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숙(魯肅)

“황제의 자리에 오르십시오”

200년, 강동의 호랑이 손책이 죽고 동생인 손권이 형의 뒤를 잇게 되었다. 손권은 형의 유언대로 주유한테 자신을 보좌해 달라고 부탁했다. 주유는 겸양했다.

“저는 재주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중한 임무를 맡기 어렵습니다. 대신 한 사람을 추천해 장군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성은 노, 이름은 숙이라는 사람입니다. 배포가 크고, 지모를 갖췄습니다. 집안이 넉넉해서 늘 가난한 사람들한테 재물을 나누어 줍니다. 이 사람은 마음이 크고 강개하며, 말 달리고 칼 쓰기를 좋아합니다.”

스물아홉 살 노숙(魯肅)은 이렇게 손권의 휘하에 들어오게 됐다. 손권은 노숙과 함께 하루 종일 시국 이야기를 나눈다. 손권은 노숙의 식견에 감탄을 해서 밤이 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급기야 나란히 누워서 대화를 이어간다. 손권이 묻는다.

“지금 한나라 황실은 위태하고 천하는 혼란한데 외로운 제가 아버지와 형을 이어받아서 책임이 너무 무겁습니다. 그래도 한 번 옛 사람을 본받아 천하의 패권을 잡고 싶은데, 공께서는 저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시겠습니까?”

노숙이 대답했다.

“저는 한나라 황실을 다시 일으킬 수 없고, 조조를 쉽게 제거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군께서는 강동에서 틈을 살피셔야 할 것입니다. 지금 북쪽에는 일이 많으니, 우선 황조와 유표를 공격해 장강(長江)을 경계선 삼아 지킨 뒤에, 황제 자리에 올라 천하통일을 도모하셔야 하겠습니다.”

이때 손권의 나이는 겨우 열아홉이었다. 십년 연상인 노숙의 원대한 포부를 듣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인사를 한다. 이처럼 노숙은 낡은 세력을 교체해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는데 자신의 힘을 기울이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황제 자리에 오르라’는 말은 곧바로 ‘반역’과 연결된다. 천하의 영웅 조조와 같은 사람도 드러내 놓고 이런 말을 하진 못했는데, 노숙은 세력 기반도 다져지지 않은 어린 주인한테 스스럼없이 반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단한 기개가 아닐 수 없다.

노숙은 혼란한 세상에서 재물은 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해서 가진 재산을 팔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했으며, 선비들과 교유했다. 힘 있는 청년들을 모아 그들을 먹이고 입혀 주면서 활쏘기와 말 타기를 가르쳤다. 친척 어른들은 모두 이런 노숙을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으나 대부분의 고향 사람들은 모두 노숙을 좋아했다.

중원에 군벌들이 난립하고, 도적이 들끓자 노숙은 고향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을 따르는 젊은이들한테 말했다.

“이곳에는 자손을 남길 땅이 없다. 내 듣기로 강동지역은 들판이 기름지고, 백성들은 부유하며, 병사들이 강해 난리를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함께 낙원으로 떠나자.”

노숙은 약한 사람을 앞세워 보내고 자신과 강한 사람은 뒤를 따르게 했다. 얼마 가지 못해 관군의 기병부대가 추격해 왔다. 노숙은 부하들과 싸우며 관군한테 소리 질렀다.

“당신들도 시대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나라가 혼란해 우리를 잡아 가도 상을 받지 못할 것이고, 잡더라도 우리를 처벌할 수 없을 것인데 왜 간섭하는가!”

관군은 노숙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더 이상 추격하지 못했다. 노숙 일행은 강을 건너가서 손책을 뵈었고, 손책은 이런 노숙을 높이 평가하며 예의주시했다. 그러던 중 손권의 부름을 받아 그의 신하가 되었던 것이다.

거대세력에 맞서기 위한 방법

이처럼 포부가 크고 용감한 노숙이었지만, 정작 자신이 실전을 치르게 되자 충돌을 피하고 협상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 노력했다. 208년, 조조는 유표의 아들 유종에게 항복을 받아 형주지역을 차지했다. 이런 움직임을 파악한 노숙은 약한 세력이긴 하지만 아군에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유비와 연합해서 조조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청해서 유비를 찾아가겠다고 한다. 마침 손권의 진영에는 제갈공명의 형인 제갈근이 가담하고 있었으므로, 노숙은 이를 이용해 유비와 화친을 맺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노숙은 조조에게 큰 패배를 안겨주는 ‘적벽대전’을 준비했던 것이다.

