다. 조자룡은 재빨리 몸을 돌리며, 왼손으로 상대의 극을 잡고, 오른손으로 청홍검을 잡고는 종신의 머리를 내리 베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조조의 장수 문빙이 조자룡의 뒤를 쫓는다. 천하의 조자룡도 지칠 대로 지쳤다. 장판교를 향해 급히 달아난다. 저 앞에 장비가 보인다.

“장비는 어서 나를 구하라!”

“조자룡인가! 염려 말고 달리라! 적병은 내가 막겠다!”

조자룡은 이십 리를 더 달려가 유비와 만났다. 둘은 목 놓아 통곡을 한다. 조자룡은 갑옷을 끄르고 아기를 꺼낸다. 아기는 세상모르고 쌔근쌔근 자고 있다.

무장과 문관의 덕목을 한 몸에 지닌 사람

『삼국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조자룡이 조조의 포위망을 뚫고 유비의 아들을 구한 이야기만은 잘 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일화인 셈이지만, 이외에도 조자룡의 활약은 소설 『삼국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비의 세력은 서천지역을 점령하기 전까지 매우 약했으므로 늘 여기저기 도망을 다녀야 했다. 싸움을 하면 자주 패했는데, 조자룡은 유비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많은 수의 적과 강한 적장을 상대하며 유비를 지켜냈다. 여러 차례 선봉에 서서 공도 많았다. 제갈공명이 덥고 습한 남쪽 지역에 있는 맹획을 치러갈 때도 선봉에 서서 공을 세웠다. 이후 제갈공명이 천고의 명문 「출사표」를 쓰고 위나라를 공격할 때도 선봉에 서서 위나라의 선봉장 다섯 명을 베었다.

조자룡은 유비의 ‘오호대장(五虎大將, 다섯 명의 용맹한 대장)’ 중 한 명이다. 같은 오호대장 황충이 적에게 포위돼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유비의 아들 유선을 구했을 때처럼 포위망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 적을 베면서 이렇게 외쳤다.

“나는 상산의 조자룡이다. 내 앞을 가로막는 자는 모조리 죽는다!”

조자룡은 여덟 자의 큰 신장에, 용모와 안색이 웅장하고 위엄이 있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용장이나 맹장은 지략이 모자란 경향이 있는데, 조자룡은 뛰어난 무예만큼 지략을 갖춘 장수였다. 제갈공명이 첫 번째 위나라 공격에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출전했던 다른 부대는 대부분 꺾이고 말았지만, 조자룡의 부대만은 질서 있게 퇴각해서 무사히 귀환했다.

그보다 앞선 221년, 유비는 촉나라 황제가 되자마자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손권의 오나라를 공격하고자 했다.

“우리의 적은 손권이 아니라 조조입니다. 지금 그 아들 조비가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여 귀신과 사람 모두가 성내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어서 관중지역을 점령하고 역적을 소탕하셔야 합니다. 만약 위나라를 버리고 오나라를 친다면 쉽게 결판을 내지 못할 것입니다. 깊이 살피십시오.”

유비가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조자룡은 다시 간언했다.

“한나라의 원수를 갚은 일은 공적인 일이고, 폐하의 원수를 갚는 일은 사적인 일입니다. 공사를 구별해 천하의 일을 우선 무겁게 여기셔야 합니다.”

유비는 조자룡의 간언을 듣지 않고 출전했다가 크게 패한 뒤,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이처럼 조자룡은 무예와 지략이 뛰어났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국을 바라보는 식견과 주군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바른 말을 하는 강직함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나머지 적을 무시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일이 있었고,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이 강하다보니 의욕이 앞서서 선봉에만 서려고 했던 점이 옥에 티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옥에 티’일 뿐, 조자룡이 당대를 대표하는 일류 장수 중 한 명이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조자룡은 무장의 덕목과 문관의 덕목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2012년 12월 11일, 국가정보원 직원 김하영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의 한 오피스텔에서 여당후보를 칭송하고, 야당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댓글’을 써서 각종 웹사이트에 게시한 일이 있었다.

