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외교적 명분
[칼럼]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외교적 명분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6.03.1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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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인조반정은 알려진 바와 같이 이서(李曙), 이귀(李貴), 김유(金瑬)를 비롯한 서인(西人) 세력이 이전의 왕이었던 광해군(光海君)을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능양군(綾陽君) 이종(李倧)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이다. 능양군 이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인 정원군(定遠君)의 맏아들로 광해군의 이복형제이자, 훗날 ‘인조’라고 묘호를 받아서 일컬어지는 왕이다.

일반적으로 이전에는 연산군과 광해군이 가장 나쁜 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되면서, 요새는 인조, 선조 등 광해군을 전후한 왕들이 최악의 평가를 받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조의 집권 이후 정묘호란(丁卯胡亂)과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잇따라 발생했고, 결국 지배층이 ‘오랑캐’라고 업신여긴 청(淸)을 상국(上國)으로 모시는 군신(君臣)의 관계를 맺었다.

외교와 군사적 문제 안에는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가 동반됐다. 임진왜란 이후 제대로 복구되지 않은 조선의 반이 전쟁터가 되고, 잇따른 약탈을 당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봉림대군과 소현세자, 절개를 지켰던 삼학사를 비롯한 수많은 백성이 추운 겨울날 더 추운 청의 요동에 노예로 끌려갔고, 전쟁 패배로 인해 막대한 금액의 은과 특산품을 함께 청으로 보냈어야 됐다. 그런 이후에도 인조와 지배층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없이 성리학적 명분과 의리를 강조했고, 이로 인해 청에 의한 지속적인 압력을 받았어야 했다.

이종이 쿠데타로 왕위에 오를 때 그 명분이 된 것은 광해군의 폐륜 행각과 외교상의 실정(失政)이었다. 광해군의 폐륜 행각은 폐모살제(廢母殺弟)라는 것으로 대표된다. 즉 그 탄생으로 인해 광해군의 왕위를 위협했던 이복동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이고, 그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시킨 것이다. 이 행위는 굳이 성리학적 기준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용서받기 힘든 부분이다. 특히 여덟살에 불과했던 영창대군을 죽인 과정은 참혹하기까지 하다. 『광해군일기』에 따르면, 영창대군을 굶겨 죽였다는 기록과 온돌을 뜨겁게 달궈서 쩌 죽였다는 기록이 나오고, 『인조실록』에는 영창대군의 음식물에 양잿물을 넣어서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무엇이 되었던지 간에 반인륜적이다. 물론 능력이 출중했고, 실제 왕자 시절과 왕위에 있었던 시절 좋은 정책을 많이 폈던 광해군이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아버지인 선조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끊임없이 왕위와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광해군을 둘러싼 환경이 광해군에게 너무나 가혹했다는 배경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인조반정의 외교적 명분이다. 그것은 광해군이 기존에 중국에 있었던 명(明)과 새롭게 떠오르는 여진족 국가인 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쳤다는 것이다. 광해군과 광해군을 지지했던 세력의 입장에서는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조선을 다시 일으키고 그 구조적 모순을 극복해야 되는 상황에서, 명과 청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섣부르게 한쪽 편을 들어서 조선을 다시 위기에 빠뜨릴 수 없었다. 명분이 아닌 실리를 추구한 것이다. 그 예로 광해군은 명의 원군 요청에 응하면서 후금과는 밀약을 맺어서 직접 맞붙지 않게 했다. 또한 명과 청 사이의 전쟁의 와중에 패해서 조선 안으로 도망친 명의 장수 모문룡과 패잔병, 그리고 명의 유민을 가도에 주둔하도록 허락했다. 동시에 모문룡에 대한 견제도 함께 했다.(훗날 모문룡은 각종 전횡과 부정부패를 일삼다가 참수됐다.)

인조반정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광해군의 이러한 실리 중심의 외교 정책은 용납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인조반정의 주축 세력은 명을 임진왜란의 와중에 조선을 구원해서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준 은혜를 준 나라, 즉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준 나라라고 생각한 것이다. 인조반정을 일으킨 측에게 광해군의 실리 중심의 중립 외교는 대국(大國)의 은혜를 저버린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성리학의 화이(華夷) 사상과 명분론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인조반정은 쿠데타인 동시에 지배세력이 바뀌는 현상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인조와 광해군, 그리고 인조반정에 대한 재평가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2016년 총선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이야 쿠데타를 일으키긴 힘들고, 유권자의 투표에 의해 여당과 야당의 의석수와 의회 권력 위탁의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지배세력의 교체가 유권자의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다 진짜 전쟁이 일어나는 것 아니야?’라는 질문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전쟁이 그리 쉽게 나겠는가. 거기에다가 우리나라는 작전통제권도 없는 나라라 마음대로 전쟁을 할 수도 없다. 개성공단 폐쇄, 잇따른 북한에 대한 제재,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 그리고 미국-중국-일본-러시아와 우리나라와의 관계, 햇볕정책과 대북강경정책 사이의 갈등 속에서 유권자들은 인조반정 전후의 상황이 주는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 정당, 출마자 등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투표에 임해야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또 어떤 위기에 봉착할지 모를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광해군 세력은 어느 당이고 인조반정 주도 세력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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