조조는 손권을 공격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적벽대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손권의 참모들은 강력한 육군에 형주의 수군까지 보유한 조조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했다. 노숙은 참모들의 말을 들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회의를 마친 손권이 별실로 가자 노숙은 말없이 뒤를 따른다. 손권이 물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하오?”

노숙이 정색하며 대답한다.

“참모들은 장군을 그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장군께 항복을 하라 하지만, 항복하시면 안 됩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저 같은 사람이 조조한테 항복을 하면 조조는 저한테 고향의 자사(刺史)나 군수 자리를 줄 것입니다. 저한테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장군께서 항복하신다면 가실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위해 말을 하는 법입니다. 그들의 말을 듣지 마시고, 큰 계획을 세우셔야 합니다!”

손권은 노숙의 말에 힘을 얻어 전쟁 준비를 했다. 결국 손권은 유비의 세력과 연합해서 적벽대전에서 크게 이겼다. 이 때 유비는 주력이 아닌 지원군 정도로 참가했다. 이래서 형주지역을 손권이 갖기로 약속을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유비는 약속을 어기고 형주지역을 점령해 버렸다. 화가 난 주유는 유비를 공격하려 했다. 노숙은 주유를 만류했다.

“안 됩니다. 우리 군은 조조와 싸워서 이겼지만, 완벽히 이기진 못했습니다. 또 합비 지역도 함락하지 못했는데, 유비와 싸운다면 그 틈을 타서 조조가 다시 공격해 온다면 위험해 집니다. 게다가 유비는 조조와 옛 정이 있는 사이인데 둘이 힘을 합해 우리를 친다면 어쩌실 겁니까.”

“우리는 많은 병사를 잃었고, 무수한 양식과 재물을 썼는데도 이 꼴이 되었는데 어떻게 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유 도독께서는 잠시만 참으십시오. 제가 유비를 만나서 좋은 말로 한 번 따져 보겠습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그 때가서 군대를 움직여도 늦지 않습니다.”

노숙은 유비의 참모 제갈공명을 찾아가서 형주를 돌려달라고 했지만, 제갈공명은 이렇게 궤변을 늘어놓는다.

“형주는 원래 유표의 땅이고, 우리 주인(유비)은 유표의 아우입니다. 유표가 죽었다고 하지만, 맏아들 유기가 살아 있습니다. 우리 주인은 조카를 도와 자기 땅을 찾으려 하고 있는 겁니다.”

이어서 제갈공명은 혹시 유기가 죽기라도 하면 형주를 다시 돌려줄 것처럼 이야기했다. 노숙이 유기를 보니 병이 깊어 오래 못갈 것 같다. 제갈공명한테 유기가 죽으면 땅을 돌려받기로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후 유기가 죽었는데도 유비는 형주를 돌려주지 않았다. 노숙은 다시 유비를 찾아갔지만, 유비는 땅을 돌려주지 않고, 서천지역을 점령한 뒤에 돌려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노숙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왔고, 화가 난 주유는 유비를 공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죽었다. 죽기 전, 주유는 손권한테 유서를 썼다.

“노숙은 충성하고 곧은 사람입니다. 일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니 저를 대신하여 임무를 맡길 만합니다.”

노숙은 주유의 뒤를 이어 도독이 되었다. 이 때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유비는 관우를 보내 형주를 지키게 했고, 노숙은 육구라는 곳에 군을 주둔시키고 관우와 맞섰다. 자연스레 양 군은 자주 충돌했는데, 노숙은 늘 우호적인 태도로 일처리를 했다.

이후 유비는 서천지역을 차지하고도 형주를 돌려주지 않았다. 손권 진영에서는 제갈공명의 형인 제갈근을 보내 형주를 돌려달라고 했으나, 유비는 형주에 속한 세 고을만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는 제갈근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정작 형주를 지키고 있는 관우는 ‘전선의 장수는 왕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고 하면서 세 고을을 돌려주지 않았다.

노숙은 군대를 이끌고 관우의 진영으로 향했다. 그러나 노숙은 섣불리 공격을 하지 않고, 우선 관우와 협상을 시도했다. 양 진영의 군대를 백 걸음 뒤로 물리고, 장군끼리 단도만 갖고 만나기로 했다. 노숙은 관우를 꾸짖었다.