이른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꼬리가 드러난 것이다.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들은 경찰과 선관위 직원을 대동하고 국가정보원 직원 김하영이 국록을 축내며 여론조작을 일삼고 있던 오피스텔을 급습했다. 국가정보원 직원 김하영은 안에서 문을 잠근 채 40여 시간을 버티면서 그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다.

새누리당 측에서는 민주당 의원들이 국가정보원 직원 김하영을 감금했다고 하면서 생떼를 썼다.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 직원 김하영이 ‘잠금’을 했다고 맞섰다. 문제의 본질은 어디로 가 버리고 지엽적인 일이 부각됐다.

“‘대통령 선거에 국가기관이 개입,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있는 현장’이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요구에 불응하고 문을 안 열어주는 거주자 앞에서 할 수 있는 조치, 긴급성과 중대성이 확인되면 경찰권을 발동해 즉시진입이 가능하다. (…) 무엇보다 경찰과 선관위는 법절차에 따라 증거인멸 방지와 증거 확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김재욱, 『삼국지인물전』, 휴먼큐브, 2014, 103쪽>

경찰대학에 재직 중이던 표창원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저와 같은 의견을 냈다. ‘긴급성과 중대성이 확인되면’ 이라고 전제했지만, 사실 상 경찰권을 발동했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이 때, 표창원한테는 직위 말고도 ‘국내최초의 범죄 심리 분석관’, ‘범죄 관련 방송마다 반드시 출연하는 전문가’라는 타이틀에 바탕한 ‘대중적 인지도’가 있었으므로, 표창원의 한 마디는 사적영역을 넘어서는 영향력이 있었다. 당연히 논란이 일어났다.

“경찰대학과 학생들의 숭고한 명예와 엄정한 정치적 중립성에 부당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방지하고, 경찰대학 재학생 및 졸업생 등에게 혹여 자유롭고 독립적인 견해를 구축하는 데 있어 부당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사직하고자 합니다.”<김재욱, 『삼국지인물전』, 휴먼큐브, 104쪽>

경찰대학 교수 역시 ‘공무원’ 이므로 표창원은 자신 또한 중립성을 침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표창원은 사건 발생 나흘 만에 경찰대학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는 얼핏 보아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배려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제부터 나 혼자라도 거대한 불의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는 게 좀 더 온당하지 않을까 한다. 이후에 실제로 싸움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자룡이 유비의 식구들을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표창원이 생각하는 ‘유비의 가족’은 무엇인가. 다름 아닌 ‘정의’였다.

표창원은 마침내 창을 들고 적진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처음 상대한 ‘정의의 적’은 새누리당 전략조정단장 권영진이었다. 이 둘은 대선을 이틀 앞둔 2012년 12월 17일, TV 토론회에서 맞붙었다. 표창원은 돌아갈 다리를 끊고 싸우기로 작정을 하고 나온 상황이었다. 상대를 매섭게 몰아붙였다.

“국정원 직원이 여론 조작에 개입했다면 워터게이트보다 더 불법적인 사건입니다!”

“이 의혹이 제대로 밝혀지려면 정권이 교체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 공무원이 문을 열어 달라고 하고 있어요. 이 상황에서 문만 열어주면 돼요. 안 열어주고 그러고 있어요. 그게 무슨 감금이에요. ‘잠금’이지!”

“국민들이 왜 절망하는지 아세요?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을 그렇게 타락시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이상 김재욱, 『삼국지인물전』, 휴먼큐브, 2014, 104-105쪽>

권영진는 표창원의 매섭고 빠른 창에 찔리자 조수족을 못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표창원은 그렇게 적장 한 명을 찔러 버리고 ‘정의’를 구하기 위해 달려 나간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곳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은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지도 몰라요.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푸른 강가에서 만난다면 서로 하고프던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냥 마주보고 좋아서 웃기만 할 거에요.”<시인과 촌장, ‘좋은 나라’ 중에서>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 당일에 표창원은 ‘GO발 뉴스’ 이상호 기자가 진행한 ‘생방송 대선 뉴스쇼’에 출연해서, ‘좋은 나라’를 들려달라고 했다. 노래가 흘러나오자 표창원은 테이블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아직 약하고 어린 정의와 정의를 지키던 사람이 하나둘 다치는 장면을 목도했기에 그런 것이었을까. 그 모습에서 조자룡의 눈물과 안타까움이 보이는 듯하다.

