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경은 기자】“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 아이와 아이 엄마를 책임지려 합니다”

지난해 말 SK 최태원 회장의 폭탄발언으로 재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편지를 통해 충격고백을 한 최 회장은 노소영 관장과의 결혼생활에 대해 ‘이미 오래전에 깨진’이라고 표현하며 자신이 불륜을 저질렀고 혼외 자식이 있다고 고백했다. 3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이 당사자의 고백을 통해서 실제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간통죄가 폐지된 판국에 불륜 사실을 고백했다고 해서 그가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부분은 없다. 일반인이었다면 도덕적으로 비난받고 끝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위치를 간과해서는 안 될 재계 서열 3위 SK그룹의 총수, 최태원이다.

그는 ‘기업인 최태원’이 아니라 ‘자연인 최태원’으로써 고백하는 것이라고 했으나 ‘최태원’과 ‘SK그룹의 총수’라는 타이틀을 떼놓고 볼 수는 없는 법, 그의 고백에 따른 후폭풍은 적지 않았다.

이후 최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SK주가는 사흘 동안 8%가 떨어졌다. 또한 최 회장이 SK의 해외법인인 버가야인터내셔널을 통해 내연녀의 아파트를 부당지원했다는 의혹도 일었다. 언론에서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최 회장이 사생활 물의를 일으킴에 따라 재계 3위 기업이 오너리스크에 또다시 흔들리고 있다”고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이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뒤로한 채 최 회장은 발 빠른 복귀에 나섰다. 그룹 지주사인 SK㈜의 등기이사로 복귀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 이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인 상황이다.

2년 전, 최 회장은 횡령 혐의가 확정되면서 SK그룹 모든 계열사의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복귀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SK 측에서는 오너의 부재로 인해 어려운 경영 여건에 직면하게 됐다며 끊임없이 최 회장의 복귀를 원했다.

결국 SK㈜는 지난달 25일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기업 가치를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도록 최태원 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을 주총에 상정키로 했다”고 밝히며 최 회장의 복귀를 밀어붙였다. 최 회장은 다음 달 열리는 주주총회를 거친 후 본격적인 경영활동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최 회장의 복귀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은 가운데 그의 과거 행적도 한 몫 하고 있다. 최 회장은 2003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배임·횡령 사건으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2년 7개월간의 수감생활을 한 후 지난해 8·15 광복 특사로 풀려났다. 그가 사면을 받은 것은 이제 약 7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 ‘책임경영’이란 당위성으로 등기이사로 복귀하게 된 최 회장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책임경영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많은 구설 속에서 이룬 빠른 복귀가 독이 아닌 득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복귀의 이유로 내세웠던 것처럼 책임경영을 하는 수밖에는 없다.

SK그룹도 이를 의식이라도 한 듯 최 회장의 등기이사를 추진하면서 두 가지 계획을 내놓았다. 먼저 고위 임원 퇴직금을 삭감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임직원간 보상 형평성을 위해 회장과 부회장의 퇴직금 지급률을 낮추기로 한 것. 이 안건이 다음 달 정기 주주총회에서 통과되면 각사 회장의 퇴직금 지급률은 6%에서 4%로, 부회장 지급률은 5%에서 4%로 낮아지게 된다.

또한 이사회 산하에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주주 권익 보호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기구로 주주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투자나 회사의 합병·분할, 재무 관련 사항 등 주요 경영 사안을 사전 심의함으로써 경영진을 견제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정적인 여론은 사그라지지 않는 듯하다. 이 같은 안건이 ‘면피용 대책’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 때문. 경제개혁연대(이하 경개연)에서는 “최 회장의 SK(주) 이사 선임을 위한 면피용 대책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개연에 따르면 지급률을 낮추는 대신 퇴직을 앞두고 월 보수 금액을 높게 책정하면 동일한 수준의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퇴직금 지급률만 낮추는 것은 별 의미가 없으며 임원퇴직금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위원회 설치가 형식적 기구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위원회의 업무와 권한을 명확히 하는 실질화 방안이 필요하고, 외부주주가 담당 사외이사를 선임해 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에너지를 고객, 직원, 주주, 협력업체들과 한국 경제를 위해 온전히 쓰고자 합니다”

어찌됐든 최 회장의 복귀가 확정을 앞두고 있는 바, 앞서 구구절절한 내용이 담긴 고백 편지 끝에 적혀 있던 저 구절처럼 최 회장이 모든 에너지를 담은 책임감 있는 경영을 통해 부디 기업가치 회복과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이끌어 내고 그 동안의 과오를 회개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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