“우리 주공은 갈 곳 없는 당신들에게 땅을 빌려주었소. 그런데도 당신들은 서천지역을 얻었으면서도 형주를 돌려주지 않았고, 지금 세 고을을 돌려주라고 명령을 했는데도 돌려주지 않고 있소!”

관우는 ‘이건 나라의 일이다’고 하고는 떠나버렸다. 결국 노숙은 관우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상만 고집하지 않았던 사람

노숙은 낡은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열아홉 살 자기의 주인을 황제로 세워 천하를 통일하려는 꿈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천하통일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우선 자기 세력의 기반을 잡아야 했고, 무엇보다 강력한 경쟁상대인 조조를 넘어서야 했다.

노숙은 손권 혼자서 조조를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래서 결코 같은 길을 갈 수 없는 유비와 손을 잡았고, 그들의 세력 확장을 도와주었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노숙이 형주지역의 일에서 제갈공명한테 매번 속아 넘어가며, 전쟁보다는 타협을 꾀하는 어리숙하고 약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주군더러 황제가 되라고 하며, 조조한테 결사항전을 하라고 권유하는 걸 보면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극복해야 할 거대 세력이 있었으므로 유비가 형주를 돌려주지 않아도 어떻게든 참으며 협상을 시도하면서 충돌을 피하고자 했다. 주유가 노숙을 자신의 후임으로 추천한 데에는 이러한 노숙의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손권 역시 노숙을 매우 존경했다. 손권은 노숙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말에서 내려서 기다렸다. 이는 매우 극진한 대우였다. 손권이 말했다.

“노숙 장군, 내가 말에서 내려 장군을 맞이한 것은 장군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면 당신한테 영광스러운 일이 될 수 있겠소?”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손권 이하 모든 장수들이 놀라는 가운데 노숙이 천천히 말한다.

“주공의 위엄과 덕이 천하에 떨쳐서 온 나라를 통일하고, 주공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신하인 저 노숙의 이름이 역사에 남는 것, 이것이 저에게 가장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처럼 노숙의 꿈은 원대했다. 무용과 지략을 겸비했지만, 꿈을 이루는 방법으로 무용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급진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점진적으로 꿈을 이루려 했고, 냉정하게 현실 인식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적인 욕심보다 대의를 우선으로 여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비록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마흔여섯에 병으로 죽고 말지만, 살아 있는 동안 차근차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얼마간 실현하기도 했던 유능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조성주

새로운 시선으로 다른 미래를 개척합시다

2015년 6월, 진보정당인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낯선 젊은이 한 명이 입후보했다. 주지하듯 정의당은 현재 다섯 석을 지닌 작은 정당이지만, 그래도 대중한테 이름 석 자가 알려진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진중권을 보유한 저력 있는 정당인데, 그들에 맞서 상대적으로 명성이 낮은 사람이 출사표를 던졌다. 정치에 관심을 둔 이들 중 대부분은 이 사람한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같은 앞선 세대의 경험이 아닙니다. 이미 그 경험은 충분합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노동운동 밖의 노동에 대한 경험과 대안 부족이야말로 지금 진보정치에게 가장 절박한 문제가 아닙니까? (…) 정의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싸우는 정당이 아닙니다. 정의당은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과 싸우는 정당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우리 정당의 본질적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정의당은 미래와 싸워야 합니다. 오늘의 이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체제가 강요하는 미래를 바꾸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목표입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다른 미래를 개척합시다.”<2015. 6. 20, 당대표 출마선언문 ‘두려움 없이 광장 밖으로 과감히 나아갑시다.’ 중>

대중, 특히 야권지지자들은 거대야당과 제1야당의 투쟁에 피로감을 느끼고, 제1야당의 계파투쟁에 실망하며, 진보진영이 모든 정파에 날을 세우면서 투쟁하려는 자세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간 이 사회가 진보하는데 큰 기여를 한 ‘운동’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운동만으로 안 된다’거나 ‘운동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 사람의 ‘출마선언문’은 이러한 대중의 생각과 사회의 현실변화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 선언은 진보진영은 물론 야권지지자들에게 크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당초 큰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서 17.1%라는 적지 않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상대가 ‘스타정치인’인 심상정, 노회찬 이었다는 점, 자신의 당내 활동 경력이 짧은 신인이었던 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수치상 만족할만한 성적은 아니라 할지라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얻지 않았는가 한다. 1978년 생, 만 37세의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 조성주는 이처럼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대중 앞에 나타났다.