정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싶습니다

표창원은 경찰대학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온 후, 며칠 동안 정권교체를 위해 분투했다. 끝내 대선에서 민주당의 문재인이 패배하자, 상심한 야권 지지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과 빛고을 광주에서 ‘프리허그’ 이벤트를 열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모습을 접하며 많은 사람들은 표창원이 ‘정치인’으로 되어주길 바랐고, 그리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표창원은 정치에 입문하지 않고, 자신의 분야에서 정의를 구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이듬해 ‘표창원 범죄과학 연구소’를 설립했다. ‘한국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화두 삼아 칼럼을 썼고, 책을 냈으며, 강연도 열었다.

일견 전장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표창원은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있었으나, 경찰대학에 있을 때보다 어찌 보면 더 바쁘고 폭넓게 뛰어다니면서 정의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변에선 조자룡을 앞뒤에서 공격했던 네 명의 ‘삼류장수’들처럼 표창원을 여러모로 괴롭혔다. 예전에 표창원의 아내는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표창원 출연시켰다고 담당 PD를 교체하기도 했어요. 방송출연 의뢰가 와서 준비를 해서 나가면 당일에 출연을 취소하거나, 담당자를 다른 부서로 보내 버려요. 강연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고……. 늘 외롭게 혼자서 싸웠어요.”

표창원 자신은 사방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꿋꿋했을지 모르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찌되었건 표창원은 정의를 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싸워왔다.

“정치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고 싶습니다. ‘안전’을 확보해 드리고 싶습니다. ‘어린이, 청소년에게 꿈과 행복’을 찾아 주고 싶습니다. ‘진실’을 밝히고 싶습니다. ‘아름답고 멋진 대한민국’을 찾아 드리고 싶습니다. 신인, 새내기 정치인으로서 참신하고 깨끗한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신사의 품격’과 ‘전사의 용맹함’을 함께 갖춘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강하고 유능한 야당, 집권이 준비된 수권 정당의 모습을 갖추는데 기여하겠습니다. 그동안 전 여러 차례 ‘정치를 하지 않겠다’ 말해 왔습니다. 이제 그 말을 거두겠습니다.”<2015. 12. 27. 표창원 페이스북, 요약정리함.>

표창원은 마침내 정의를 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를 선택했다. 과연 표창원은 얼마큼의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대중들은 표창원의 정계입문을 열렬히 환영했다. 계파 갈등으로 인해 지리멸렬해진 제1야당을 구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표창원은 이러한 반응과 기대에 화려한 창술로 응답했다.

2015년 12월 30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대표의 부산 사무실에 괴한이 침입해 인질극을 벌인 일이 있었다. 이를 두고 MBN의 김형오 앵커가 표창원한테 이렇게 말했다.

(김) “이 사건이 바람직하진 않지만 뼈아프게 받아들일 필요는 있다. 문 대표가 뭘 잘못했나.”

(표) “정말로 이번 사건이 문 대표에 대한 문제, 책임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김) “저분의 이상한 행동이라고만 몰아붙이기엔….”

(표)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면도칼 테러를 당했던 일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박근혜 후보의 잘못인가?”

(김) “그분은 정신이상자였다.”

(표) “이분도 정신이상이라고 나오고 있다.”

표창원의 날카로운 역습에 김형오 앵커는 당황했다. 표창원은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사람에 따라 다른가? 상황에 따라 다른가? 똑같은 경우가 아닌가?”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세간의 이슈에 대해 이전까지 대부분의 야당 정치인들은 다소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으나, 표창원은 시종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2015년 12월, 우리나라 정부는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 합의했다.

“당사자인 피해자 할머니들과 주권자인 국민 뜻에 반하는 정부의 굴욕적인 친일 퍼주기, 이래도 되는 건가? (…) 우리처럼 나치 독일의 핍박과 침탈, 피해를 당한 유태인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결코 돈 몇 푼에 ‘용서와 화해’를 팔아먹지 않았다.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도 묻지 않고 ‘5년간 정부를 관리’하는 소수 권력자가 팔지 않았다.”<2015. 12. 29. 파이낸셜뉴스>

“우리나라는 3권 분립이 이뤄진 국가고 정당은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적 역할을 해야 한다. (…) 그런데 새누리당은 정권의 부속물 같은 행동을 한다. (…) 여당은 정부를 절대 존엄처럼 무조건 보호할 게 아니라 국민을 대변해 비판하고 또 문제제기해야 한다. (…) 결국 정부의 외교협상 태도와 여당의 사후공범 역할은 본인들에게 지우고 싶은 과거가 될 것.”<2015. 12. 31. 시사온>

2016년, 대중은 정의를 향한 표창원의 질주에 주목하고 있다. 과연 그의 바람대로 정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까지는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한다.

누구보다 정치를 열심히, 그리고 잘 할 사람

“자연인으로서 전 새누리당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전 새누리당을 존중합니다. 공정하게, 강점과 장점 잘 드러내어 많은 지지 얻기 바랍니다. 같은 마음으로, 다른 정당에 대한 존중도 부탁드립니다. 공정경쟁으로 새누리를 반드시 이겨드리겠습니다.”<2015. 12. 27. 표창원 페이스북>

표창원은 새누리당을 향해 시종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지만, 경쟁상대로서 존중하는 자세 또한 잃지 않고 있다. 그간 누차 강조해 왔던 ‘신사의 품격’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을 실천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래서 얼마 전 토론회에서 상대진영의 출연자한테 격앙했던 점을 즉시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무척 바람직한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 이외에는 길이 없다고 판단할 때는 정치를 할 것이며, 그 때는 어느 누구보다 정치를 열심히, 그리고 잘하겠다고 답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표창원, 『나는 셜록홈스처럼 살고 싶다』, 다산북스, 2013, 18-19쪽>

마침내 표창원은 ‘정치 이외에는 길이 없다고 판단’해서 정치인이 되었다. 이제는 ‘프로파일러’, ‘범죄과학연구소 대표’ 표창원이 아닌 셈이다. 다만 현재까지는 정치인으로서의 명성보다 경찰대 교수 또는 프로파일러로 쌓아온 명성이 높은 편이다. 이래서 표창원은 여느 스타정치인 못지않은 인지도를 지니고 있다.

이는 분명 표창원의 강점이지만, 자칫하면 약점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앞으로 정치를 하면서 자신만이 지닌 전문지식과 인지도를 십분 활용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다년간 범죄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몸에 밴 습관을 버려야하지 않을까 한다. 세차게 상대를 몰아붙이며,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신의 지지자 또는 야권 성향의 지지자들한테 믿음을 줄 수 있으나, 상대 진영 또는 중립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말이나 글로써 의견을 제시할 때, 강력 범죄가 연상되는 단어나, 다소 거친 단어 사용을 줄여나가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본다.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삼국지인물전> 외 5권

“누구라도 맘껏 기대서 울 수 있게 가슴이나 어깨를 활짝 열어줘야 한다. 그러면 된다. (…) 말없이 믿어주고 따뜻하게 품어주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표창원, 『나는 셜록홈스처럼 살고 싶다』, 다산북스, 2013, 29쪽>

표창원은 지금껏 조자룡과 같은 용맹함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그 모습을 유지할 줄로 믿는다. 아울러 위에서 스스로 말한 것처럼 부드러움과 따뜻함까지 겸비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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