정의당의 입장에선 스타정치인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 강점이라고 하겠지만, 한편으로 이들을 넘어서거나 또는 뒤를 이을 만한 정치인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현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내부에 훌륭한 인재들이 있는 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표면적으로는 이 강점이 오히려 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조성주의 당대표 선거에서의 선전은 이런 점에서 조성주 개인은 물론 당으로 봐서도 상당히 긍정적이며, 야권지지자들이 정의당의 미래를 기대하도록 만든 효과를 얻지 않았는가 한다.

“20대 총선에서 50명의 청년 후보 출마를 시작으로, 2018년 지방선거에서 100명의 청년후보들이 당선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 가겠습니다.”<2015. 6. 20, 당대표 출마선언문 ‘두려움 없이 광장 밖으로 과감히 나아갑시다.’ 중>

당선되지 못했으므로 이 일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진보정당에 대한 기존의 대중의 인식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는 점, 진보정당의 새로운 운영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노숙이 원대한 이상을 품고 기존의 낡은 체제를 거부하면서 젊은이를 규합했던 모습과 유사하다고 하겠다.

“정책적으로 유능하고, 시민들에게 책임을 지며, 당원에게는 자부심을 주고, 일을 하고 싶어 사람들이 몰려드는 강하고 좋은 정당을 만들어야 합니다. (…) 우리는 정의당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정당, 가장 힘 있는 정당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2015. 6. 20, 당대표 출마선언문 ‘두려움 없이 광장 밖으로 과감히 나아갑시다.’ 중>

세력 기반을 다져야 하는 열아홉 어린 군주 손권에게 ‘황제가 되어 천하를 통일하라’고 했던 노숙처럼 조성주 역시 기반이 약한 다섯 석 작은 정당 정의당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 있는 정당’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드러내었다.

우리의 진짜 적은 정당이 아니다

조성주는 앞서 ‘정의당은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과 싸우는 정당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우리 정당의 본질적 목표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조성주는 이들과 싸우지 않고 어떻게 정의당 혹은 진보정당을 육성해 나갈 것인가.

“누군가를 심판하고, 심판자를 또 심판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정치를 이룰 수 없습니다. (…) 증오를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불만을 조직하고 대표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분야별 OECD 순위가 얼마나 하위인지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바꿀 희망의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제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 논쟁합시다.”<2016. 2. 2. 정의당 비례대표 출마선언문 ‘변화를 위한 용기 있는 선택’ 중>

그간 선거 때마다 반복되어 온 ‘심판론’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조성주의 말대로 누군가를 심판하려면 필연적으로 ‘증오심’ 또는 ‘복수심’이 따라온다. 조성주는 우선 이 마음을 버리고, 조금은 모호하다고 볼 수 있는 수치에 얽매이기 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불만’을 제시하고,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다. 그렇다면 조성주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불만’은 무엇인가.

“당장의 등록금과 생계를 걱정하는 친구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 노동조합운동의 바깥에서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회용 티슈처럼 쓰고 버려지는 청년들의 절망과 분노를 마주해야 했습니다. (…) 한 달에 50만원도 채 벌지 못하고, 아르바이트 임금도 챙겨주지 못해 자책하는 젊은 편의점 사장들은 제 친구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2015. 6. 20, 당대표 출마선언문 ‘두려움 없이 광장 밖으로 과감히 나아갑시다.’ 중>

굳이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불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 이제 이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일이 남는다. 조성주는 이 방법을 ‘논쟁’을 통해 찾아보자고 했다. 우선 조성주가 생각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봐야 하겠다.

“이제까지 진보정당은 한국사회를 많이 바꿔 놓았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급식 등을 요구한 진보정당이 한국사회를 왼쪽으로 전염시켰다. (…) 20대 국회에선 그동안 가지 않았던 길도 고민해야 한다. 용기 있는 타협,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샌더스는 민주적 사회주의자, 사민주의자이면서 지극히 현실주의자다. 100% 신념과 일치하지 않아도 공화당과도 타협한 적이 있다. 20대 국회 원내에선 진보정치, 정의당은 현실주의적 길을 고민해야 한다.”<2016. 3. 2. 레디앙>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성주는 구체적인 불만의 해결을 위해서라면 ‘신념이 100% 일치하지 않는 새누리당과도 타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진짜 적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아닙니다. 우리가 물리쳐야 할 적의 이름은 고유명사로 불렸던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불평등, 절망, 냉소와 같이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는 모든 것들입니다.”<2016. 2. 2. 정의당 비례대표 출마선언문 ‘변화를 위한 용기 있는 선택’ 중>

이에 대한 야권지지자들의 견해는 엇갈릴 게 분명하다. 조성주가 말한 대로 ‘논쟁’이 필요한 사안이 아닌가 한다. 어찌되었건 조성주는 기존 진보정당 소속의 정치인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성주의 말과 글에는 ‘유연함’이 스며있고, 이것이 오롯이 이 사람의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본다.

현재 진보정당의 이름난 정치인들은 대부분 ‘운동’을 경험한 뒤 정치에 발을 들인 경우가 대부분임에 반해 조성주는 운동보다는 실무경험을 쌓은 뒤 정계에 입문했다. 조성주는 2006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 보좌관을, 2008년,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보좌관을 지냈다. 2010년,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 팀장을 지냈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시 노동전문관으로 일했다. 이와 같은 이력으로 인해 조성주는 일반적인 진보정치인과는 다른 소견과 유연함을 지니게 되지 않았는가 한다.

“저는 공격적인 언어나 센 말이 아닌 공감의 언어로 진보도 승부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다행히 호응이 좋습니다.”<2016. 2. 21. 고발뉴스>

현실정치의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

조성주는 진보정당인 정의당에 소속된 ‘정치인’으로서 세력이 약한 정의당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센 정당으로 육성하려는 꿈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한 조성주의 생각은 앞에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보았다. 조성주의 소신은 매우 뚜렷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만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2016년 현재, 조성주를 두고 진보정당의 미래를 책임질 ‘에이스’로 평가하며 기대를 걸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하겠다. 조성주의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므로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저 야권연대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 제가 부정적인 것은 내용 없는 연대, 무조건 새누리당의 과반을 저지하기 위해 정책이나 가치도 없이 연대하는 것은 소극적인 것으로 생각해요. 더 적극적 연대, 더민주가 어떤 정책을 할 것이고 새누리당 과반을 저지해서 무엇을 할 것이라는 내용에 대한 합의가 없는 연대이기 때문에 소극적이고 문제가 있었죠. (…) ‘야권이 과반을 했을 때 사람들의 삶이 뭐가 바뀌는데’라는 질문에도 저희는 답해야 한다는 거예요. (…) ‘연대하면 정말 이런 게 바뀌겠구나’란 것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감을 높여야 연대의 성과도 더 커지겠죠.(…) 제1야당이 옳아서가 아니라 새누리당을 막기 위해 제1야당을 지지했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제1야당이 더 약해졌습니다. 열심히 안 해도 표를 받기 때문이죠. (…) 제 비판은 내용 없는 연대예요.”<2016. 2. 21. 고발뉴스>

일리가 있다. 옳은 말이다.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야권지지자들은 많지 않을 줄 짐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위축된 진보정당이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 해야 할 ‘현실적인 일’은 무엇인가. 당장 거대여당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 있으며,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는 한 그러한 상황이 지속될 것인데, 이를 타개할 만한 ‘현실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아쉽게도 조성주한테도 구체적인 ‘대안’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면에서 현재까지 조성주는 표면적으로 ‘정치인’보다는 ‘평론가’의 모습이 좀 더 부각되고 있지 않은가 한다. 실전 경험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이렇게 생각한다’가 아니라 ‘이렇게 하겠다’고 말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앞으로 정치를 하면서 대중한테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 김재욱 칼럼니스트▸저서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삼국지인물전> 외 5권

노숙이 그러했던 것처럼 조성주의 앞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자신이 원내에 진입해야 하고, 이후 약한 정의당을 육성해야 하며, 동시에 제1야당과 거대여당을 넘어서야 자신의 원대한 꿈을 이룰 수 있다.

노숙은 성공하지 못하고 병들어 죽었다. 그러나 조성주는 건강을 지키며 오랫동안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끝내 진보진영의 차세대 리더가 되어줄 것으로 짐작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출발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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